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 영화 시대 개봉박두] 할리우드 3D 영화 본격 상륙, 한국 영화지형 대대적 변화 예고

CGV 3D 상영관 관객들
12월17일 개봉하는 <아바타>는 본격적인 3D 영화 시대의 신호탄이다. 3D 영화가 처음은 아니다. 올해만 해도 <업>, <블러디 발렌타인>, <크리스마스 캐롤> 등이 스크린 밖으로 튀어나오는 영상으로 관객의 눈을 튀어나오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전 3D 영화가 애니메이션이거나 테마파크 놀이기구의 업그레이드 버전이었던 데 비해 <아바타>는 실사에, 입체 기술의 가능성과 스토리텔링이 긴밀히 결합된 영화로 기대되고 있다. 단순한 신기효과가 아닌 입체적인 공간감과 이야기를 구현하려는 할리우드의 꿈의 프로젝트인 셈이다.

3D 영화가 할리우드의 신 성장동력으로 육성되고 있는 만큼 <아바타>의 성패 여부는 할리우드에서 줄줄이 기획 제작 중인 3D 영화들의 향방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아바타>의 3D 버전이 개봉되는 미국 내 3500개 상영관은 할리우드 영화산업의 테스트베드 노릇을 할 것이다. 이는 한국 영화계 역시 3D 영화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뜻이다. 할리우드 3D 영화의 쓰나미가 한국만 피해가지는 않을 테니까.

3D 영화 맞이에 분주한 극장

입체안경
3D 영화 시대를 맞느라 가장 분주한 곳은 멀티플렉스 극장이다. CGV는 올해 말까지 약 80개의 3D 상영관을 갖출 계획이다. 현재 3D 상영이 가능한 상영관은 45개로 전체 상영관의 8%이고, 이 비율을 향후 30% 정도로 높일 예정이다.

롯데시네마는 <아바타> 개봉을 앞두고 현재 17개인 3D 상영관을 약 30개 정도로 늘릴 예정이다. 메가박스도 내년 이후 증가할 3D 영화 라인업에 대비해 3D 영사 시스템을 갖추고자 관련 업체와 조율 중이다.

이는 극장이 3D 영화 시대의 가장 큰 수혜자가 될 것이라는 예측 때문이다. 3D 콘텐츠는 속성상 불법복제가 어렵고 상영관 관람이 적절하기 때문에 관객 저변을 확대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하지만 당장 수익을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시스템을 갖추는 데 상당한 비용을 투자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 극장 관계자는 "어떤 업체를 택하느냐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상영관 하나를 꾸리는 데 약 1억 원 정도가 든다"고 말했다. 지금의 발빠른 움직임은 장기전의 워밍업인 셈이다. CGV의 이상규 홍보팀장은 "지금 중요한 문제는 시장 선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모든 극장에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멀티플렉스 체인 이외의 극장은 경쟁에 뛰어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극장협회의 한 관계자는 "아직 디지털 상영 시스템도 다 갖추지 못한 로컬 극장들에게 3D 영화는 먼 이야기"라고 말했다. 결국 3D 영화는 투자 여력이 있는 멀티플렉스 체인간 경쟁을 부추길 전망이다.

영화 '파이널 데스티네이션4'
새로운 미디어 환경, 융합 콘텐츠로서의 3D 영화에 대한 기대

상영관만이 3D 영화의 수익 창구는 아니다. <아바타>는 내년 출시되는 파나소닉의 3D TV 세트의 첫 콘텐츠 자리를 예약했고, 비디오 게임으로도 개발될 예정이다. 23억 달러에 이르는 제작비에는 다양한 디지털 미디어에 고루 걸맞은 융합형 콘텐츠로써의 몫이 포함되어 있다.

내년 파나소닉과 소니가 3D TV를 출시하고, DVD와 블루레이로 3D 영화를 시청하는 것이 가능해지며 EU 국가들이 3D 영상을 볼 수 있는 모바일 단말기 개발에 힘을 모으고 있는 미디어 환경이 3D 영화 붐을 뒷받침하는 배경이다.

국내에서도 3D 영화 제작은 콘텐츠와 기기를 포괄한 영상산업의 구도 속에서 논의되고 있다. 지난 16일 열린 융합콘텐츠산업포럼은 멀티미디어 환경에서의 3D 영상콘텐츠 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한 자리였다.

