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패러다임의 변화]호화 상품·서비스서 동물 권익 보호·생명 존중으로 무게중심 이동

애완동물을 가족으로 여기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자녀 없이 애완동물과 사는 부부를 일컫는 '딩크펫(DINK+pet) 가족'도 증가 추세다. 이러한 인식은 단어의 변화에서도 느낄 수 있다. 지금은 애완동물보다 반려동물이라는 단어가 더 자주 쓰이고 있다.

애완동물과 함께 사는 인구도 급격히 증가했다. 한국애견협회에 따르면 애완견을 키우는 인구는 약 1,00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2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 3년간 수도권을 중심으로 고양이를 기르는 인구도 상당히 증가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가족의 일원으로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애완동물들. 이들은 사회·문화 전반에 적지 않은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애견전문 스파 등 눈부시게 발전하는 애견산업

주부 김소연 씨는 추석을 맞아 인터넷쇼핑몰에서 자신이 기르는 강아지 '망치'에게 입힐 한복을 주문했다. 애견의류 전문 쇼핑몰 '이츠독(www.itsdog.com)' 황희진 대표에 따르면 추석은 일년 중 애견 한복이 가장 많이 팔리는 시기로, 하루 평균 20벌 정도가 팔린다. 추석 외에도 백일잔치, 돌, 결혼식, 설 때 애완견에게 입힐 한복을 찾는 이들이 많다.

1) '애견 태마 열차'를 탄 시민들이 애견과 함께 청평으로 여행을 떠나고 있다, 이날 운행된 애견 테마 열차는 애견식 전문브랜드 시저가 5량의 전용 객차를 임대해 애견과 함께 다양한 이벤트를 즐길 수 있도록 꾸몄다. 또한 열차에 수의사가 탑승해 간단한 애견 건강검진도 해준다. 2) 진돗개 훈련용으로 고양이를 던져주는 등 동물에 대한 학대 사건에 분노하는 시민들이 크게 늘고 있다. 3) 고급 애견간식 전문점 '쓰리독 베이커리' 4)200여 마리의 버려진 개를 키우는 정난영씨 5) SBS 'TV 동물농장'에 출연한 동물심리분석가 하이디와 꽃님이
명절이나 잔치 때 동물에게도 사람처럼 한복을 입히려는 심리는 뭘까. 황 대표는 "사람들이 애완동물에 대해 가족이라는 정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애견식품 전문브랜드 '시저'는 5량의 전용객차를 임대해 애견과 함께 여행을 하며, 객실에서 다양한 이벤트를 즐길 수 있는 행사를 마련해 눈길을 끌었다. 애완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는 반려동물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대구산업정보대학 애완동물관리과 서승교 교수는 "예전엔 애완동물을 그저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귀여운 존재로 여기는 경향이 있었지만 요즘엔 인생의 동반자라는 개념이 강하다"고 했다.

애완동물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우선 관련 산업을 변화시키고 있다. 한국펫산업협회 박용희 차장은 "동물이니까 그냥 싼 제품을 먹이고, 입혀도 된다는 심리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자식이나 다름없는 애완동물을 위해 돈 씀씀이를 아끼지 않는 고소득층을 중심으로 프리미엄 애견제품의 수요가 늘고 있다.

다이어트용, 피부개선용 사료를 비롯해 한방재료를 애견의 체질에 맞게 만든 한방사료가 동물병원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일반 사료보다 비싸지만 사랑하는 강아지의 건강을 위해서라면 돈은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애견 수제간식 쇼핑몰 '도그쿡(www.dogcook.co.kr)'은 방부제를 넣지 않은 애견과자와 영양이 가득한 곡물쿠키, 칼슘쿠키, 단백질쿠키 등 직접 만든 100여 가지의 고급 간식을 팔고 있다. 가격은 일반 애견간식 제품보다 상당히 고가임에도 많이 팔리고 있다.

애완동물 전용 스파도 인기다. '이츠독'에서 운영하는 애견전문 스파는 광고나 마케팅을 별도로 하지 않았지만 순전히 입소문만으로 하루 평균 3마리의 강아지들이 찾아온다. 아토피염 등 피부질환이 있는 강아지를 위해 천연비누로 세정해주고, 마이크로 버블로 강아지 모공 속의 때, 찌꺼기, 냄새, 세균까지 없애주는 시스템을 도입한 스파다.

애완동물용 고급 옷과 액세서리, 화장품 등 사치품도 호응을 얻고 있다. 루이뷔통, 버버리 등 해외 명품 브랜드에서 출시된 값비싼 애견 옷은 물론 최근에는 오가닉 원단으로 만든 친환경 옷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강아지 옷 가운데 신생아보다 더 좋은 제품이 많이 나오고 있다는 게 관련 업자의 설명이다.

이밖에 개 냄새를 없애주는 향수와 피부관리를 위한 화장품 등도 잘 팔리고 있다. 또, 출장이나 휴가를 갈 때 애견을 맡길 수 있는 애견호텔도 성업 중이다. 하룻밤 자는 데 10만원이 넘는 VIP룸도 있다.

강아지와 함께 놀 수 있는 놀이시설도 있다. '멍멍랜드'는 강아지들이 목줄 없이 넓은 공간에서 마음껏 뛰어 놀거나 훈련을 받을 수 있는 애견 테마공원이다. 애견 유치원도 생겨났다. 낮 동안 애완견을 돌봐주는 일산의 애견전용 유치원은 맞벌이 부부들이 많이 찾고 있다. 호화 애견 장례업체도 등장했다.

