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도시의 미래인가] '인천아트플랫폼' 도시 재생사업과 지역의 역사적 의미 살리는 시도 눈길

근대건축물을 리모델링해 문화예술공간으로 활용하는 인천아트플랫폼
도시의 미래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문화'다. 경제적 관점에서조차 문화는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각광받는다. 지역의 역사와 삶의 특성부터 예술적 분위기, 공해 없는 부가가치 산업까지 아우르는 개념으로서 문화는 도시를 둘러싼 담론 속에 다양하게 등장한다.

문화 없이 도시의 정체성을 만들 수도, 도시 계획 안에 삶을 껴안아내거나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문화가 장밋빛 미래를 뜻하는 수식어로써 너무 편리하게 동원되고 있다는 혐의도 지울 수 없다.

문화도시에 문화 예술이 없다?

'2009 인천세계도시축전'이 막을 올린 다음 날 인천 동구 배다리 부근에 위치한 대안공간 스페이스 빔에서는 ''문화도시'와 문화&예술' 심포지움이 열렸다. 지방자치단체들이 경쟁적으로 '문화도시' 구호를 내세우는 현재, '문화'와 '예술'이 어떻게 취급되고 있는지를 살피고 그 역할을 고민하는 취지였다.

이원재 문화연대 사무처장은 발제문 '이상한 나라의 '문화도시''에서 한국사회의 문화도시는 "예술노동을 다차원적 환경미화에 동원함으로써 경쟁력을 높이려는 도시"라고 지적했다. '공공미술'이라는 이름 하에 텅 빈 재래시장, 쇠락한 도심 등 개발의 부작용을 예술로 '해결'하고 있다는 것이다.

'CITY RAY: 도시의 속살'에 전시된 차기율의 '도시 시굴'(위), ''CITY RAY: 도시의 속살'에 전시된 채진숙의 'Castle in Incheon'
민운기 스페이스 빔 디렉터는 ''세계 일류 명품도시 인천'과 문화&예술'에서 인천시가 '세계'와 '국제'라는 타이틀을 내건 대규모 행사를 연달아 진행하고 10년째 논의 중인 시립미술관을 비롯해 구겐하임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인천시분관 등 여러 미술관 건립 계획을 발표하면서도 정작 지역의 미술인들과는 소통이 없다는 점을 비판했다. 문화·예술을 지역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육성하기보다 도시 이미지 홍보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스페이스 빔에서는 이 심포지움과 함께 전을 열었다. 숨가쁘게 개발이 진행되는 인천을 '투시', '진단'한 후 '치유'하는 작업들을 모음으로써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보여주려는 시도였다.

예술 매개로 지역성과 역사 살리는 시도, 인천아트플랫폼

이 와중에 지난 25일 개관한 인천아트플랫폼은 시가 추진한 구도심 재생사업의 일환이면서도 지역의 역사적 의미를 살려내는 문화·예술적 시도로서 주목할 만하다. 중구 해안동의 근대 건축물들을 시가 매입해 리모델링한 후 전시장과 공연장, 아카이브와 창작 스튜디오 등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각국공원 복원사업', '근대 건축물 활용 전시, 박물관 확충 사업', '개항장 역사문화자원 스토리텔링사업' 등 개항장 일대를 문화 지구로 조성하는 기획의 일환으로 근대 건축물을 보존함과 동시에 슬럼화되어 가는 지역 문화를 활성화하려는 취지다.

근대 건축의 풍취는 외양뿐 아니라 내부에도 남아 있다. 대한통운 창고를 리모델링한 전시장과 공연장의 천장에는 원래의 나무 구조와 새로 덧댄 철제 구조가 어울려 있다. 일본우선주식회사였던 아카이브의 바닥 일부는 유리로 깔려 있어 당시 바닥 아래로 뚫어 놓은 환기구를 볼 수 있다. 위아래로 여닫는 창문, 금고로 쓰인 골방도 보존되어 있다.

이런 역사성은 이 공간에서 창작하는 작가들의 작업에 묻어나고, 전시 공연과 어울려 특유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며 그럼으로써 관객에게 계속 체험될 것이라 기대할 수 있다. 예술을 매개로 지역성과 역사가 재창조되고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인천 지역의 예술인들도 환영하는 분위기다. 인천은 시립미술관이 없는 유일한 광역시일 정도로 예술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개관 준비 과정에서도 지역 사회, 예술인과 큰 갈등을 빚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만큼 지역 예술이 활발해질 수 있는 기회로 인식되고 있다. 한국미술협회 김길남 인천지회장은 "무엇보다 지역 정서를 반영하고 지역 예술가가 편하게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인천민족미술인협회 김종찬 사무국장도 "지역 작가들을 잘 육성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는 기대를 밝혔다.