최용석 빅아이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입체 영상이 가능한 상영관이 200곳이 넘고, 삼성이나 LG의 디스플레이가 세계적 수준인 데 비해 콘텐츠가 현저히 부족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3D 영상콘텐츠 산업 전체를 활성화할 기폭제로서 3D 영화가 지목되고 있는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내년 3D 콘텐츠 예산을 올해보다 40% 이상 늘어난 200억 원 정도로 책정할 계획을 밝혔다.

영화 '블러디 발렌타인'
한국 3D 영화 제작은 가능한가

그렇다면 국내 기술로 3D 영화를 제작하는 것은 가능할까. 지난 20일 열린 '2009 디지털 3D시네마 기술 컨퍼런스(이하 '3D 시네마 컨퍼런스')'는 그 가능성을 가늠해보는 자리였다. <여고괴담 4>, <그녀는 예뻤다> 등을 연출한 최익환 감독이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국내 기술로만 만든 단편영화 <못>을 선보였다. 결론은 기술적으로는 가능하나 안정적으로 산업화하기에는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가 많다는 것.

우선 예산 문제가 있다. 3D 촬영 장비를 갖춰야 하고 현장 제작비도 높아진다. 최익환 감독은 "3D로 촬영하니 2D 영화 때보다 노동강도와 소요 시간이 2~3배 늘어났다"며 "어느 정도의 예산이 적정한지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3D 영화의 극장 관람료는 1만2천 원 정도로 2D 영화의 1.5배 수준이라는 점만 따지면 예산 역시 1.5배여야 하지만 현장에서 체감한 제작비는 그 이상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는 국내 영화계가 3D 촬영 시스템에 익숙해지면 저절로 해결될 문제라는 의견도 있다. 3D 영화 <아름다운 우리>(가제)를 준비하고 있는 김익상 프로듀서는 "할리우드의 3D 영화 제작비는 같은 규모 2D 영화에 20~30%를 더한 수준이다. 인력이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한 상태에서 적정 수준의 제작비를 논의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더 중요한 것은 인력 문제다. 3D 영화는 제작 단계들이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스태프들의 높은 숙련도가 요구된다. 특히 3D 영화만의 기술적 특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영화 '크리스마스 캐롤'
그러다보니 새로운 인력도 필요하다. 시나리오를 어떤, 어느 정도의 입체로 표현해낼지를 관장하는 '스테레오그래퍼stereographer'다. '3D 시네마 컨퍼런스'에서도 여러 발제자들이 스테레오그래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문화기술대학원의 최양현 연구원은 할리우드에서는 스테레오그래퍼들이 3D 영화의 트렌드를 이끌고 있음을 지적하며 "국내에서도 이 전문 직종을 양성할 수 있는 교육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스테레오그래퍼의 역량은 다음과 같다. 입체영상의 공학적 원리에 통달해 있을 것, 영화 고유의 미학적 특성을 알고 시나리오를 영상적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감독 촬영감독과 원활히 소통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갖출 것. 즉 "엔지니어이자 아티스트, 커뮤니케이터"로서의 역할을 아울러야 한다.

입체영상은 영화의 새로운 언어가 될 수 있을까

한편 '영화'와 입체영상 간 적절한 관계 설정은 감독들에게 주어진 숙제다. 최익환 감독의 말마따나 "영화를 위한 입체인지, 입체를 위한 영화인지"의 딜레마가 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할리우드에서 제작되는 영화 중에도 후자가 많다. 3D 영화 관객들이 원하는 볼거리가 '튀어나오는' 효과라는 판단 때문이다.

제작 중인 3D 영화 중 대부분이 액션과 호러, SF 등 특정 장르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검증된 '팝콘 무비' 시리즈의 속편들이 줄줄이 3D 행을 선택했다.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4>가 개봉했고 <언더월드 4>와 <쏘우 7>, <할로윈 3D>가 제작되고 있다.

영화 '업'
반면 입체 영상을 새로운 영화 언어로써, 스토리텔링에 끌어들이려는 시도도 있다. <업>이 대표적인 예인데, 이 애니메이션 영화의 입체감은 이야기를 방해하지 않을 정도로 약하면서도 그 흐름을 적절히 뒷받침하는 역할을 했다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이는 입체영상이 2D 영화에 '덧붙여진다'는 의미가 아니다. 입체영상 기술은 영화 내부에 화학 작용을 일으키며 들어온다. 예를 들면 입체영상으로 구현하기에 적합한 공간이 따로 있다. 아예 배경이 없거나, 눈앞에서 저 멀리까지 눈 둘 지점이 여러 층으로 나뉘어 있는 공간 등이다. 입체감이 살면서도 보기에 불편하지 않은 공간이다.

