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되고 싶으세요?] 신춘문예의 계절, 분야마다 스타일 갖춰야 등단에 유리

매년 겨울이면 '신춘문예 증후군'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있다. 매번 낙방의 고배를 마시면서도 신춘문예에 투고하는 문청들이 겪는 신춘문예 증후군은 '작품을 써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면서 '막연한' 기대에 부풀어 있는 증상이다.

문학의 종말을 고하는 지금도 여전히 수 백대 1의 경쟁률을 보이고 있는 신춘문예의 계절이다. 작가가 되는 길은 무엇이며, 신춘문예에는 어떤 작품이 당선되고, 어떤 작품이 탈락하는가.

신춘문예 스타일이 있다?

'재미있는 것은 당선의 영예가 순전히 실력만으로 쟁취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공모제도로서 공정하게 경쟁자들의 순위를 매겨야 하는 신춘문예 역시 완벽하게 객관적 공정성을 마련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 당선은 실력에 의거하기도 하지만 심사자의 취향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은 알고 있다.'

심재휘 시인의 '신춘문예, 그 새로움의 추구를 위하여'의 일부다. 1920년대부터 시작된 신춘문예는 우리나라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등단제도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출판사 신인상을 통해 신인을 발굴하기도 하지만, 통상 해외 작가들은 단행본을 내면서 존재를 알린다.

2004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 심사 오생근, 김화영, 황석영(왼쪽부터)
신문사가 문학가를 배출하는 신춘문예는 주최기관의 성격상 출판사 신인상 공모보다 중립적인 성향의 작품을 선호한다. 심사위원이 매년 바뀌는 특징 때문에 위촉된 심사위원들이 최대한 '객관성을 담보해야 한다'는 의지를 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발표 시기인 1월 1일을 감안해 엽기적이거나 우울한 내용, 선정적 내용은 선호하지 않는다는 풍문도 들린다.

때문에 신춘문예 수상작들은 주최 신문사에 따라 성향이 판가름나기보다는 시대별 특징을 갖고 있다. 신춘문예는 신인의 패기와 가능성을 가늠하는 자리이지만, 2000년대 신춘문예 당선작은 어느 시대보다도 동시대 문단의 흐름을 반영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일례로 '미래파'논란이 한창이던 2000년대 초중반, 전위적인 시가 투고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김영하, 박민규 등 작품성과 대중성을 갖춘 스타 작가가 배출되면 이와 비슷한 스타일의 작품이 쏟아져 나오기도 한다.

2000년대 신춘문예 스타일
1. 소설

오창은 평론가는 평론 '등용문을 통과하기 위한 세 가지 열쇠'에서 2000년대 신춘문예 소설당선작의 특징을 3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단문의 법칙이다. 일례로 2006년 신춘문예 당선작의 80-90%가 첫 문장을 짧은 단문으로 배치했다.

"피팅룸 앞에 선다."― 김애현, '카리스마스탭', <한국일보>

"나는 줄의 끄트머리에 섰다."― 김이설, '열세 살', <서울신문>

"이런 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박찬순, '가리봉 양꼬치', <조선일보>

"탈의실에서 나온 여성 고객은 알몸이다."― 유민, '베드', <경향신문>

오창은 평론가는 "최근 (당선)작품이 7-16자 정도로 된 단문으로 첫 문장을 구성하고 있다면, 1970년대 주요 등단작은 22-29자로 훨씬 긴 문장이다. 보편화할 수는 없지만 첫 문장의 글자 수는 2-3배의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두 번째는 천칭의 법칙.

이 법칙 또한 2000년대 중반 이후 스테레오타입으로 굳어졌는데, 대부분의 당선 소설이 서두를 인상적인 묘사로 시작한다는 점이다. 서두에 중요한 장면 묘사, 사건의 실마리, 현재의 화자가 서 있고 결론 부분에서 이런 장면과 사건의 실마리, 화자가 회귀하는 형식이다. 오창은 평론가는 "전통적인 수미상관식의 안정성을 추구하는 이런 구성은 실패 가능성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선호되고 있는 듯하다"고 분석했다.

세 번째 법칙은 전문화의 법칙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신춘문예 당선소설 중 상당수가 '불행한 가족사'를 소재로 채택한 것이 많았다. IMF체제 이후 위기를 맞고 있는 고통스러운 실상을 반영한 결과인 셈. 200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신춘문예 당선작에는 '전문직업군'이 등장했다. 일례로 2006년 경향신문 당선작 '베드'에는 마사지샵의 프로페셔널 트레이너가 등장한다. 2006년 세계일보 당선작 '여자의 계단'에는 캐릭터 디자이너가 나온다.

