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그룹과 콘텐츠 산업의 공생관계]음악은 기본 책·뮤지컬·게임 등 전방위 확산 대중문화 중심으로

1) 빅뱅 2) 2NE1 3) 샤이니

아이돌 그룹 전성시대다.

지난 5일 MBC '쇼! 음악중심'에서는 또 하나의 아이돌 그룹 f(x)가 데뷔했다. 이날 총 7개 아이돌 그룹 멤버 28명이 출연했다.

카라와 브라운 아이드 걸스, 포미닛과 티아라가 무대에 올랐고 소녀시대의 수영과 서현이 MC를 맡았으며, 2PM의 택연은 백지영의 피처링 상대로 등장했다. 총 출연자 49명의 반 이상이 아이돌 그룹으로 채워진 셈이다.

아이돌 그룹의 공세는 공연 무대 밖에서도 이어진다. 우리는 케이블 TV 채널 곳곳에서 소녀시대의 아이 기르기, 2NE1의 휴가, 2PM과 2AM의 브라운 아이드 걸스 패러디를 지켜볼 수 있다.

빅뱅이 뮤지컬 무대에 서고 원더걸스가 게임 캐릭터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이 들리는가 하면,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소녀시대의 컬러풀 스키니진에 이어 '2NE1 스타일' 패션 아이템이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카라는 다음달 자신들의 패션과 뷰티 노하우를 담은 '뷰티북'을 발간한다.

이처럼 아이돌 그룹은 다양한 매체와 채널을 채우며 대중문화의 중심에 섰다. 새로운 콘텐츠에 목마른 문화 산업의 요청에 다양한 형식과 내용으로 부응한 덕이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 12일까지 열린 '제2회 대한민국 콘텐츠 페어'는 2PM과 원더걸스를 '킬러 콘텐츠'로 소개하기도 했다.

아이돌 그룹은 어떻게 핵심적인 대중문화 콘텐츠가 되었을까. 아이돌 그룹 자체의 매력과 문화 수용자의 욕구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아이돌 그룹 붐은 한국사회 특유의 매체 환경과 문화 산업 구도가 만들어낸 산물이기 때문이다.

대형 연예 기획사의 아이돌 그룹 다각화 추진

이는 우선 아이돌 그룹의 산실인 대형 연예 기획사가 지난 몇 년간 추진한 사업 다각화 전략의 결과다. 올해 말 출시 예정인 원더걸스 주인공의 댄스 게임은 소속사인 JYP 엔터테인먼트가 중국의 한 온라인 게임회사와 함께 3년간 제작한 것. YG 엔터테인먼트도 게임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자회사를 설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SM 엔터테인먼트는 작년에 뮤지컬 전문 회사 SM 아트컴퍼니를 설립, 슈퍼주니어 멤버들을 출연시킨 뮤지컬 <제너두>를 공연했다. 내년 말에는 SM 엔터테인먼트 이수만 회장이 직접 프로듀서를 맡은 창작 뮤지컬을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SM 엔터테인먼트 소속 아이돌 스타들과 그들의 음악으로 꾸며진다.

YG 엔터테인먼트의 양현석 대표가 "빅뱅을 문화에 전방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팀으로 만들고 싶다. 음악 사업은 한계가 있으니 빅뱅의 캐릭터와 음악을 여러 사업으로 연계해 자본이 유입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상징적이다.

빅뱅은 과연 그 활용 가치를 입증하며 현재의 아이돌 그룹 붐을 이끌었다. 그들은 그룹 준비 과정 자체를 다큐멘터리(<빅뱅, 더 비기닝>)로 만들며 데뷔했다. 경쟁이 치열하고 훈련이 혹독한 '연습생' 시절과 소년들의 성장담은 곧 빅뱅의 정체성의 일부가 되었다. 에세이집 <세상에 너를 소리쳐!>와 뮤지컬 <샤우팅>도 그 연장선에 있다.

4) 원더걸스를 주인공으로 한 게임 '스타 테일즈'
5) 소녀시대
6) f(x)
4) 원더걸스를 주인공으로 한 게임 '스타 테일즈'
5) f(x)
6) 소녀시대
다매체의 돌파구로서의 아이돌 그룹: 빅뱅의 사례

아이돌 그룹을 하나의 돌파구로 삼은 것은 연예기획사만이 아니다. 빅뱅의 다각화에는 다양한 매체 산업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빅뱅의 내러티브에는 다양한 문화 장르에 적용될 수 있는 보편성이 있었다.

