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얼굴] 좁은 미간과 긴 코, 마른 뺨… 예술가로 보이는 얼굴은 따로 있어

첫번째 줄 왼쪽부터 미술가 유승덕, 디자이너 정욱준, 연극배우 이호성, 패션디자이너 장광효. 아랫줄 왼쪽부터 영화감독 김지운, 발레리나 강수진, 힙합가수 타이거 JK, 발레 무용수 이원국
예술가는 작품으로 말한다?

그러나 예술가들도 베일을 벗고 얼굴을 드러내는 순간이 있다. 패션쇼의 마지막, 모델들의 행렬 끝에 나타나는 디자이너의 얼굴. 탈고 후 후련한 심정으로 언론 매체와 대중 앞에 서는 문인의 얼굴. 공연을 끝낸 연주가, 성악가, 무용가 등 자신의 몸이 예술의 수단인 경우에는 두말할 것이 없다.

그들의 얼굴을 대하는 순간 우리의 뇌는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작업을 수행한다. 인간 내면의 잔인함에 대해 통렬히 비판하는 내용의 책을 써온 작가가 두 개로 접힌 턱에 얼굴에는 기름이 번지르르하다면 어떤 이들은 실망감을 넘어 배신감까지 느끼며 "그 사람의 작품에는 진정성이 부족하다"고 평할지도 모른다.

반대로 딱히 흠잡을 것은 없지만 그렇다고 참신하다고도 할 수 없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움푹 들어간 깊은 눈동자로 관객들을 마주보며 자신의 작품 세계를 설명한다면 홀린 듯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할 수는 없지만 무언가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하나의 선율이, 한 점의 그림이 당신의 가슴에 파장을 일으켰을 때 당신은 그 창작자의 얼굴이 어떠할 것이라고 기대하는가.

예술적으로 안 생겨서 죄송합니다

왼쪽부터 탤런트 홍요섭, 피아니스트 김정원, 소설가 이외수
"예술가처럼 생긴 얼굴은 따로 있습니다."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는 정확한 수치까지 들며 확신한다.

"100명의 얼굴 사진을 늘어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예술가처럼 생긴 얼굴을 뽑아보라고 해보세요. 십중팔구 3명에서 5명 이내로 압축됩니다. 전형적인 예술가 상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뜻이지요."

관상과는 다른 이야기다. 막연히 보기 좋은 얼굴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일반인들로 하여금 예술 분야와 관계되어 있을 것이라고 믿게 만드는 얼굴의 특징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의미다. 이 특징은 나라마다 다르고 예술 장르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관객과 얼굴을 대하며 소통하는 일이 많은 클래식 연주가들의 경우 얼굴은 대단히 중요하다. 보통 잘생긴 얼굴이 선호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보릿고개를 넘어 온 '헝그리 형' 미남, 미녀보다는 이목구비가 덜 뚜렷하더라도 약간은 부유한 느낌, 서구적이고 고급스러운 얼굴이 좀 더 깊고 부드러운 소리를 낼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반대로 문인은 잘 생겨서 나쁠 것은 없지만 오히려 너무 곱상하게 생기면 마이너스 요인이 된다. 삶의 무게를 다 짊어진 듯한 푹 패인 뺨, 미간에 새겨진 주름 같은 것들은 그가 골방에 틀어박혀 이 사회와 자신을 돌아보며 창작에 몰두하는 시간이 많다고 말해주는 듯 하다.

패션 디자이너들은 너무 심각한 것보다는 적당히 가볍고 수다스러운 이미지도 좋다. 날렵한 턱이나 부드럽게 웃는 입매는 첨단 트렌드를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창조적으로 변용할 것 같다.