전문 직업군에 대한 묘사는 꼼꼼한 취재를 통해서만 핍진성을 획득할 수 있다. 따라서 이들 전문 직업군을 다루고 있는 소설들은 '쉽게 쓴 소설이 아님'을 보여주는 셈이다. 전문 직업군을 과감히 끌어들인 소설은 신기한 이야기라는 측면에서 주목을 받는다. 또, 소설이 다룰 수 있는 대상 영역을 확장했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기도 한다.

윤성희 소설가는 "(심사에서) 일단 문장력과 구성력, 인물을 보는 각도를 기본으로 본다. 지금 현재 이야기와 소설이 함께 맞물리고 있는지 시류성도 살핀다. 심사를 하다보면 유명 작가들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이 있는데, 이 작품을 보며 '요즘 응모자들은 습작을 하면서 어떤 작품에 영향을 받는구나'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2000년대 신춘문예 스타일
2. 시

소설과 마찬가지로 시 역시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까지 가족의 붕괴, 소외된 자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2000년대 중후반 당선작의 특징은 '혼종성'이다. 90년대 신춘문예 당선 시들이 완결적이고 보편성 있는 이야기를 다루었다면, 2000년대 당선 시들은 감각적 시어를 많이 사용한다는 특징을 지닌다. 이른바 '미래파'로 불린 젊은 시인들의 전위적인 시어가 유행하던 2000년대 중반, 신춘문예에는 한동안 1인칭과 3인칭 화자가 혼재된 작품이 주를 이뤘다. 이른바 '칵테일 양상'을 보인 것.

이원 시인은 "90년대 후반까지 환유적 구조의 묘사시가 많이 등장했지만, 2000년대에는 포스트모던한 전위시들이 많이 등장했다. 황병승, 김행숙 등 실험적인 시를 많이 쓰는 시인들에게 영향을 받은 듯하다. 2000년대 후반 당선작에는 2000년대 초반보다는 정제된 언어를 많이 사용한다"고 말했다.

즉, 90년대의 묘사시에 반(反)한 전위적인 시가 2000년대 초중반 문단의 주목을 받았고 2000년대 후반에는 이보다 절제된 언어로 쓴 시가 신춘문예 당선작으로 주로 '낙점'됐다는 말이다. 불친절한 방식, 길들여지지 않은 언어, 감각적 시선 등은 2000년대 시단 변화의 수혜를 입은 것임에 분명하지만, 2000년대 후반 당선작은 보다 덜 전위적이다.

2000년대 당선된 시들의 이런 특징은 신춘문예보다 문예잡지를 통한 등단작에서 보다 확연히 드러난다. 김경주 시인은 "일반적으로 문예잡지 신인상이 개성과 감각을 많이 본다면 신춘문예는 보편적인 면에서 완성도와 균형성을 본다. 문장이 훈련되어 있다면 신춘문예를 권하고, 톡톡 튀는 개성이 있다면 잡지를 통한 등단을 권한다"고 설명했다.

2000년대 신춘문예 스타일
3. 평론

2000년대 후반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의 특징은 3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2000년대 전후를 기점으로 시단에서 세대교체가 일어나며 문단에서는 시 담론이 활발해졌다. 때문에 최근 2,3년 사이 신춘문예 투고작과 당선작 모두 시 평론이 대세를 보인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김명인, 황지우 등 원로 시인들의 텍스트를 다룬 평론이 당선작으로 선정되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김행숙, 진은영 등 60년대 말에서 70년대생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비평의 주제로 삼는 평론이 당선작이 됐다.

과거의 경우 인상비평(어떤 작품을 접했을 때 일어나는 비평가 개인의 정서적 반응, 즉 인상을 전면에 내세우는 비평 방법)이 주를 이루었으나, 최근에는 작품의 감각적인 면을 포착해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비평이 대세를 이룬다.

각종 인문학의 전문용어가 등장하는 것이 최근 당선된 평론들의 특징이다. '이론공부로 무장된' 세대가 바로 2000년대 등단한 신예비평가들이다. 때문에 최근 등단한 신예비평가의 경우 대부분 국문과나 문예창작과 박사과정이거나 박사 학위를 가진 고학력자가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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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주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