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의 자전적 스토리텔링 바람] 위안받고 싶은 불황기 대중심리와 시청률에 민감한 방송환경 등 원인

1-SBS <강심장>에 출연한 오영실 2-SBS <강심장>에 출연한 브라이언(왼)과 환희
"입사 3년 만에 임신했을 때 아나운서실에서 천덕꾸러기 신세를 느끼기 시작했어요. 재떨이를 씻기 시작했어요. 배부른 동안 내내 책상 닦는 아나운서가 됐어요."

"죽고 싶은 마음까지 있었어요. 8집 마지막 앨범 때 저희는 둘 다 서로 안보고 활동을 했어요."

SBS 예능 프로그램인 토크쇼 <강심장>에 출연한 오영실 전 KBS 아나운서와 가수 브라이언(전 플라이 투 더 스카이 멤버)의 고백이다. 오영실 씨는 지난달 6일 방송분에서 제 1대 강심장으로 뽑혔다. 연예인들의 솔직한 자기 얘기에 힘입어 이 프로그램은 동시간대 시청률 1위, 지상파 3사 전국시청률 4위(TNS미디어 10일 집계 결과)에 이를 정도의 호응을 얻고 있다.

연예인들이 자신의 '실제' 이야기를 과감하고 솔직하게 털어놓는 프로그램들이 호소력을 발휘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자신의 어려움을 연예인에 투사하고 동질감을 느끼는 불황기 대중심리와, 스타산업 시스템이 거대화할수록 소외감을 느끼는 연예인 자신의 정체성 혼란을 원인으로 지적한다. 시청률에 지나치게 집중하는 경쟁적 방송환경도 이를 부추기고 있다.

1-서인국 <슈퍼스타 K> 우승 장면 2-G 드래곤 <소년이여>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3-미국 <제리 스프링어 쇼>
스타의 고생담에 자신 투사하는 불황 심리

선망의 대상이었던 연예인의 '진솔한'사적인 스토리에서 사람들은 심리적 위안을 얻는 것일까. 문화연예인들의 자발적인 탈권위로 대중과 '거리 좁히기'가 이뤄지는 것인가.

매주 화요일 오후 11시부터 방영하는 SBS <강심장>은 연예인들이 자신의 사적인 과거를 공개하는 수위가 매우 높다. 연기자 이의정은 지난달 13일 방영분에서 뇌종양 투병 중에 "18kg을 빼야 합병증이나 심장에 무리가 안 오기 때문에 죽기살기로 다이어트를 시작했다"며 "너무 배가 고파서 키우는 강아지 사료와 간식을 먹은 적이 있다"고 털어 놓았다.

일부 방송프로그램에서 연예인이 허구성을 아예 드러내고 이야기했던 것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KBS <해피 투게더> 등 텔레비전 예능프로그램의 주종인 '토크 쇼'에서는 일부 연예인이 꾸며진 듯한 얘기를 하거나, 이야기를 풀어놓은 뒤 가공임을 인정하는 경우가 있다. 방송가에서는 토크쇼에 출연한 연예인이 아예 가상의 이야기를 만들어 달라고 작가에게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KBS <서세원 쇼>(2001~2002)의 '토크 배틀'에서는 허구성은 거의 일상화돼 있었다. SBS <스타부부쇼 자기야>도 연예인들이 부부 사이의 이야기를 하기는 하지만 솔직함에 있어서 <강심장>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런 현상은 연예인에게 아름답고 강한 모습을 기대했던 호황기와는 확연히 다르다. 불황기였던 60~70년대 서구의 개인주의 경향이나 히피 문화 역시 개인과 사회의 괴리에서 거리 좁히기로 돌파구를 찾으려 한 측면이 있다.

데뷔 전 과정이 생중계되면서 연예인 개인의 자전적 이야기가 콘텐츠에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도 있다. 가수 서인국이 우승한 가수 선발대회 '슈퍼스타 K'는 선발 전 과정이 방송으로 생중계됐다. 이후의 인터뷰 등을 통해 그의 어려운 가정형편과 연예인 지망생의 고생담 등이 알려지기도 했다. 그의 노래를 듣는 사람 대부분은 서인국 개인의 도전과 좌절, 성공을 콘텐츠(노래)와 오버랩한다.

