[제3공간 통섭을 묻다] 예술·인문학·과학이 대등하게 소통하는 '수평적 통섭' 필요

1959년 C. P. 스노우가 '두 문화' 간의 대립의 심각성을 경고한 지 50년이 경과했음에도 불구하고, 두 문화 간의 괴리는 지속적으로 커져 왔다.

현대예술은 감각의 창조에만 전념하다가 의미의 공백 상태에 빠져 있고, 과학기술은 'GNR(생명공학 나노 로봇)' 혁명을 가속화하여 통제 불가능한 '특이점'을 향해 달려가며 다양한 위험을 증폭시키고 있다.

두 문화가 이렇게 양극단으로 갈라질 경우 인류는 '합리성을 결여한 감성적 인간'과 '감성이 메마른 이성적 인간'으로, 문화적 통제력을 상실한 생물학적 인간과 자기조직적인 사이보그로 양분되는 파멸적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점증하는 지구적 생태위기와 사회적 위기, 주체성의 위기는 모두 두 문화의 격리˙반목과 무관치 않다. 최근 들어 두 문화의 공통점을 찾아내고 양자의 협력을 촉진해야 한다는 소리가 도처에서 높아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두 문화 간의 차이를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서로 연결되어 상생하는 만남은 양자의 '내재적 관계'를 옳게 파악할 때 가능할 것이다. 감성(예술)과 이성(과학기술)은 우리 뇌에서, 몸(예술)과 두뇌(과학기술)는 우리 몸 안에서, 우리 몸(예술)과 기술문명(과학기술) 역시 문화생태학적으로 내재적 연결을 이루고 있다.

21세기에 들어 복잡계 과학은 이 내재적 연결이 필요함을 강조하기 시작했고, '텔레마틱스'와 '인터랙티비티'를 화두로 삼는 다양한 유형의 예술적 실험들이 활성화되면서 이제 두 문화의 만남은 세계적 화두가 되고 있다.

현실적으로도 Wi-bro, DMB, RFID, GPS 같은 유비쿼터스 컴퓨팅 기술의 '상용화'로 일상적 차원에서도 물리공간(제1공간)과 가상공간(제2공간)을 실시간으로 연결시킨 '증강현실(제3공간)'이 출현하면서(2009년 동탄에 국내 최초의 유비쿼터스 도시가 건설 중) 두 문화의 만남이 급속히 가속화되고 있다.

국제 통섭 심포지움 isAT '디지털 포트레이트 페인팅 쇼'(위)

수평적 통섭의 다양한 장들

이런 만남이 결국 과학기술로 환원가능하다고 보는 사회생물학자 윌슨과 최재천 교수의 '수직적 통섭(統攝)'(『Consilience』(1998), 2005년 한국어판)에 반대하여 필자는 비환원주의적인 '수평적 통섭(通攝)(jumping together)'(『유비쿼터스 시대의 지식생산과 문화정치』(2009))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과학사가 피터 갤리슨도 물리학만 하더라도 하나의 원리로 환원될 수 없는 매우 다양한 하위문화들이 존재하고 있어, 그 차이들과 공통점이 동시에 승인되기 위해서는 3단계에 걸친 접촉면적의 확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가 "실험 행위, 이론화, 그리고 실험실 간의 통일될 수 없는 수많은 전통들을 연결해주는 사회적이고 물질적이며 지적인 몰타르"라고 부르는 '교역 지대'가 그것이다.

MIT 미디어랩(1985~), 쾰른의 ZKM(1992~), 카네기멜론대학의 ETC(1997~) 등의 제도적 장치들이 이에 해당한다. 이들은 오랜 숙성과정을 거쳐 오늘날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2007년부터 준비하여 2008년에 시작한 'U-AT 통섭교육사업'은 이런 선례들을 벤치마킹하여 다음과 같은 다차원적 통섭과정을 구축했다.

첫째, 예술 장르들 간 통섭이다. 감각들 간의 연결을 통한 공감각과 복합감각의 창출을 말한다. 뮤지컬, 서사창작, 예술경영, 미디어 퍼포먼스, 시네포엠, 모션그라픽스, 문화디자인 등의 새로운 시범교과들이 여기에 속한다.

둘째, 예술과 인문학 간의 통섭이다. 이는 감각과 개념 간의 통섭으로, 사후 비평이 아니라 최초 구상 단계부터 콘텐츠의 기획과 시뮬레이션을 위해 창작과 비평의 사전 공동작업을 촉진하는 것이다.

셋째, 예술과 기술 간의 통섭이다. 이것은 감각과 기능 간의 통섭으로, 전 공정의 디지털화와 동시에 선형적 제작공정의 비선형적 압축을 촉진한다. 마지막으로 인문학과 과학기술 간의 통섭이다. 개념과 기능 간의 통섭으로, 유비쿼터스 컴퓨팅을 매개로 지식 데이터베이스의 재범주화와 확장을 촉진하여 통합적 지식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다.

창조적 사고, 양방향 통섭에서 출발해야

학문간 융˙복합 혹은 통섭 같은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이유는 오늘의 과학기술과 예술이 과거와는 다르게 물질(나노)과 생명(유전공학)과 지능(로보틱스)의 '창조'라는 전대미문의 과제에 직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통섭의 생명은 창조성의 비밀을 해명하는 일에 달려 있다. 단적으로 창조성의 비밀은 'T'형 사고로 해명될 수 있다. 이성과 감성, 의식과 무의식, 분과적 전문성과 횡단적 일반성을 동시에 교차시키는 '이중 도약'이 그것이다.

창조적 사고는 이렇게 인간에게 내재한 모든 역량들이 참여하는 매우 복잡하고 긴 과정을 경유하여 형성되는, 의식적-무의식적 종합의 산물이다. 각 회로와 범주들을 통과할 때마다 무질서에서 질서로의 무의식적인 도약을 거쳐야 하는데, 이것이 복잡계 과학에서 말하는 창발성이다.

예술적 감수성 역시 1차성의 범주에 해당하는 각 회로들이 얼마나 개방적이고 민감한가에 달려 있다. 아직 개체화되기 이전의 잠재성, 질, 스쳐지나가는 어떤 것이 감각의 회로와 몸의 회로에서 민감하게 포착되어야 하는데, 유비쿼터스 컴퓨팅이 이를 지원할 수 있다.

또한 컴퓨터는 복잡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뇌의 회로를 지원한다. 하지만 컴퓨터가 할 수 있는 것은 거기까지다. 이 모든 회로 전체를 주관하는 것은 역시 창작자 자신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서구의 예술과 과학기술 교육은 이런 방식으로 창조성을 증진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30년 전통의 미디어아트 페스티벌인 <아르스 엘렉트로니카>(오스트리아 린츠)가 최근 세계적 주목을 받기 시작하고 있고, <사이언스>지 역시 '과학적 시각화'라는 컬럼을 상설화하여 과학기술과 상상력의 통섭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런 창조적 흐름에 적극 합류하려 했던 한국예술종합학교의 'U-AT 통섭교육사업'이 카이스트 CT 대학원(2005~)과의 중복 등을 이유로 2009년 국고예산 전액이 삭감되어 전면 중단위기에 놓인 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예술과 과학기술 간의 양방향 통섭의 핵심을 간과하고 과학기술 일방향의 도구주의적 관점을 답습하는 것과 다름없다. 과거로의 회귀를 중단하고 하루 속히 창조적 미래를 향해 시선을 돌려야 할 때다.

심광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이론과 교수 (미학/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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