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갤러리] 유근택 개인전 전

왼쪽부터 '어떤 만찬, 2007', 'A Scene, 2009', '파도소리, 2009'
전시장을 들어서자마자 마주치는 <어떤 만찬> 시리즈는 유근택 화가의 대표작이다. '요점'을 해독해보자.

음식은 산다는 일에 가장 가까운 소재다. 생물의 호흡과 움직임에서 일상에까지, 그야말로 착 달라붙어 있어 떼어내면 그대로 삶의 모양을 띠게 되는. 당신이 먹는 것이 당신이 될 뿐 아니라, 당신이 먹은 사정이 곧 당신을 알려준다.

저 흐드러진 상차림을 앞두었던 그들은 누구와 무엇을 어떻게 먹었을까. 오가는 말들과 제스처는 어떠했을까. 대략 높은 분들의 중요한 만남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어쩌면 거액이 걸린 계약의 자리, 어쩌면 외교 정책이 결정되는 자리였을 터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없고, 더럽혀진 식기들만 어지럽다. 한때 찬란했을 고대 유적을 보는 것처럼 황망하다. 저 자리에 가득했을 욕망과 으스댐의 각축, 한껏 차려 건네어졌을 정치적 수사들, 인간 사회를 '발전'시킨 중요한 판단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걸 대단히 넓고 높게 펼쳐 놓았다. 한 상마다 키가 2m, 너비는 2~5m에 이른다. 한낱 소시민인 우리를 와락 덮친다. 시야가 한 치 앞인 중생들의 삶을, 쯧쯧, 혀 차듯 내려다 본다.

왼쪽부터 'Snowing, 2009', '구석 위의 삶, 2009', '생일, 2009'
이것이 유근택의 '동양화'가 구현하는 미학이다. '수묵에 채색'이라는 재료를 제외하곤 동양화에서 가장 먼 꼴이지만, 사상은 가장 '동양화적'이다.

2008년 LA 죠수아 트리 사막을 여행한 후 제작한 <세상의 시작>도 같은 맥락이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현기증이 나는 저 아득하고 허무한 소용돌이야말로 그가 받은 사막의 인상(印象)이었을 게다. 그런데 중심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들은 일상의 물건이고 거리의 풍경이다.

침대와 식탁, 변기와 표지판, 비행기까지도 저 도도한 흐름에는 견뎌낼 재간이 없다. 자연의 섭리나 우주의 원리에 비하면 인간의 문명이야 아무리 아등바등한들 너절할 뿐임을 이른다. 모든 단단한 모서리를 뭉개 흐리는 붓질이 묻는다. 당신은 어디쯤 있는가.

그 와중에 우리는 이런 곳에 있다. 꼬물꼬물한 가구들이 들어찬 방구석에(<구석 위의 삶>), 동물 모양 풍선으로 채운 생일잔치에(<생일>), 깊은 밤이 내다 보이는 베란다 앞에(<실내>), 파도가 날름날름 핥는 모래사장에(<파도소리>), 도로 모퉁이 반사경에 비친 채(), 하염없는 눈발 속에 사방도 분간 못한 채(). 화가는 자차분한 일상의 장면들을 각기 두 톤의 시각으로 도려내어 <만유사생萬有寫生> 시리즈를 엮었다. '만물이 생을 베껴 있다' 혹은 '삶을 구성하는 모든 것들' 이라 해석할 수 있다.

유근택은 홍대 미대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시절 "정선(鄭敾)의 정서에 관한" 논문을 썼다.

"동양미학이 운필론에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특히 현대사회에선 운필만으론 해결할 수 없는 지점들이 있다. 문화도 문화지만 단편적인 예로 슬픈 사람이 보는 세계와 기쁜 사람이 바라보는 세계는 같은 풍경을 바라보고 있어도 같을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대학원 때부터 운필의 문제보다는 정서의 문제를 들춰내는 것이 작업의 중요한 목표이자 지점이었던 것 같다."

그러므로 유근택이 꾸준히 기대어 쓰는 동양화의 기법, 묵의 배어남과 번짐, 붓질의 섬섬한 결과 담담한 색채 등은 '동양화'의 틀이 아니라 그가 세상과 부대끼는 정서, 나아가 철학 그 자체다.

유근택 개인전 <만유사생>은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 위치한 사비나미술관에서 29일까지 열린다. 02-736-4371.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