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공간, 문화도시 서울 새 거점] 금천예술공장 개관 기념 국제 심포지엄, 세계 곳곳 사례 소개

지난 8일 금천예술공장에서 열린 개관 기념 국제 심포지엄 장면
"창작공간의 역할은 도시에 창조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입니다."

일본 요코하마시의 창작공간 뱅크아트1929의 오사무 이케다 디렉터의 말처럼, 창작공간은 세계 여러 도시에 활달한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

이제 막 시작하는 서울시 창작공간에 세계 곳곳의 사례는 참고가 될 만하다. 지난 8일 금천예술공장에서 열린 개관 기념 국제심포지엄에서는 뱅크아트1929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스마트 프로젝트 스페이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앙가의 예가 소개되었다.

그 출생에서부터 운영 방식까지 서울의 창작공간에 가장 구체적인 팁을 줄 수 있는 곳은 뱅크아트1929다. 1929년에 설립된 다이이치 은행 건물을 문화예술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는 의미다.

뱅크아트1929가 추구하는 문화예술은 도시 재생을 위한 '도구'. 요코하마시는 이 점을 분명히 하는 대신 이 공간에 기획, 운영의 자유를 보장했다. 그 결과 뱅크아트1929는 시민이 참여하며 만들어가는 공간인 동시에 카페, 서점 등 내부 상점, 콘텐츠 사업 등을 통해 시의 보조금보다 더 많은 자체 수익을 올리게 되었다.

오사무 이케다 디렉터가 밝히는 비결은 개방과 공유다. 심지어 거의 아무것도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공간을 열었다. 예를 들면, 공간 안에 술집을 갖추기로 했지만 메뉴는 정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오가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누군가가 특정한 칵테일을 요구하면, 그것을 만들 수 있는 또 다른 누군가가 바텐더 노릇을 하는 식이었다.

자체적으로 기획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동시에 시민과 예술가들이 제안하는 프로젝트의 실현 방안을 찾는 것도 중요한 업무다. 1년에 약 천2백 개의 제안을 받아 그중 약 3백5십 개 정도를 현실화한다.

뱅크아트1929를 대표하는 '의자 프로젝트', '모던걸, 모던보이를 찾아라' 등은 공간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의자 프로젝트'는 홀을 채울 의자를 모으기 위해 시작한 것. 시민들로부터 쓰지 않는 의자를 기증받아 등받이에 기증자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 자신의 이름이 적힌 의자를 갖게 된 시민들은 쉽게 다시 이 공간을 찾아 올 수 있었다.

'모던걸, 모던보이를 찾아라'는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의 젊은 시절 사진을 모으는 프로젝트였다. 이를 통해 여러 세대가 자연스럽게 교류하게 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나가사키, 하쿠다테 등 다른 도시로 퍼져나갈 만큼 인기를 끌기도 했다.

이는 오사무 이케다 디렉터의 설명대로 "공공부문과 협력하되 공간 스스로 적합한 역할을 찾으며 독립해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요코하마시와 뱅크아트1929 운영주체가 창작공간에 대한 이해를 공유하고 역할을 적절히 분담한 덕이다.

한편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문화 도시로 만드는 데 기여한 스마트 프로젝트 스페이스의 토마스 페즈 디렉터는 서울시 창작공간에 대해 "좋은 출발"이라고 독려하면서 "창작공간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문화예술을 관객들에게 다시 노출하고, 그를 통해 의사소통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공간의 행정은 문화예술인이 꿈꾸는 바를 현실화하도록 뒷받침하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예술인들에 의해 운영되는 스페인 앙가 창작센터의 국제교류 프로그램 코디네이터 조아나 세르비아 역시 입주작가들을 최대한 지원할 수 있는 센터 내 인프라를 소개했다.

하지만 아무리 훌륭한 제언도 한국사회의 맥락에서 받아들여야 하는 법. 문화유산국민신탁 오민근 사무국장은 현재 창작공간 조성을 포함한 지자체들의 '창조적 도시' 프로젝트가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한 방안으로써 기존 도시계획의 연장선에서 추진되는 데 우려를 표했다. "산업단지유치 같은 획일적 정책으로는 지역과 소통하지도 사회의 변화에 대응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문화예술과 관련한 제도의 목표는 "창의성을 끌어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인재를 발굴하고 기르는 것"임을 잊지 말자는 죽비였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