<빅뱅, 더 비기닝>은 빅뱅의 탄생은 물론 YG엔터테인먼트라는 거대 연예기획사 내부의 일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를 끌었다. 2006년 인터넷 사이트 '곰TV'에서 처음 공개된 이 프로그램이 올해 케이블TV 채널 'tvN'과 'Mnet'에서 잇따라 재방송되는 이유는 스타가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에 대한 시청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한편 <세상에 너를 소리쳐!>가 40만 부 이상 판매된 것은 이 책이 일종의 자기계발서로 분류되어 다양한 독자층에 호소했기 때문이다. 중앙대학교 문화연구학과 박사과정의 이재원은 지난 6월 열린 '문화연구 포럼: 디지털 시대 문화산업의 이정표 찾기'에서 발표한 발제문 '아이돌의 진화, 음악산업에서 창조산업으로-융합인가 포획인가?'에서 빅뱅의 내러티브가 현실 세계와 갖는 친연성을 지적한다.

그는 "현재를 넘어 목표를 세우고, 계획과 전략에 따라 열정과 재능을 개발"한다는 <세상에 너를 소리쳐!>의 핵심 메시지가 IMF 이후 "구조조정, 조기/명예퇴직, 비정규직 고용 같은 불안을 통제 관리하는 방안의 일환으로 각광받은 자기계발서의 최신 판본"이라고 지적한다. 소년들의 성장담이 출판 시장이 찾고 있던 '성공담'으로 변주되어 유통된 것이다.

지난달 무대에 오른 뮤지컬 <샤우팅>은 같은 내러티브를 원작으로 했지만, 방점이 조금 다르다. 제작사인 설앤컴퍼니는 이 작품이 10대를 겨냥한 것임을 공언했다. 20~30대가 주를 이루는 뮤지컬 관객층을 확대하려는 의도다.

이는 지난 달 공연된 <한여름 밤의 꿈>에 FT아일랜드의 이홍기가, 11월에 공연될 <금발이 너무해>에 소녀시대의 제시카가 출연하는 등, 아이돌 스타를 적극적으로 영입하는 최근 뮤지컬 시장의 전략과 닿아 있다.

아이돌 리얼리티, 아이돌 그룹 콘텐츠의 리트머스 시험지

케이블 TV 채널의 '아이돌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다양한 콘텐츠의 원천으로서의 아이돌 그룹의 가능성을 가장 직접적으로, 활발하게 활용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의 데뷔 과정부터 합숙, 일상과 미션 수행, 나아가 연애 감정까지도 방송 카메라에 담긴다.

최근에는 아이돌 그룹이 많아진 만큼, 프로그램의 범주도 넓어졌다. 각각의 그룹의 특징을 살려 새로운 형식과 내용을 선보이고 있는 것. 풋풋한 미소년 콘셉트를 내세운 샤이니는 누나와 연애하는 내용의 프로그램 <샤이니의 연하남>에 출연했고, <와일드 바니>는 개구진 사내아이들 같은 2PM의 모습에 초점을 맞춰 연출되었다. 얼마 전 끝난 <2NE1 TV>는 본 방송 중간 중간 끼어드는 '해적 방송'처럼 편성되어 개성 강한 2NE1의 캐릭터와 잘 맞물렸다.

이런 프로그램은 연예 기획사와 케이블 TV 채널 간 공조로 탄생한다. 음악 엔터테인먼트 채널 Mnet의 김기웅 CP의 말처럼 "서로 '윈윈'하는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아이돌 그룹의 홍보 효과가 있는 것은 물론 그들에 대한 관심을 프로그램으로 끌어오고, 나아가 음악을 포함한 대중문화 콘텐츠 산업을 활성화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중문화의 징후로서의 아이돌 그룹 붐

이렇게 아이돌 그룹을 전방위적 콘텐츠로 육성하고 활용하는 것은 디지털 미디어가 도입된 이후 음반 산업이 '죽은' 한국 대중음악 산업이 수익 창구를 넓히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처럼 보인다. 하지만 동시에 한국 대중문화 산업이 가장 비판받아온 부분, 스타 시스템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한계를 답습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이는 문화 '콘텐츠'라는 이름하에 문화가 각 장르의 미학적 성취 대신 시장에서의 상품성만을 기준으로 판단되는 흐름을 강화할 수도 있다. 사실 '콘텐츠'라는 단어 자체가 경제적 가치에 초점을 맞추어 만든 한국적 조어다.

