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되고 싶으세요?] 역량 갖춘 문학도들 고배 들었더라도 결국 문단에 얼굴 알려

고(姑) 기형도 시인, 한유주 소설가, 김영하 소설가(왼쪽부터)
매년 1월 1일 의례적으로 신춘문예 수상작과 수상자 인터뷰를 읽어왔다면, 이제 심사평에 실린 낙선자의 이름과 작품을 눈여겨 보자. 몇 년 후 서점에서 같은 이름의 작품집을 발견할 테니까.

사실, 신춘문예와 출판사 신인상 등 각종 문인 등용문의 최종심에 올랐다는 것 자체가 기본 역량을 갖춘 문학도란 뜻이다. 이들은 해당 등용문에서 고배를 마셨더라도 결국 문단에 얼굴을 알리기 마련이다.

1980년대 후반에 등장해 전설이 된 시인 기형도는 1982년부터 1984년까지 신문사 신춘문예에서 내리 낙선하다 1985년에야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안개'로 등단했다. 1984년 기형도가 중앙일보에서 낙선했을 때, 당선된 시인은 이승하다. 이승하 시인은 같은 해 한국일보 신춘문예에서 오태환에게 당선 자리를 내주었다.

1984년 신춘문예로 등단한 오태환의 경우 조선일보와 한국일보 2개 신문사에서 당선되었는데, 같은 해 서울신문에는 낙선했다. 낙선 이유는 "요설적인 데가 흠이 아닐 수 없다"는 것(심사위원 구상, 황금찬). 그러나 당선된 다른 신문에서는 "시 정신 자체가 응분의 수련을 거친 중후성과 높은 울림을 보여주고 있다"(조선일보, 심사위원 박두진, 조병화)거나 "매우 언어의 결구가 다부지고 느낌의 결이 고울 뿐 아니라 꽤 넉넉하게 버틸 줄도 아는 언어 질서의 묘를 터득한 듯이 보였다"(한국일보, 심사위원 권일송, 이근배)는 평을 받는다.

최근에도 이런 현상은 비일비재하다. 다만 출판사 문학상이 신인 작가의 등용문이 되면서 스케일이 좀 더 커졌다.

김영하 소설가의 이력은 특이하다. '199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단편 '거울에 대한 명상' 낙선'이 꼭 따라 붙기 때문. 당시 당선작은 윤인주의 '알람시계들이 있는 사막'. 김영하 작가는 같은 해 계간지 <리뷰>에 같은 작품으로 등단했다.

이 작품이 중앙일보신춘문예에서 낙선한 이유는 "후반부의 무게에 비해서 전반부의 성애가 너무 가볍고 진하다. 새해 첫날에 도저히 이런 걸 내보낼 수가 없다"(심사위원 백낙청, 최일남)라는 것. 이 작품은 결혼을 앞둔 약혼자와 약혼자의 여자 친구가 한강변을 걷다 섹스를 하기 위해 버려진 폐차의 트렁크에 들어갔다 갇혀 죽는다는 내용이다.

천운영 소설가는 199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최종심에서 최인의 <비어있는 방>에 밀려 낙선하고, 2년 후 2000년 서울신문으로 등단했다.

신인문학상을 통한 등단으로 범위를 넓히면 이런 사례는 무궁무진하다.

2003년 한국일보신춘문예 시 부문 최종심에서 낙선한 차주일 시인은 같은 해 현대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이때 당선자는 김일영 시인이다.

200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김경주 시인은 1990년대 후반부터 희곡과 시 두 분야에 투고해 왔다. 김경주 시인은 "정확한 연도는 기억나지 않지만, 한국일보 희곡부문 본심에 올라 떨어졌다. 그 후 희곡작가로 입봉하고 난 후 한국일보에 당선된 희곡 작가를 만났다. 이분은 시인이 되고 싶었지만, 희곡을 통해 먼저 등단했고 그 후 시인으로 다시 등단했더라"고 말했다.

올해 한국일보 문학상을 수상한 한유주 작가 역시 2003년 대산대학문학상에 응모했지만 낙선하고, 같은 해 같은 작품(단편 '달로')으로 문학과지성사 신인공모에서 수상하며 등단했다. 이때 대산대학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는 장편 '무중력중후군'으로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윤고은(수상 당시 고은주)이다.

1997년 문학동네 신인상에 김종광 소설가가 당선돼 등단했는데, 이때 최종심에서 함께 논의됐던 작가가 소설가 해이수(당시 김태수로 투고)다. 해이수 작가는 2000년 현대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2004년 현대문학 신인상 최종심에서 떨어진 강진 작가는 3년 후 같은 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2004년 현대문학신인상 소설부문 수상작은 김설아의 '무지갯빛 비누거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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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주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