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갤러리] '20세기 사진의 거장전'

로저 페리, 파리 노트르담 성당, 1945, Roger Parry ⓒMinistere de la CultureMediatheque du Patrimoine, Dist.RMN
적어도 근대 초기 사진 사조에 관한 한, '아방가르드'라는 분류법은 비유가 아니다.

실험적이고 급진적인 예술적 지향과 태도를 이르는 '아방가르드'의 연원은 전쟁 시 선두에서 적진을 향해 돌격하는 부대. 20세기 초 사진 매체의 새로운 가능성을 펼쳐 보였던 아방가르드 사진 작가 중 상당수에게는 종군 사진 기자의 이력이 있다.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이 일어난 때였고, 사진은 현실을 정확히 기록한다는 속성 때문에 최전선에 있었다. 핵심적인 '전쟁 기술' 중 하나였던 셈이다.

그렇게 무수하고 적나라한 참화와 폐허가 사진 찍혔다. 전쟁을 불러온 인간의 야만성과 무지도 덩달아 낱낱이 드러났다. 한 치의 자비도, 주저함이나 온기도 없이 현상의 덜미를 잡아채는(capture) 사진 매체의 타고난 공격성 앞에 세계에 대한 믿음과 의지, 희망은 갈 곳을 잃었다.

그러나 역사는 흘렀고, 아이러니하게도 폐허는 찬연한 근대를 낳았다. 문명이 재건되는 속도는 놀라웠다. 산업화가 진행됐고 탐스러운 물질이 유통되기 시작했으며, 도로가 정비되고 건축물이 치솟아 도시의 스펙터클을 만들어냈다. 온통, 놀라운 볼거리들 투성이였다.

1) 앙드레 케르테츠, 퐁데자르(프랑스 학사원의 벽시계 유리를 통해 바라본 루브르박물관), 1932, Andre Kertesz ⓒMinistere de la CultureMediatheque du Patrimoine, Dist.RMN 2) 완다 율츠, 나와 고양이, 1932, ⓒWanda Wulz Alinari ⓒThe Bridgeman Art Library-GNC media, Seoul 3) 로베르 두아노, 사계절-봄, 오렌지와 연인, 1950, ⓒAtelier Robert Doisneau 4) 앙드레 케르테츠, 우울한 튤립, 1939, Andre Kertesz ⓒ Ministere de la CultureMediatheque du Patrimoine, Dist.RMN 5) 앙드레 케르테츠, 우스꽝스러운 무희, 파리, 1926, Andre Kertesz ⓒ Ministere de la CultureMediatheque du Patrimoine, Dist.RMN
프랑스 파리는 그 중심에 있었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아방가르드 사진 작가들도 이 광경에 눈을 빼앗겼다. 단지 다시 발전이 추진되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전쟁은 집과 공동체뿐 아니라 중세의 신성한 권력 관계와 위계적 계급 구조도 파괴했다.

편평해진 거리에서 모두가 뒤섞였다. 새로운 '공공성'이 나타난 것이다. 살아 있음에 대한 환희만이 공평하게 가득했다. 포화(砲火)가 가시고 죽음의 위협이 저만치 물러 갔다는 사실에서 비롯한 순수한 환희.

그래서 저 20세기 초 파리의 아방가르드 사진들은-그것이 거리의 활기 혹은 정물의 간결한 영성을 한껏 담아내는 앙드레 케르테츠의 새로운 구도이든, 근대 문물의 위용을 담은 프랑수아 콜라의 압도감이든, 사진 매체를 전쟁 종속적 기술이 아닌 인간 주도의 근대적 기술로 재구성해낸 완다 율츠의 도발적 실험이든, 카메라 프레임과 도시의 관계를 다양하게 상상한 로저 페리의 입체적 원근법이든, 삶의 소박한 행복들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로베르 두아노의 따뜻한 감격이든-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지, 인간이 얼마나 사랑 넘치는 존재인지, 우리는 어떻게 역사의 비극을 지혜롭고 강하게 극복할 수 있는지, 그것을 깨달은 후 미래는 얼마나 건강하고 찬란하게 펼쳐질 수 있는지를 증언한다.

그것이 지금에 굳이 이 한 세기 전 사진들을 다시 보아야 하는 이유다. 이 작업들은 촌스러울 만큼의 열렬함으로, 근대 문명을 이룩한 동력이 전쟁 이후 재건된 인간과 세계, 역사와 미래에 대한 믿음과 의지, 희망임을 일깨워준다. 세속화된 현재가 흔히 오해하듯, 물질적 욕망이 아니라.

1920~40년대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했던 아방가르드 사진 작가의 작품 180여 점을 모은 <20세기 사진의 거장전-파리 아방가르드, 빛의 세계를 열다>는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위치한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다음달 29일까지 열린다. 02)580-1300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