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그룹과 콘텐츠 산업의 공생 관계] 개인·집단 활동하는 '트랜스포머'의 힘 다양한 영역 진출 유리

아이돌 그룹은 적극적 산업적 논리로 양산되고 있지만, 그 파장은 산업적 측면에만 머물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엔 이미 아이돌 그룹은 대중문화를 점령했다. 그래서 아이돌 그룹 붐 현상을 논하는 것은 지금 한국의 대중문화를 논하는 것이다.

아이돌 그룹들은 대중문화의 구도와 내용을 어떻게 반영하고 바꾸어 놓을까. 그 의미와 향방에 대해 권경우 문화평론가에게 물었다.

빅뱅 이후 아이돌 그룹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여러 물리적 요인이 있을 텐데, 가장 핵심적인 요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아이돌 그룹은 일종의 통합 콘텐츠 생산을 위한 포석이라고 생각한다. 기업형으로 운영되는 한국 연예기획사의 속성이 반영된 것이다. 음악 산업, 넓게는 문화산업 전반에서 아이돌 그룹이 가장 상품성이 높은 영역으로 인식되고 있다. 아이돌 그룹 선발과 연습은 상품 개발 과정이고, 음반 출시와 공연은 시장 출시 단계인 것이다.

문화 수용자/소비자들이 아이돌 그룹에 열광하는 시대사회적 이유는 무엇일까.

대중문화의 승리다. 아이돌 그룹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다양한 영역에 존경·숭배할 수 있는 대상, 즉 영웅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영웅이 없는 시대다. 반면 아이돌 그룹은 청소년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존재가 되었다. 특히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분리된 이중적 삶을 사는 청소년의 삶에서 아이돌 그룹은 해방구 역할을 한다. 이 현상이 20대 이상으로 확산되고 있다. 아이돌 그룹은 이들에게 팍팍하고 비참한 현실과 다른 환상을 제공하기도 한다.

아이돌 그룹이 디지털 매체 환경이나 세계화된 산업적 환경에서 갖는 강점이 있을까.

개인이 아닌 만큼 다양한 콘텐츠 생산이 가능하다. 수많은 대중의 욕구를 충족시켜야 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매체 환경에 대처할 수 있는 조건이다. 최근에는 국적이나 출신, 성장 배경 등이 다양한 멤버로 아이돌 그룹을 조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구성이 해외 시장에서의 적응력을 높여준다. 이를테면 '세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아이돌 그룹이라는 콘텐츠가 책, 뮤지컬, 게임 등 다양한 장르로 확장되는 현상이 문화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당분간 이런 현상은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아이돌 그룹은 다양한 영역으로 진출하는 데 유리하다. 개인으로 활동하다가 필요한 경우에는 집단으로 활동해 시너지 효과를 높이는 등 '트랜스포머'로서의 힘을 발휘한다. 그럴 경우 이들에 밀려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노력하고 연습한 이들의 존재가 무력해질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어떤 영역이든 소위 '벤치'에 앉아 있는 선수가 많아야 발전하는데 아이돌 그룹으로 '뜬' 이들이 다른 영역에서 힘을 발휘하면 한 영역에서만 땀을 흘린 이들은 좌절하기 쉽다. 이것이 문화 영역 전반의 내적 역량, 즉 인프라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

아이돌 그룹 붐이 앞으로 대중문화의 산업적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하나.

당장은 대중음악이나 대중문화에 활기를 불어넣어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문화콘텐츠 산업 지형에 엄청난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 같다. 하지만 아이돌 그룹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대형 기획사뿐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아이돌 그룹 붐 현상이 지속된다면 문화 다양성 측면에서 부정적인 효과가 나타날 것 같다.

지금의 아이돌 그룹들은 연예 기획사에 의해 조직되고, 대중이 원하는 것을 표현함으로써 그들을 사로잡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아닌, 시대의 흐름을 창조할 수 있는 대중음악과 가수가 필요하다. 그들이 나올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권경우 문화평론가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