국내 유일의 얼굴학자 조용진 교수는 오랜 시간에 걸쳐 흥미로운 연구를 계속해 왔는데 그 중에는 한국인 같은 얼굴은 무엇인지, 심지어 경상도 사람 같은 얼굴은 무엇인지에 대해 답을 찾는 것들도 있다. 그는 사람 얼굴의 약 500 곳을 측정해 통계를 내는 방법으로 지역별, 성격별, 직종별 얼굴의 공통점을 추적했는데 결과는 분명히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

예를 들어 축구 선수들은 일반인들에 비해 눈 사이가 넓고 반대로 야구 선수들은 눈 사이가 좁다는 사실 등이다. 그러나 통계적으로 얻어 낸 이런 공통점들과 대중의 기대 사이에는 상당한 간극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추가적으로 알게 되었다.

"예술가의 얼굴에도 어떤 공통점이 있기는 합니다. 예를 들면 문학가들은 왼쪽 이마가 보통 사람들보다 좀 더 발달한 편이지요. 하지만 사람들이 예술가인가 아닌가를 판단할 때는 이런 기준들은 거의 쓰이지 않습니다. 대중이 예술가라고 믿는 얼굴은 단지 관념적 상일 뿐입니다."

그가 꼽는 전형적인 예술가 상은 탤런트 홍요섭의 얼굴이다.

"정신적으로 발달했다는 느낌, 사색적 이미지, 성숙함을 표출하는 이목구비가 따로 있습니다. 여기에 부합하면 실제 그 사람의 직업과 관계 없이 예술가로 인식되는 거지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먼저 눈썹은 진하고 미간이 좁으며 눈썹과 눈 사이, 그러니까 눈두덩이 좁아야 한다. 빡빡한 눈썹은 까다로워 보이고, 좁은 미간은 우울함을 뜻하며, 협소한 눈두덩은 깊은 사색을 할 것만 같은 인상을 풍기기 때문이다. 눈썹은 치켜 올라가지 않고 수평을 그려야 욕심이 없어 보인다. 눈동자는 큰 편이 세상물정에 대해 무지해 보이고 길고 풍성한 속눈썹은 동심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을 것 같다.

코가 길면 점잖은 느낌이고 콧망울은 넓은 것보다 좁은 것이 예민한 이미지와 함께 대인 관계의 폭이 좁을 것으로 예상된다. 작은 입은 소심해 보이기 때문에 예술가의 이미지와 맞는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의외로 큰 입이 왕성한 창작력과 개성을 드러내기에 적합하다.

입술이 두꺼우면 '육(肉)'적인 면이 강조되기 때문에 얄팍한 입술이, 여기에 제대로 관리를 하지 않아 살짝 누르튀튀한 피부와 (남자일 경우) 다듬어지지 않은 수염, 굵은 머리카락에 언뜻 보이는 새치 같은 것들이 분위기를 더해주는 요소다. 재력과는 담 쌓은 듯한 작은 귓불에 턱은 좁고 볼의 피하지방이 없으며 쇄골이 뚜렷하면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혹시 시 쓰세요?"

예술가들은 우울하고 문란하다?

미술평론가 반이정씨에 따르면 대중이 그리는 예술가의 상은 18세기말~19세기 중엽 낭만주의 시대에 형성된 이미지가 오랜 시간 수정 없이 그대로 계승된 것이다. 한때 서양에서는 아예 예술가들의 체액은 일반인과 다르다는 설이 대두되기도 했다.

히포크라테스가 제기했던 4가지 기질에 따르면 예술가들은 흑담즙질 형으로, 정서가 풍부하고 감수성이 예민하며 창작성이 풍부한 반면 침울하고 실천력이 떨어지며 정신병리현상에 잘 빠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이 분류법은 종래에는 혈액형 점보다도 정확도가 떨어지는 것으로 밝혀져 거의 쓰이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예술가들에 대한 이미지는 아직 유효하다. 고독한, 감정적인, 비사회적인, 우울한, 거식의, 방황하는, 문란한 등의 이미지는 대부분 학습에 의해 형성된 것들이다. 영화에 나온 랭보의 방랑벽이나 고흐의 정신병, 피카소의 여성 편력, 이상의 폐인 같은 생활, 이외수의 기행을 보면서 우리의 뇌는 그들의 얼굴과 행동을 하나로 묶는 범주화 작업을 시작한다.