이런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운영의 자율성 확보가 중요하다. 하지만 지난 달 인천시가 개관 전임에도 불구하고 인천아트플랫폼에서 도시축전 부대행사인 국제인천여성미술비엔날레를 개최해 우려를 낳았다.

비엔날레 후에는 모든 작품을 철거하기로 약속한 것을 어기고 몇몇 작품을 이곳에 두도록 압력을 넣기도 했다. 김종찬 사무국장은 이에 대해 "인천아트플랫폼이 몇몇 작가의 작품 보관, 혹은 상설 전시 장소로 사용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운영을 위탁한 인천문화재단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것이 과제인 셈이다.

'근대 건축물'을 뛰어 넘는 공간 자체의 정체성을 만들어 나가는 것도 필요하다. 인천아트플랫폼은 '복합문화예술 매개 공간'을 표방하며 다양한 예술 장르와 프로그램을 포괄하려 하고 있다. 미술뿐 아니라 사진, 문학, 연극 등 거의 모든 장르에 문을 열어 놓았다. 창작뿐 아니라 연구, 비평 작업도 지원한다. 레지던시, 기획 프로그램은 물론 교육, 아카이빙 프로그램에도 힘을 쏟을 예정이다.

민운기 디렉터는 "다양한 예술 장르로 그 범위를 넓히는 것은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레지던시 선정 작가들을 봐도 아직 이 공간이 지금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며 꾸준히 정체성을 고민할 것을 제언했다.

인천아트플랫폼은 <다시개항>이라는 주제로 미디어 퍼포먼스와 국제사진전을 열며 개관했다. 미디어아트와 음악, 무용이 어우러지고 소설가 오정희가 이 일대를 배경으로 쓴 1979년작 <중국인 거리>를 낭독한 무대와 도시, 바다, 시간 등 인천의 지리적, 역사적 속성을 테마로 한 사진들로 관객들을 맞았다.

"문화 예술로 개항 역사 재창조할 것"

인천아트플랫폼 최승훈 관장
인천아트플랫폼의 초대 관장은 최승훈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이 맡았다. 그는 "인천 출신은 아니지만 인천아트플랫폼에 대한 애정은 누구보다 강하다"며 이곳을 새롭고 활발하고 열린 문화 예술의 근거지로 꾸릴 의지를 밝혔다.

인천아트플랫폼은 지역 사회와의 소통이 중요할 것 같다.

그렇다. 이웃이 애정을 갖지 못하는 공간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먼저 중구 주민의 자랑거리가 되어 다른 도시까지 소문 나는 것이 목표다. 시민들이 걷다가 자연스럽게 도달할 수 있을 정도로 일상적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 개관전의 부대행사로 시민들이 참여하는 사진전 <인천, 일상의 발견>을 여는 것이 그런 의미다. 일회용 카메라를 시민들에게 나누어 준 후 그 결과물을 전시했다. 나도 참여했다. 정치인과 학생, 플랫폼 관장과 경비 아저씨의 사진이 나란히 걸린다. 이런 작업 통해 문화 예술이 어렵다는 주민들의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개관전 제목인 '다시개항'의 의미는 무엇인가.

인천 개항은 외세에 의한 것이지만 이제는 우리 스스로 연다는 뜻이다. 정복이 아니라 수용하는 자세, 마음가짐으로 이 공간을 세상을 향해 열겠다는 의미다.

개관전으로 사진전을 기획한 이유는.

사진은 예술을 다시 정의하게 만든 매체다. 동시에 현대 예술에서 가장 부상하고 있는 장르이기도 하다. 또 시간을 기록한다는 점에서 인천의 역사성을 상징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론 인천을 통해 보급된 '신문물'을 뜻하기도 한다. <인천, 일상의 발견>을 통해 주민과 소통하는 데에도 사진은 유용하게 쓰였다.

문화 예술 세계화의 거점으로서의 역할도 구상한다고 들었다.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입주하는 작가들이 세계적으로 주목받기를 원한다. 작가들을 최대한 지원해서 세계 무대에서도 가치 있는 작가로 인정받도록 만들고 싶다.

인천이라는 지역이 이런 새로운 공간을 시도하기에 적합한가.

무엇보다 역사적 유서가 있다는 점이 좋다. 어떤 문화·예술도 아무런 연원 없이 뚝딱 만들어지지 않는다. 아시아 중심 허브도시로의 지향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세계화에 적합하다. 인천에 시립미술관이 없었던 것도 뒤집어 생각하면 좋은 조건인 듯하다. 시립미술관 건립을 둘러싸고 10년 동안 벌어진 논의가 복합문화예술매개공간이라는 새로운 공간을 탄생시킨 바탕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고리타분하지 않은 방법을 모색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준 측면이 있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