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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비와 '민족'이라는 식지 않는 감자

[애국주의 그리고 대중문화]
'실미도', '디워' 등 민족주의, 애국심, 국익 이데올로기 자극하며 흥행 성공
네티즌이 또 들고 일어섰다. 한 교포 출신 연예인이 연습생 시절 개인 홈페이지에 끄적인 한국 비하 발언 때문이다. 쏟아지는 비난에 당사자는 그룹을 탈퇴해 한국을 떠났고, 일단의 네티즌들은 '한국인의 근성의 승리'를 자랑스러워했다.

여러 가지 논점이 있지만, 어쨌거나 실수를 저지른 한 사람에 대한 대중의 단체 응징이라는 점은 우려되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한국 네티즌의 단결된 힘은 그동안 월드컵이나 황우석 사태를 거치며 충분히 입증된 바 있다. 이번엔 그 힘이 한 연예인을 향했고, '추방'에 가까운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디지털 파시즘이 회자되는 이유다.

'민족'의 뇌관은 건드리면 금세 터진다. 예측가능한 폭탄이다. 이번 일에 비견하기엔 거대담론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민족주의 담론은 항상 국민 정서의 기저에 있었던 무의식 같은 것이었다. 실제로 이제까지 작품 내외의 이슈를 만들며 사회적 담론을 이끌어냈던 영화들이 그 가장 좋은 사례가 된다.

꼼꼼히 찾을 필요도 없이 현재 한국영화 역대 흥행리스트만 눈여겨 봐도 관객은 어떤 영화에 열렬한 반응을 보였는지 알 수 있다. 이 말을 바꾸어보면 대중의 보편적 정서가 어떤 것인지 제작자 쪽에서 파악이 가능했고, 그 점이 철저히 공략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새로운 장을 연 <쉬리>나 <공동경비구역 JSA>는 그런 보편적 정서에의 맞춤 전략이 주효했던 경우다. 이 영화들은 분단국가라는 한국적 현실을 소재로 끌어들여 민족적 공감을 자아내는 데 성공했다. <실미도>는 이 공식과 함께 '천만 관객'이라는 기록까지 더해 '한국영화의 새 시대'라는 판타지를 대중 스스로에게 실현시키도록 했다.

두 번째 천만 영화였던 <태극기 휘날리며>는 이런 애국과 민족주의 코드에 충실했던 작품이었다. 천만 관객을 달성함으로써 새 시대를 연 대중에게 기록 경신은 곧 한국영화의 발전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외면당했을 소재인 '6.25 전쟁에 얽힌 가족의 비극'은 147억 원의 제작비가 녹아있는 화려한 전투씬과 '천만, 그 이상의 기록 돌파'라는 공공의 목표를 두고 순조롭게 흥행을 성공시켰다.

대중의 가장 약한 지점을 효과적으로 공략할 줄 아는 강우석 감독은 다시 한번 민족감정을 건드리는 투박한 영화를 내놓는다. 대한민국은 절대선, 일본은 절대악으로 설정하여 노골적인 민족주의를 표방했던 <한반도>가 그것이다. 하지만 시종일관 국가와 민족을 강조하는 영화에 관객의 반응은 영화의 논리처럼 흑백으로 극명하게 갈리고, 결국 영화는 참담한 실패를 맞았다.

반면 같은 해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 1천3백만이라는 믿기 어려운 흥행을 한 데에도 이 같은 요소가 일정 부분 작용했다. 영화 안에서도 미 제국주의를 향한 비판의 시선이 있었지만, 대중에 유효했던 것은 역시 개봉 전 칸 영화제에서의 기립박수나 해외 비평가들의 호평, 그리고 그에 따른 여러 나라로의 수출과 같은 영화 외적인 요인이었다. 이때 <괴물>을 보는 행위는 애국의 한 방식이 되고, 지나친 배급에 대한 비판 여론도 역대 최고기록 경신이라는 수치 앞에 무너지고 만다.

이듬해 개봉한 <디워>는 영화를 넘어서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었다. <디워>에 대한 평론가들의 혹평은 네티즌의 공분을 불러일으켰고, 이는 곧 평단 대 대중의 싸움으로 번졌다. 이런 과정에서 영화에 대한 평가는 논점의 핵심에서 제외됐다. 영화 자체만을 놓고 이야기하자는 평단과 심형래의 '충무로 집단'에의 험난한 도전기, 그리고 한국 자체 CG 기술이라는 신화로 무장한 네티즌은 끝없이 평행선을 펼치며 대립을 계속했다.

무서우리만큼 흑과 백, 선과 악으로 이분된 당시의 논쟁은 민족주의와 애국심, 국익이라는 키워드를 그들 사이에 던진 마케팅의 승리로 평가된다. 결국 오늘까지도 사태의 핵심은 "<디워>는 과연 좋은 영화였나"가 아니다. <디워>가 잘 만들어지지도, 큰 재미도 없었다는 건 양쪽의 공통적인 반응이다. 그래서 평단은 혹평을 했지만, 이미 '한'이라는 정서과 대미를 장식한 노골적인 아리랑, 심형래 감독 개인의 '인간승리', 황우석 박사와의 교류 등 민족주의, 국익 이데올로기는 끈질기게 대중을 현혹하고 우민화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노골적으로 애국심 마케팅을 펼쳤다 흥행에 실패한 <한반도>와 비교하면 <디워>에는 애국심 이상의 무엇이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애국심 마케팅에 깃든 애국심의 실체는 과거 지향이냐 미래 지향이냐로 그 성패가 미묘하게 판가름 난다. <한반도>가 한국의 과거사와 관련된 분노의 표출과 한풀이에 그쳤다면, <디워>는 자체 CG 기술이라는 장밋빛 미래를 제시하며 애국심을 자극했다. 이른바 '가능성 장사'를 했다는 점에서 황우석과 심형래가 다시 한 번 겹쳐지는 부분이다.

민족주의, 애국심, 국익 이데올로기는 앞으로도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 '한국'이라는 무형의 국가 이미지에 대한 원색적 활용은 그대로 인터넷에 뿌려진 날것의 먹잇감이다. 마케팅사 또는 저질 언론은 뒤에서 이 과정을 지켜보며 부채질한다. 여린 백성, 아니 순진한 네티즌은 다시 이 전략에 휘말린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조건반사적으로 반응하는 민족주의, 애국심, 국익 이데올로기의 실체를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소모적인 논쟁을 벌이고 급기야 한 사람을 추방하기까지 하는 대중의 집단 행동은 '한국인의 근성' 따위가 아닌, 이상 행위에 가깝다. 오히려 외신에 실려 망신이라도 당하면 그게 바로 '국익'이 아닌 '국해' 행위다. 제작자와 유통자의 '농간'에도 휘말리지 않는 객관적인 시각도 필요하다. 생산과 유통과 소비의 과정에 끼어든 저난도의 이데올로기 전략을 깨달았을 때 광기 어리고 소모적인 논쟁도 근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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