만들어진 상은 또 그들의 작품 세계와 연결되면서 하나의 세트를 이룬다. 사물을 인지할 때 빠른 판단을 내리기 위한 것으로 이상의 마른 뺨은 오감도와 하나로 묶이고, 베토벤의 찌푸린 미간은 운명교향곡과 하나가 된다.

이렇게 차곡차곡 저장된 데이터 베이스는 처음 보는 사람을 대할 때 머리 속에서 자동재생된다. 무수한 편견을 생산할 우려가 있는 방식이지만 경제적 사고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뇌의 선택이다.

대중의 머리 속에 자리잡은 예술가 상에 꼭 들어맞는 한국의 예술가들은 사실 그리 많지 않다. 클래식 음악계에서는 피아니스트 김정원이 대표적이다. 기본적으로 균형이 잘 잡힌 이목구비에 미소를 지으면 유약한 느낌을 줘 피아노 선율과 잘 어울린다.

그는 얼마 전 영화 <호로비치를 위하여>에 캐스팅돼 실제로 연주를 하기도 했다. 패션 디자이너 장광효는 쌍꺼풀이 지고 동공이 큰 눈에 전체적으로 목탄으로 그려 놓은 것 같은 부드러운 윤곽을 가지고 있어 섬세한 디자인을 할 것 같은 인상을 풍긴다.

이와 반대로 강렬한 느낌의 예술가 상으로는 발레리노 이원국이 있다. 강인해 보이는 턱선을 가지고 있지만 옆으로 길게 뻗은 눈과 긴 코, 반 곱슬머리가 아티스트의 창조성과 감성을 드러낸다. 문인 중에는 시인 이상의 쓸쓸해 보이는 인상이 지배적이다. 죽 찢어진 눈과 날렵한 턱, 항상 찡그리고 있는 미간 같은 것들은 그의 기이하고 허무한 작품 세계와 잘 들어 맞는다.

타이거 JK는 긴 얼굴형과 우뚝 솟은 긴 코가 정적이고 고독한 느낌을 주지만 툭 튀어나온 광대뼈와 수염, 흐트러진 머리로 언더그라운 뮤지션의 고집과 거친 면모를 대표한다.

발레리나 강수진 역시 짙은 눈썹에 큰 눈으로 전형적인 예술가 상이다. 입술이 얇고 턱에 약간 각이 져 주체성과 개성이 강해 보인다. 영화감독 중에는 김지운 감독이 비교적 근접하다. 짙은 눈썹과 좁은 미간, 동그란 눈은 영상미와 완성도에 유독 집착할 듯한 인상이다.

감정과 철학의 총체적 집결체, 얼굴

"기억에 오래 남지 않는 인상이라 고민이다"라는 한 바이올리니스트의 고백처럼 대중이 가진 선입견은 작가의 작품 평가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친다. 그러나 소위 예술가의 얼굴을 타고나지 않았다고 해서 슬퍼할 이유는 없다. 창작자의 얼굴이 작품에 영향을 미치듯 작품 역시 창작자의 얼굴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조용진 교수는 "얼굴은 감정의 총집결체"라고 말한다.

"생각하는 것, 읽는 것, 보는 것 등 인간이 받는 모든 자극은 얼굴에 전부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10년, 20년 계속 되다 보면 당연히 얼굴은 바뀌게 됩니다."

심리학계에서는 거의 속담에 가까운 설을 내놓는다.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은 통계적으로 보았을 때 맞는 이야기입니다. 작가의 철학뿐 아니라 그 작가가 만든 창조물을 본 대중의 반응까지도 작가의 얼굴을 형성하는 요인이 됩니다. 젊은 예술가들 중에 강렬한 인상을 주는 사람들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은 이유는 그들의 작품이 얼굴에 영향을 끼칠 시간이 상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이를 증명하는 데 굳이 과학적인 자료가 필요할까? 노장 예술가들의 눈썹과 입술서에 쌓인 카리스마를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예술가의 얼굴은 만들어진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참고서적: 왜 예술가는 가난해야 할까, 한스 어빙, 21세기 북스
예술가들의 이상 심리, 정유석, 랜덤하우스코리아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