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을 이야기하다] '만화 김대중'의 백무현 화백'선생님'도 '빨갱이'도 아닌 한 인본주의자가 꿈을 실현하는 과정

"촛불은 마지막 심지가 타오를 때 가장 환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서거 직전 자신의 임무를 다 하고 간 것 같다."

백무현 화백은 <만화 김대중>의 출간 직전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맞았다. '인간 김대중'에 흥미를 느껴 진행한 3년간의 작업이 막 세상에 나오려던 참이었다. '김대중'의 전 생애를 연구한 후여서, 백 화백은 그 사인(死因)도 운명처럼 이해한다.

<만화 김대중>은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치열하게 '대통령'이라는 역할을 수행한 한 사람의 역사다. 백 화백에 그에게서 본 것은 '선생님'도 '빨갱이'도 아니었다. 한 인본주의자가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과정, 그의 이미지를 만들고 알리고 각인한 시대의 욕망과 권력의 작동 방식이다.

<만화 김대중>은 현재 2권까지 나왔다. 5권으로 구성된다고 들었다.

쓰다 보니 5권도 부족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워낙 스케일이 큰 인물이라 10권 이상으로 내는 것도 가능할 것 같다. 3년 간 200여 권의 책을 읽고 50명 가까운 관계자를 만나며 취재했다.

작업하면서 김 전 대통령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부분이 있다면.

정치인이라 늘 '의제'가 클 줄 알았는데 가장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이 <동물의 왕국>이라더라. '빨갱이'로 알려졌지만 사실 여리디 여린 사람이다. 국회 회기 중 이휘호 여사가 강아지를 때렸다는 이야기를 전화로 듣곤 집에 가서 역정을 냈다는 에피소드는 유명하다. 대통령 재임 시절 동네 주민에게 진돗개를 한 마리 선물 받았는데 비서관이 그 개를 묶어 놓았다가 꾸중을 들었다고 한다. 감옥 생활을 오래 해서 그런 구속 상태에 감정을 이입한 게 아닌가 싶다.

김 전 대통령이 당대 정치인들의 귀감이 되는 부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정치적으로 신념이 '독한' 것이다. 정책이 왔다갔다하지 않는다. 반공 이데올로기가 득세하던 시절에도 예비군 폐지, 남북 연방제 추진 같은 정책을 주장했으니까. 변절하지 않고 소신을 지켰고 결국 그 '상상력'을 현실화했다는 점에서 귀감이 될 만하다. 지금 정치인들은 상상력도 대안도 없지 않나.

김 전 대통령이 서거 전 만나자고 하셨다던데.

원래 문화에 대한 감수성이 있는 분이다. 마지막으로 읽던 책이 박시백 화백의 <만화 조선왕조실록>이라고 하더라. 내가 이 작업을 하는 것을 알고 한번 만나자고 하셨다. 하지만 막상 만나면 '거리 두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만나지 않았다. 나에게는 객관성을 지키는 것이 중요했다.

<만화 김대중>이 출간된 후 반응은 어떤가.

가끔 협박하거나 항의하는 메일을 받는다. 왜 빨갱이를 영웅으로 미화하냐는. 그래서 "책 다 읽어 보셨냐"고 물으면 머뭇거리는 분들이 많다. 한국 현대사는 아직 관련된 생존 인물이 많아서 정리하거나 평가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오른쪽 창'을 통해 보여진 부분이 많기 때문에 '왼쪽 창'의 시선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만화 박정희>, <만화 전두환> 출간 이후 법적 공방은 없었나. 박지만 씨가 명예 훼손으로 고소하겠다는 발언이 기사화되기도 했는데.

실제 고소는 없었다. 그런 상황을 대비해 조사를 완벽하게 했다. 단어 하나도 당대에 쓰였던 그대로 쓴다. 그래서 막상 반박할 수 있는 부분이 없었던 것 같다.

<만화 김대중> 서문에서 자신을 김 전 대통령의 '비판적 지지자'라고 칭했다. 어떤 점을 비판하나.

속편에서 아들의 비리 문제, 노무현 정권 때 비자금 문제, 87년 대선 당시 야당 단일화 등을 비판한다.

어떤 독자층을 염두에 뒀나.

고등학생 이상 성인층이다. 한국 현대사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없는 세대에게는 조금 어려울 수 있다. 전작들의 경우에도 어른들이 많이 구입했다. 특히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현대사를 잘 가르치고 싶어서 사는 경우가 많았다. 아버지가 먼저 읽고 역사관을 교정한 후, 아이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

다른 대통령도 다룰 생각이 있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다음 주인공이 될 것 같다. 그에 대해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싶어 하는 분들이 요청을 많이 한다. 평가가 어렵고 논란이 있더라도 한번 해봐야 할 것 같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