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문화에 눈을 떠라] 플래너스 종합건설 신기옥 회장미학적 측면서 건축과 미술 접목 경영인·화가로 두 토끼 잡아

2006년부터 명사미술전에 작품을 출품해온 플래너스 종합건설의 신기옥 회장(70)은 이력이 독특하다. 대부분의 명사들이 그림이 좋아 그리기 시작한 애호가이지만 홍익대학교 서양화과를 나온 그는 학창 시절부터 눈에 띄던 작가였다. 40년 넘게 사업가로 살아왔지만 그의 붓과 손은 녹슬지 않았다.

해마다 겨울이면 이젤 위에 캔버스를 올렸고 그림을 그릴 수 없을 때는 먹을 갈아 화선지에 글씨를 썼다. 유년기에 서당을 다니며 한자와 서예를 익힌 덕분이다. 양평에 자리한 아뜰리에에는 그림과 글씨에 대한 그의 치열한 예술혼이 녹아난 작품들로 가득했다.

"아침에는 일하고 밤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서 새벽 2~3시에 자는 일이 많았어요. 하얀 캔버스에 무엇을 그려야 할까 하는 고민으로 밤을 지새기도 했지요. 이제는 화풍이 어느 정도 잡혀서 괜찮지만요."

그는 사업에 뛰어든 후에도 문화예술과 기업을 따로 떼어놓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현대 건축에서 공학 못지 않게 미학이 굉장히 중요한 시대죠. 미학적인 측면에서 건축과 미술을 어떻게 접목시키는가가 핵심이었습니다." 지난 40여 년을 관통한 경영철학을 이같이 갈음했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건물의 미적 감각이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는 강남 일대에서 80여 채의 오피스 건물을 지어냈다.

"건축과 회화는 모두 디자인과 칼라가 필요하지요. 제가 대학 다닐 때만해도 건축과는 미대 안에 있었거든요. 그만큼 밀접한 관계죠. 건설회사지만 시공만 하는 게 아니라 디자인과 설계까지 참여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덕분에 플래너스는 오피스 건물을 심플하면서도 보기 좋게 짓는 회사로 소문이 났다.

경제적 자립을 위해 사업을 택했지만 시간을 쪼개가며 그림을 그리고 2007년 첫 개인전을 열기 위해 일년 전부터 인사아트 갤러리를 대관했던 것을 보면 그림에 대한 열망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프랑스에서 시작된 회화운동 앵포르멜(기하학적 추상)이 한국 화단을 풍미하던 시절, 매너리즘화 되어가던 앵포르멜에 대한 반동으로 등장한 전위적인 청년 작가 모임 '오리진'. 그 창단멤버 중 한 명이 신 회장이었다. 학생으로서는 드물게 미술 공모전에서 수상한 경력도 가졌던 그가 기업 경영인으로 진로를 변경했을 때 미술 관계자들은 안타까움을 표하곤 했다.

그의 작품 속에는 태극문양이나 청사초롱의 빨강과 군청색(울트라 마린)을 주조색으로, 생성과 소멸, 순환 그리고 현재 '시츄에이션(상황)'에 이르기까지 우주적인 담론을 담아낸다. 나이프로 일일이 작업한 직선의 마티에르는 '건축적'이라는 표현이 낯설지 않다. 다년간 건축에서 쌓아온 커리어가 캔버스 위에서 그에게 빛나는 영감으로 다가온 것이다. "현대 건축의 특징은 단순한 직선의 무한 반복입니다. 디지털이 0과 1의 반복인 것과 같은 맥락이죠. 이건 현대 미학의 특성이기도 합니다."

그가 본격적으로 작가 활동에 박차를 가하자 화단은 열렬히 기다려왔다는 반응이다. 2007서울아트페어에 예맥화랑의 전속작가로 참여해 출품한 12점이 모두 팔리기도 했다. 100여 개의 화랑이 참여하는 서울아트페어가 생긴 이래 처음 있는 일이라며 화랑계는 놀라워했다.

뉴욕아트페어와 상해아트페어 참여, 최근에 열린 키아프(한국국제아트페어)까지 러브콜이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에는 상해아트페어에서 주기담 국립미술관 큐레이터의 눈에 띄어 연말에 일주일간 초대전을 열기도 했다.

지난해 즈음부터 아들(신재호 플래너스 종합건설 대표)에게 경영일선을 이양하고 고문의 역할을 하게 된 그는 점점 더 깊이 있게 작품세계로 빠져들고 있다. 당장은 오는 12월 인사동에서 열리는 개인전과 신한은행의 아트앤컴퍼니의 초대전이 기다리고 있지만 작가로서 더 큰 꿈이 있다.

평창동에 개인 미술관을 짓고 그곳에 상설전시를 하는 것이다. 미술관이 완공되기 전에 100호 크기의 대작을 300점 정도 그리는 것이 남은 일생의 목표다. "머리 속에서 상상하는 것들이 있지만 아직 캔버스에 작품으로서 표현하지 못했어요. 내 작품의 칼라는 유지하면서 심도 있게 펼쳐나가야지요." 경영인과 작가. 언뜻 상반되어 보이는 듯한 두 세계가 충돌하기는커녕, 긍정적인 파동을 주고 받으며 완성되어가는 그의 삶이 문득 아름답게 느껴진다.

신기옥 회장은…

플래너스 종합건설 회장. 홍대 서양화과 졸업. 국전에 입선, 조선일보의 '현대전'에서 차석상을, 신상일보의 '신상전'에서는 대상을 수상했다. 뉴욕아트엑스포, 상해아트페어, 서울아트페어, 키아프 등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그가 CEO로서 플래너스 종합건설에서 지은 대표적인 건축물로는 서울 삼성동 CC빌딩, 역삼동 YC빌딩, 환타지아빌딩, 그랑프리빌딩과 현재 사옥으로 사용하는 대치동 PLATINUM빌딩 등이 있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