중앙대학교 문화연구학과 석사과정의 최선혜는 문화연구 포럼에서 발표한 '1990년대 이후 문화콘텐츠 정책담론의 비판과 제언'에서 이 단어가 김대중 정부 시절 IMF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차세대 성장산업으로서의 문화관련산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취지의 문화산업진흥법에 의해 법적으로 정의되기 시작했음을 밝힌다. 국가 주도로 견인되었던 IT 산업의 부상도 콘텐츠의 개념이 빠르게 확산된 요인이었다.

아이돌 그룹을 문화 콘텐츠로 접근하는 순간 문화 산업의 전략과 한계, 문화 정책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가치 판단 같은 질문들이 불려 들어온다. 이때 아이돌 그룹은 더 이상 '우리 오빠'만이 아니다. 한국 대중문화의 판과 내용의 향방을 알리는 징후가 된다. 갑자기 너무 많아진 아이돌 그룹의 콘텐츠로서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봐야 할 이유다.

Mnet 김기웅 CP

'아이돌 리얼리티' 연예기획사·케이블 TV 합작품


케이블 TV 채널 Mnet은 '아이돌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산실이다. <샤이니의 연하남>, <원더 베이커리>에서 최근 <2NE1 TV>와 <와일드 바니>까지 화제에 오른 프로그램 상당수가 Mnet에서 방송되었다. 이 프로그램들을 전두지휘한 김기웅 CP에게 아이돌 그룹이라는 콘텐츠의 가치와, 음악 엔터테인먼트 전문 채널 Mnet의 매체 전략에서의 역할을 물었다.

최근 <2NE1 TV>와 <와일드 바니>가 종방했다. 성과가 어땠나.

<2NE1 TV>는 3%, <와일드 바니>는 2%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케이블 TV 채널에서는 시청률 1%를 넘으면 '킬러 콘텐츠'로 친다.

두 프로그램은 신선한 형식으로도 화제가 됐다.

<2NE1 TV>는 <이효리의 오프 더 레코드> PD가 연출했다. 전작처럼 훔쳐보는 시선을 도입했고, 새로운 매체의 느낌도 가미했다. 인터넷 동영상도 모티프가 되었고, 미투데이에서 동시 중계하는 시도도 했다. <와일드 바니>는 시청자 타깃을 10대보다는 20대로 잡았다. 2PM에겐 누나팬이 많잖나. 너무 장난스럽지만은 않게 연출한 것이 적정했다.

20대 이상 팬들은 왜 아이돌 그룹에 열광한다고 생각하나.

10대 때 팬 문화를 경험한 세대이기 때문이다. 아이돌 그룹에 대한 감정이 열려 있는 것 같다.

아이돌 그룹 붐은 한국에서 특이한 현상인 것 같다.

아이돌 그룹을 발굴, 육성해 콘텐츠화하는 시스템은 한국이 거의 세계 최고 수준인 것 같다.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 노하우가 쌓인 덕이다. 지금 등장하는 아이돌 그룹들은 행여 내수 시장이 포화 상태라도 해외 시장에서 충분히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돌 그룹 붐이 음악 산업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생각하나.

반사 이익이긴 하겠지만, 음악계에 힘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돌 그룹은 좋은 콘텐츠다. 매체가 기획력을 발휘해 잘 가공하면 다양한 세대의 관심을 음악 쪽으로 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돌 그룹을 주인공으로 한 프로그램이 Mnet 전체 프로그램 중 차지하는 비중은.

30% 정도다. 최근 늘고 있는 추세다.

아이돌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해외에 수출하기도 하나.

그 사업을 담당하는 부서가 따로 꾸려져 있다. 지금까지 제작한 프로그램은 동남아시아 등으로 거의 다 팔려나갔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