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갤러리]<Lack of Electricity> 전

1-아람 바르톨, Random Screen, 2005. 2-아람 바르톨, Random Screen, 2005. 3-박준범, Bicycle2, 2009. 4-박준범, Name, 2009.
미디어아트에 대해선, 약간의 의혹을 갖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 발 맞춘 예술의 첨단적 잠재력은 수긍하나 그 기술적 '발전' 속도를 뒷받침 하는 것이 과연 장르 자체의 미학인지에 대한 회의 때문이다.

미디어아트를 성립시키는 기본 논리는 인간 감각을 확장시키고, 삶의 방식과 사회의 구성 원리까지 재편할 수 있는 미디어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다. 하지만 기술이 출현하고 유통되는 제반 조건과 이해 관계에 대한 성찰이 없는 기술결정론은 공허하다. 성찰 없이 확장되는 감각이 대체 무슨 의미인가.

예를 들면 많은 미디어아트 작품들이 터치 스크린, 인체 감지 센서 등의 소통 기술을 장착하고 관객의 참여를 고안하는데, 이는 기술이 인간과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반응의 선택지가 다만 말초적인 쾌감과 놀라움일 때 이런 소통 방식의 '민주적' 의미는 무색해진다. '디지털 장난감'이야 시중에서 가지각색으로 절찬리 판매 중이다. 미술관까지 와서 관람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전은 이런 의혹을 함께 고민하는 미디어아트 전시다. 기술적 측면에 현혹된 미디어아트에 대한 반성이 엿보인다. 미디어아트의 존재 의의를 찾기 위해 아예 극단적인 처방, 미디어아트의 혈액과도 같은 전기를 끊어버리는 설정을 한다.

다섯 명의 작가가 각각의 대처 방안을 내놓았다. 우선 아람 바톨은 0과 1로 대변되는 디지털 신호를 아날로그적으로 재현한다. 그의 에서 꺼짐과 켜짐을 반복하는 '전구'의 빛은 사실 촛불이다.

1-전병삼, Lack of Energy, 2009. 2-정홍섭, 디지털화석, 2009. 3-헤르빅 바이저, Lucid Phantom Messenger, 2008~2009. 4-헤르빅 바이저, Lucid Phantom .Messenger 세부, 2008~2009
헤르빅 바이저는 디지털 미디어의 기본적인 물질들 즉 액정, 실리콘, 유리섬유 등에 전기화학 자극을 주어 제 기능을 잃도록 '퇴행시킨다.' 이 과정을 조합해 만든 작품은 예기치 않게도 어쩐지 서정적이고 몽롱한 형과 색을 띠고 있다. 라는 작가의 명명은 아이러니하다.

정흥섭은 쉽게 사라지고 지워지는 디지털 가상공간의 '역사'를 남기고자 한다. <디지털화석> 은 디지털 공간에서의 오류에 대한 기억이다. 게임 캐릭터의 옷에 붙어 있는 단추를 3차원 이미지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난 이미지들을 인쇄한 종이를 쌓아 '지층'을 만들었다.

박준범은 이와 반대로 비디오의 기술적 가능성을 최대한 활용함으로써 오류난 것처럼 보이는 화면을 만들어낸다.( , , ) 속도와 시간의 흐름, 스케일 등이 조작된 운동 이미지들은 그것을 인간의 시각에 매개하는 미디어의 역할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보다 재고하게 만든다.

전병삼의 는 쌍방향 소통 기술이라는 전위적 가능성을 내세우다 오히려 그 지엽적 기능에 갇히고 만 미디어아트의 딜레마를 풍자하는 듯하다. 관객은 자가발전기의 핸들을 돌려야만 TV 뉴스를 볼 수 있다. TV 화면에는 전기가 얼마나 충전되었는지 표시된다. 그러나 충전이 끝나는 순간 TV는 꺼지고 만다. 관객에게는 메시지 없는 '참여'의 경험만 남는다.

'미디어'아트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 작품들은 낯설고 진지한 '미디어+아트'다. '전기'로 상징되는 제반 조건을 제거함으로써 관객을 오히려 미디어아트의 본질로 이끈다. '전기'의 뜻을 다각도로 해석함으로써 '미디어아트'를 확장시키는 것이야말로 관객이 참여할 몫이다.

서울 성북구 성북동 스페이스 캔에서 11월19일까지 열린다. 02-766-7660.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