이택광 대중문화 평론가(경희대 영미문학 교수)는 "불황기에 연예인의 삶이 대중의 괴로움과 괴리돼 있으면 일종의 시기심(르쌍띠망; 막연한 원망)이 생긴다"며 "대중의 욕망을 먹고 자라는 연예인에게 호황의 시절에는 즐거움과 쾌락을 일치시켰던 것과 달리, 불황에는 자신의 고통과 결핍을 투영하려는 심리가 작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연예인의 정체성 분열(?)

이런 현상은 날로 비대화하는 스타산업 시스템에서 완벽함을 요구받아 온 연예인의 정체성 분열로도 분석해 볼 수 있다. 스타산업 시스템이 강화할수록 연예인들은 하나의 상품으로 여겨지며 역설적 소외를 경험하는 것이다.

인기 그룹 '빅뱅'의 멤버인 G 드래곤은 지난 8월 발매한 'Heart breaker'앨범에 수록된 '소년이여'란 노래에서 "13살 나이에 와서 쉴 틈 없이 달려왔어. (중략) 연예인들은 다 편하게만 살아. 딱 하루만 그 입장이 돼 봐라. 보이는 게 다가 아니란 걸 알아"란 노랫말을 직접 만들어 넣었다.

주류 대중가수의 노랫말에 이런 자전적이고 솔직한 내용이 담긴 것은 이례적이다. 문화연예 부문의 산업논리가 이미 전면화한 서구에서는 연예인의 정체성 혼란이 나타난 지 오래다. 미국의 스타산업 시스템에서 이미 이런 사례는 드물지 않았다. 비근한 예로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 린제이 로한의 , 리하나의 등에서는 파파라치나 루머 등 때문에 괴로운 가수 자신의 심경이 가사에 직설적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권경우 대중문화평론가는 "만들어지는 스타 산업구조에서 연예인들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갖는 정체성 분열은 극심해졌다"며 "연예인이 대중에게 보여지는 자신의 이미지와 실존 사이에서 겪는 인간적 고통을 호소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미디어 빅뱅, 신자유주의 따라 자전적 스토리 대세화. 선정성 우려도

시청률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는 매체환경에 따라 자전적 스토리는 대중문화 콘텐츠의 대세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다.

미디어법 개정에 따라 지상파 채널의 독점적 권한은 위협받고 있다. 텔레비전 시청자의 80%가 케이블 수신기로 방송을 시청하는 다매체 다채널 시대다. 대중문화 콘텐츠 유통의 가장 강력한 플랫폼인 방송의 연예 프로그램은 좀더 강렬하고 충격적인 내용으로 차별화를 시도하고픈 유혹을 느낀다.

SBS <강심장>에서 연예인들은 서로 발언권을 얻기 위해 더 자극적인 자기 얘기를 쏟아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서라도 주목받고, 시청률을 끌어올리려는 연예인과 방송의 욕구는 역설적으로 방송의 위기와 생존의 다급함을 드러낸다.

그러나 자전적 이야기가 모두 진실일까. 권위를 해체함으로써 친근한 이미지로 대중과 가까워지려는 스타 마케팅 전략에 의한 경우도 많다. 일종의 '기획'에 의해 자전적 이야기의 노출 범위와 수위가 조절되기도 한다. 이는 연예인의 상품화를 오히려 가속화해 콘텐츠의 선정주의를 강화하는 쪽으로 흐른다.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미국 방송 프로그램 <제리 스프링어 쇼>에서는 일반인 출연자들이 불륜을 비롯한 갖가지 사적 스토리를 공개한다. 미국 지상파 채널인 FOX TV는 주 시청대에 한 여성이 지폐를 꺼내 들고 유혹하는 남자 친구의 양말을 벗기고 발가락을 핥는 장면을 몰래 카메라로 찍어 내보내기도 했다.

조직의 탈권위화를 유도하는 신자유주의의 속성이 사적 이야기의 시대를 열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시장의 절대적 권위만 제외하고는 모든 영역의 탈권위를 강화하는 신자유주의 마인드가 연예 콘텐츠에 반영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이택광 평론가는 "세계적으로 문화연예 산업에서도 탈권위가 대세가 된 지 오래"라며 "문화연예 산업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보수성 때문에 이런 경향이 늦게 왔지만, 바뀐 사회구조의 영향으로 대중문화에서의 자전적 스토리텔링은 더욱 과감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청환기자 ch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