편집 속도도 달라진다. 빠른 커트의 입체 영상은 관객을 힘들게 하기 때문에 3D 영화에는 긴 호흡의 커트가 더 적절한 것이다. 구석구석 안 보이는 세부가 없으므로 감독이 한 화면에 의도를 더 풍성하게 담을 수 있는 반면 미술팀의 일이 더 많아진다는 것도 변화다.

자막은 득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다. 특정한 효과를 염두에 두고 하나의 장치로써 자막을 돌출시킬 수 있지만, 외화의 대사를 번역한 자막은 정작 영화를 보는 데 무척 거슬릴 것이다. 그래서 할리우드 3D 영화는 해외에서 가능한 한 더빙 버전으로 개봉하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3D 영화는 배우 캐스팅 기준까지 바꾸어 놓을지 모른다. 입체 영상에 잘 어울리는 얼굴과 몸매가 따로 있다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변수에 대해 참고할 수 있는 경험적 데이터 베이스를 만드는 것은 국내 3D 영화가 산업적으로, 또 새로운 영화 언어로 자리잡기 위해 해야 할 기초공사다.

영화 '아바타'
3D 영화 시대 개봉 박두

국내에서도 3D 영화가 원활히 제작될 수 있을까, 나아가 할리우드가 그렇듯 한국영화도 3D 영화를 새로운 활로로 삼을 수 있을까,를 묻는 것은 시기상조다. 지금 3D 영화를 둘러싼 상황을 살펴보는 의의는 오히려 신기술이 어떤 환경 변화와 이해 관계에 의해 구체화되고, 그 과정에서 어떤 화학작용을 일으키는지를 가늠하는 데 있다.

분명한 것은 지금 3D 영화는 영화 '산업'이 필요로 하는 한 조건이라는 사실이다. 그 강력한 동인은 영화의 정의와, 영화 체험의 속성을 바꾸어놓고야 말 것이다. 국내 영화 산업이 <아바타>에 기대하는 것도 관객의 3D 영화 학습 효과다. 스크린을 넘어 오는 3D 영화의 포격에 당신의 시청각도 '개봉 박두'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3D 영화, 이것이 궁금하다
1 3D 영화를 촬영하는 장비가 따로 있나.

카메라 두 대를 합쳐놓은 꼴의 '리그'가 쓰인다. 입체영상의 원리는 양쪽 눈 각각의 각도로 영상을 촬영한 후 안경을 통해 두 층을 겹쳐 보는 것. 그래서 촬영시 카메라 두 대를 사람 눈처럼 배열한 장비가 필요하다. 국내에서도 개발되어 있고, 미국에서는 들고 찍을 수 있는(핸드 헬드) 리그까지 나온 상태다.

3D 영화 촬영 장비인 리그
2 3D로 촬영한 영화를 어떻게 2D로 상영하나.

간단하다. 양쪽 카메라의 영상 중 하나만 상영하면 된다. 아무리 3D 영화라도 3D 상영만으로는 수익을 내기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의 3D 영화가 2D로도 상영된다. 단, 두 방식 간 적절한 편집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약간 조정을 하는 경우는 있다.

3 미국에서는 2D 영화를 3D로 변환해 개봉하기도 하던데.

<타이타닉>도 곧 3D 영화로 재개봉한다는 소문이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불가능하다. 2D를 3D로 변환하는 것이, 3D로 촬영하는 것보다 기술도 복잡하고 돈도 많이 든다고 한다.

4 3D 영화, 앞자리에서 보나 뒷자리에서 보나 차이가 없나.

거리에 따라 입체감이 달라진다. 앞자리에서는 입체감이 강해지는 반면 뒷자리로 갈수록 입체감이 떨어진다. 적절한 자리를 찾는 것도 중요하다. 앞자리에 앉았다가 울렁증 증세가 나타날 수 있고 뒷자리에 앉았다가 하품만 하는 사태가 초래될 수 있다.

▶ 3D 영화 한국에 말걸다
▶ 한국 3D 영화 총대를 메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