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갤러리] 최진욱 개인전

1-임시정부1, 2009. 2-수행, 2009. 3-임시정부5, 2009. 4-임시정부2, 2009.
화가 최진욱의 그림이 '리얼'한 것은 단지 몽타주한 사진을 그려내는 공정 때문이 아니다. 그는 종종 그림 안에 균열하고 분리되는 경계들을 두는데, 그곳에 이르면 걸음을 헛디딘 듯 시선이 흔들린다.

이 감각이야말로 최진욱 그림의 '리얼리티'다. 참, 세상이란 얼마나 기이하고 아찔한 곳인가. 그는 현실의 형상뿐 아니라 그에 대한 존재의 반응까지 그려낸다.

<수행>이 좋은 예다. 고요한 절 안과 포크레인이 헤집고 있는 절 바깥이 끊길 듯 이어져 있다. 화가의 설명에 따르면 "산 속의 절 앞에 '수행 중이오니 관람객은 정숙해 달라'는 팻말이 서 있는데, 그 옆에 포크레인이 계곡의 돌들을 파내고 있다. 자고로 수행은 이런 식이다."

그림 안을 가로지르던 경계들이 이번 전시에서는 그림과 그림 사이로 뛰쳐 나오는데, 이를 통해 감각과 해석의 가능성도 비약한다.

이를테면 <노인과 바다>. 변방으로 밀려난 노인들이 하릴없이 다다른 곳은 아마도 잡동사니, 어쩌면 음란물, 순간을 자극하면서 시간을 죽이는 덧없고 명쾌한 것들이다. 길거리 좌판 너머에 검은 파도 그림을 배치함으로써 화가는 노인들의 시선을 저 "넘실대는 죽음 속"으로 이끈다.

1-전봇대1, 2009. 2-떠나가는 날, 2009. 3-노인과 바다, 2009.
꼭 그 형식처럼, 최진욱은 현실에 가장 부지런하게 반응하는 화가다. 그의 그림에는 늘 당대 한국사회에 일어난 일들이 어른거린다. 전시 제목인 <임시정부>는 작년 불거진 '건국절' 논란과 이어진다. "정부가 작년 광복절을 건국 60주년으로 고쳐 부르기로 하면서 (90년 전에 세워진) 임시정부가 진행형의 단어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회적 의도에 의해 언제든 불려나올 수 있을 만큼 '한국'의 의식에 잠복해 있는 개념이지만 중국 상하이에 있는 임시정부는 한국인들도 기껏해야 사진이나 한 장 찍고 마는 박물화된 관광지에 불과하다. 이 아이러니와 복합성이 <임시정부> 연작들에서 드러난다.

누군가는 그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데, 누군가는 그 역사에 아랑곳없이 지나간다. 경비원은 제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건국 60주년'에 부처 이 곳을 한국에 되살린 이가 대체 누구인지 궁금하게 하는 무심한 부조리.

전시 제목에는 또 다른 뜻이 있다. 화가는 자신의 그림을 임시정부에 빗댄다. 개념과 현실의 '경계'로서의 임시정부는 "모더니즘과 사실주의가 긴장 관계를 이룬 그림의 상태, 그리고 그 때의 몸의 감각"과도 같다.

혹은 화가로서의 고집이다. 다양한 장르와 매체에 질식하기 직전인 그림의 특유한 변증법을 현재형으로, 부단히도 되살리려는.

최진욱 개인전 <임시정부> 전은 서울 강남구 논현동 갤러리로얄에서 다음달 15일까지 열린다. 02-514-1248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