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책의 미래인가] '킨들' 가능성 보여줘… 독자층 읽기-소비-이용문화 수반돼야 현실화

아마존 킨들 DX
작가 김이북 씨는 컴퓨터로 원고를 다듬느라 여념이 없다. 손가락으로 컴퓨터 화면을 터치해서 10페이지에 있던 내용을 다시 확인해 본다. 키보드를 몇 번 더 두드린 후 막 글쓰기를 마친 그는 출판사에 원고를 송고했다. 이제 일주일 후면 독자들이 이 책을 다운로드 받아서 읽을 수 있게 된다.

시간이 없다. 아내와 기차 여행을 떠나기로 한 시간이 다 됐다. 책을 쓰느라 여행 준비를 하지 못했던 그. 동네의 작은 단골 서점에 들렀다. 기차에서 읽을 몇 권의 책과 여행지에 대한 책 한 권을 자신의 전자책 단말기에 다운로드했다. 물리적인 무게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한 손에 쥘 수 있는 전자책 단말기 하나에 수백 권의 책이 파일로 담겼으니까.

여행지에서 길을 헤맬 필요도, 추천 레스토랑도 못 찾을 이유가 없다. 책 속엔 길을 찾아가는 방법도 영상으로 보여진다. 여행지에서 한참 즐기고 있자니 이튿날 출판사에서 김이북 씨 책의 가제본을 보내왔다. 물론 그의 전자책 단말기 속으로.

이런 모습이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일일까? 여기에서 더 나아가서(저작권 문제가 없고 작가가 때때로 업데이트를 할 수 있다면) 영화의 디렉터스 컷이 존재하듯, 독자나 작가 자신의 고유의 편집본도 생길 수 있지 않을까도 상상해 본다.

전자책(e-book)으로 달라진 김 씨의 일상은 프랑스의 중견 출판사 'Editis'가 제작한 동영상을 각색한 것이다. 유튜브에 올려진 영상을 본 세계 각국의 네티즌들은 흥미롭다는 반응이다. 현재로선 영상처럼 전자책 단말기 보급과 전자책 출판이 일상화되지는 않았다. 전자책 단말기 역시 참 영리하지만 이런 미래가 10년 후일지언정, 상상만은 아닐 거라는 기대감을 품게 한다. 최근 몇 년 사이 세계적으로 전자책 시장에 생기가 돌고 있기 때문이다.

전자잉크 디스플레이 탑재한 아마존 킨들
2007년 아마존 킨들의 등장은 전자책 시장이 활성화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동안 전자책이 활성화되지 못한 이유 중 적지 않은 부분이 종이책의 정서에 익숙해진 독자들의 심리적인 면이라고 여겨졌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전자잉크(e-ink) 기술을 채용하기 이전의 전자책 단말기의 눈부심과 콘텐츠의 부족, 다른 매체와의 호환 등이었음이 아마존의 사업모델을 통해 드러난 셈이다. 아마존 킨들을 쫓아 전자책 시장에서 출판계의 새로운 활로를 찾고자 하는 움직임이 국내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국내산 전자책 단말기가 올해에만 세 개 기업에서 출시되었고 그 출발도 비교적 좋은 편이다. 이에 따라 출판계 쪽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샴페인을 너무 빨리 터트린다는 지적도 없지 않은 가운데, 업체들 간의 연합이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다. 아마존 킨들의 등장 이후에도 전자책 매출만 크게 늘었을 뿐, 종이책의 매출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다는 점도 출판사들에게 동기 부여가 됐을 것으로 보여진다.

김영사와 뜨인돌, 해냄출판사 등 50여 개의 중견 출판사가 참여한 한국출판콘텐츠는 지난 7월 발족식을 했다. 예스24, 알라딘, 웅진(북센), 민음사 등 인터넷 서점과 출판사, 언론사 등이 모인 한국이퍼브 역시 지난 달 출범했다.

북센 이종호 본부장은 출판계의 분위기에 대해 "기대와 우려가 반반"이라고 전했다. "전자책의 가격이 종이책보다 저렴해 전체적으로 매출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와, 디지털 컨버전스 개념으로 받아들여 종이책이 익숙하지 않은 젊은이들에게 오히려 새로운 매체로 어필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라고 설명했다.

전자책 전문서점인 디지털 교보문고는 내년의 전자책 시장 규모를 1조600억 원으로 잡았다. 2012년에는 2조3,800억으로 큰 폭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주식시장에서도 이런 기대감을 반영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마침내 종이책을 대신해 전자책이 사용될 시점에 이르렀다"고 말한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의 예측도 이러한 핑크빛 전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러나 10년 전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는 걸 기억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120개 출판사가 자본금을 모아 설립했던 전자책 기업 북토피아는 각 출판사에 여전히 지급하지 못한 저작권료 수십억 원을 끌어안고 있다. 전자책으로 만든 12만 권의 콘텐츠도 팔리지 않은 것이 팔린 것보다 몇 배나 많다.

결국엔 새로운 시장의 활성화도 잠재 사용자층의 소구력을 전제해야만이 보다 명확한 윤곽이 그려지기 마련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현 상황에서는 사용자의 편의성 측면에서는 아이폰과 같은 스마트폰이 더 현실적이라고 진단한다.

혁신적인 단말기의 제공으로 갑자기 책 읽기와 소비의 지형이 바뀌기를 기대하기보다는 이 같은 점진적인 변화와 독자층의 읽기-소비-이용 문화가 수반될 때 일각에서 말하는 청사진의 현실화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