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얼굴] 체중 감량, 패션, 스타일링 통해 이미지 만드는 예술가들

피카소 '거울보는 여자'
"죄송하지만 웃는 모습은 안 나갔으면 좋겠는데..."

한 시인은 사진 촬영을 앞두고 으레 주어지는 '살짝 웃어 보시라'는 주문에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이유인즉슨 워낙에 염세적이고 불퉁한 시어로 유명한 터라 활짝 웃어버리면 기존에 형성된 이미지가 무너지기 때문이란다. 이 정도면 그래도 상당히 솔직한 편에 속한다.

기라성 같은 연주가들을 배출해 낸 유명한 클래식 음반 프로듀서는 아티스트를 발굴하는 기준에 대해 "실력도 중요하지만 외모도 많이 본다"고 대답했다. 불황에 늪에 빠진 클래식계를 부활시킬 수 있는 주요한 수단이 외모라는 사실에 업계 관계자들은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꽃미남들로 이루어진 실내악단 '앙상블 디토'의 인기가 그 단적인 예다. 연주회나 음반 출시가 아닌 패션 잡지 화보를 통해 데뷔하고 클래식계에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뮤직 비디오까지 찍은 이들은 침체된 업계에 활기를 불어넣을 거의 유일한 희망으로 꼽히고 있다. 이 밖에도 시인, 화가, 작곡가, 무용가, 디자이너 중 외모 관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이들은 누구도 없다.

그가 42kg를 감량한 사연

"빠진 게 아니고 뺀 거예요"

파리 컬렉션을 앞두고 만난 디자이너 정욱준은 홀쭉해진 볼의 원인을 설명했다. 그가 처음 파리에 진출했을 때 현지 언론은 섬세한 테일러링뿐 아니라 그의 놀라운 동안에도 주목했다. 40대 중반인 그를 두고 'amazing Korean kid'라고 표현할 정도.

이제 더 이상 파리에서 그를 '키드'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지만 디자이너가 연예인 정도의 위상을 가진 패션 강국에서 디자이너들의 외모 관리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현직에 있으면서도 전설적인 디자이너로 불리는 칼 라거펠트가 42kg을 감량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두문불출하는 예술가로서가 아닌 셀러브리티에 가까운 인지도를 가지고 활동하는 그로서는 현명한 결정이다.

세속의 일에는 관심 없을 것 같은 문인들도 예외는 아니다. <오빠가 돌아왔다>와 <퀴즈쇼>의 소설가 김영하는 그의 수필집에서 새 책 출간을 앞두고는 어느 정도의 다이어트를 감행한다고 밝혔다. 독자들이 보이는 것에 현혹돼 잘못된(?) 판단을 내릴까 봐 먼저 손을 쓰는 것이다.

타고난 이목구비를 바꿀 생각이 없다면 스타일링은 예술가적 향취를 덧입기 위한 훌륭한 차선책이 된다. 머리 모양, 패션, 표정, 향수, 행동거지 등은 후천적 이미지 메이킹에 효과적인 도구들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소설가 이외수의 긴 머리는 그의 작품 활동 기간에는 볼 수 없다. 그는 자택에 칩거하며 글을 쓰는 동안에는 머리를 짧게 자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시기획자이자 작가인 유승덕은 부리부리한 눈매로도 충분히 강렬한 인상이지만 율 브린너처럼 깨끗하게 밀어버린 머리로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가 패션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엠비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고 있는 패션 디자이너 한상혁은 날씬한 몸을 유지하는 것과 동시에 자신의 콘셉트를 대표하는 아이템인 보우 타이를 늘 빼놓지 않는다.

"로맨틱한 옷을 만드는 사람이 늘 검정색 옷만 입는다면 작품의 설득력이 떨어지겠죠. 디자이너와 그가 만든 옷이 닮았을 때 사람들에게 진심이 전달되지 않을까요?"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