대구산업정보대학 서승교 교수는 "애견 장례문화도 발전해 애완견이 죽었을 때 사람이 죽었을 때와 거의 똑같은 장례절차에 따라 치러주는 곳도 있다"고 했다. 장례비용은 어떤 수의를 입히느냐, 또 어떤 관을 쓰느냐에 따라 수십 만원에서 수백 만원까지 천차만별이다.

반려동물 문화의 확산으로 갈수록 기존 애견상품이나 서비스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삼성화재, 현대해상 등 4개 보험회사에서 애견가들이 좀 더 안심하고 개를 키울 수 있도록 애견보험 상품도 나왔다.

동물 복지·생명 존중에 대한 인식 높아져

반려동물로 인해 생명존중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7월부터 동물사랑실천협회와 생명체학대방지포럼 등 동물보호단체가 연합해 동물을 제대로 이해하고 사랑하기 위한 지식을 제공하고자 '동물사랑 시민학교'를 열었다.

'실험 동물 학대의 현황과 개선방안' 등 동물의 복지에 관한 수업과 왜 동물을 사랑하고 보호해야 하는지를 철학적으로 고민하는 생명존중 사상 수업이 특히 학생들의 눈길을 끌었다.

우리사회에 만연해 있는 유기견이나 동물학대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동물보호법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SBS "TV 동물농장'을 통해 소개된 주인으로부터 심각한 폭력 등 학대를 당하는 개 누렁이의 사연에 시청자들은 분노했다. 이유 없이 자신이 키우는 개를 삽으로 때리고, 발로 차며, 던지기까지 했다. 이 같은 학대로 누렁이의 몸은 성한 뼈가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망가져 있었다. 누렁이 주인은 동물보호단체의 신고로 현재 기소된 상태다.

또, 얼마 전, 진돗개를 훈련시킨다며 고양이를 끈으로 묶어 저항할 수 없게 한 후, 진돗개 우리에 넣어 잔인하게 물어 뜯게 만든 장면을 찍은 동영상이 인터넷에 유포돼 충격을 줬다. 역시 동물보호단체의 신고로 동영상 촬영자는 경찰에 입건됐다.

동물학대방지연합회 김애라 대표는 "아직 생명존중에 대한 인식이 없는 사람들이 많지만 동물보호법이 강화되고, 유명무실하지 않게 실행된다면 동물학대 등의 상황이 개선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려동물과 '교감'원해

주인이 자기만족을 위해 애완동물을 키우는 자기중심적 반려동물 사랑이 아닌 동물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들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진정한 반려동물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올해 4월 결혼한 새내기 주부 이혜원 씨는 얼마 전부터 버려진 고양이 형제 두 마리를 입양해 키우고 있다. 이 씨는 남편과 협의 끝에 고양이 형제를 위해 마당이 딸린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가기로 결정했다.

그는 "고양이들이 마당에서 뛰어 노는 것을 좋아하지만 현재 아파트에 살고 있어서, 밖에 나가면 다른 주민들의 눈치를 봐야 할 때가 많다"며 "고양이들이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뛰어 놀 수 있게 해주고 싶어 이사를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반려동물을 위해 집을 옮기는 사례는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경기도 성남시에서 강아지를 키우는 박지원(가명) 씨도 이사를 준비하고 있다. 성남시가 공원 등 산책로마다 애완동물 출입을 전면 금지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박 씨는 "강아지가 산책을 못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아 걱정이 많았다"며 "공원이나 산책로에 애완동물 출입을 금지시키지 않는 동네를 물색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동물에게 값비싼 액세서리를 착용시키는 등의 소비풍조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향수와 유명 브랜드에서 나온 옷, 액세서리를 사주는 것은 동물이 원하는 게 아니에요. 키우는 사람이 즐겁자고 하는 것이지. 동물이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해요."

SBS 김기슭 PD는 "8년 전, 이 프로그램을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시청자들은 동물의 귀여운 모습 등 동물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이 많았지만 점차 반려동물과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법에 관심이 많아지고 있다"고 했다. 김 PD는 요즘 반려동물의 코드는 '교감'이라고 말했다.

"동물이 나에게 기쁨을 주는 대상이 아닌 동물과 함께 기쁨은 물론 상처와 아픔까지 공유하는 대상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반려동물과 감정을 나누고 싶어하는 욕구가 커지고 있어요. 지난 봄, 저희가 기획한 '동물심리 분석가 하이디의 위대한 교감'이라는 프로그램은 폭발적인 반향을 일으켰어요. 동물의 마음을 읽고, 대화하는 능력을 가진 미국인 '애니멀 커뮤니케이터' 하이디가 출연해 주인에게 버림을 받은 후 자폐증을 앓는 개 등 문제의 동물과 교감하고 그들의 상처를 치료하는 과정을 담았는데요. 반려동물 문화가 자리를 잡아가면서 동물의 심리적 상처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요즘엔 버려진 동물을 입양한 새 주인도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동물의 상처치유에 열정을 쏟는 경우가 많다. 동물에 대한 시각 자체가 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동물이 단지 기계적인 생물체가 아니라 감정을 가진 귀중한 생명이라는 것이다.



전세화기자 cand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