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잉카문명전] 음양, 중앙과 지방, 잉카와 서구문화 조화 이루며 변화 발전

우리는 잉카문명이라고 하면 흔히 안데스 지역의 고대문명 전체를 생각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잉카(Inca)는 15세기(1430년)에 성립되어 16세기(1532년) 초까지 중앙 안데스를 중심으로 약 100년간 존속한 왕국이다.

그러나 서구에는 잉카문명으로 알려졌고 이 지역의 문명을 대표하고 있으며 잉카 이전의 프리 잉카시대에도 태양의 아들이라는 신화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4개 지역 연맹체인 잉카제국과 그 이전의 문명을 모두 잉카문명이라고 하여도 틀렸다고는 할 수 없다.

정치적 의미의 잉카는 15~16세기의 잉카제국을 뜻하지만, 문화적 의미로는 태양의 신화를 가진 안데스의 고대문명 전체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즉 잉카는 협의로는 15~16세기의 잉카제국을 뜻하지만, 광의로는 잉카제국 이전의 안데스 지역의 고대문명 전체를 뜻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잉카문화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수천년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갖고 있다. 5000년 전 고대 제사 유적인 카랄을 비롯하여 기원 전후의 강력한 모체 왕국, 그리고 신비의 나스카 문화가 있었다. 또한 와리 제국과 치무 왕국 등은 이후 잉카제국이 세워질 수 있었던 근간이었다.

안데스 지역의 구석기시대는 1만 2천년 전부터 시작되었으며, 기원전 6000년 전부터 초기 농경생활을 한 흔적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기원전 3000년 전부터 사람들이 집단을 이루며 살던 마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잉카제국의 종교적 중심지 마추픽추 유물을 관찰하는 최광식 관장
그리고 기원전 1800년부터 고대문명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농경의 발전, 토기의 제작, 방직술의 발명, 노동분화에 의한 도시의 중심 건축 등이 이루어졌다. 이 시기 가장 중요한 변화는 집약적인 농경이 확산되면서 마을을 이루고 잉여농산물을 갈무리할 수 있는 토기를 제작하게 된 것이다. 그 중 가장 괄목할 만한 것이 챠빈문화(기원전 1200~300)라고 할 수 있는데 조각품들이 나타나고 종교적인 건축물들이 보이며 제사장이 새로운 정치 경제 사회적 권력자로 등장한다.

기원 전후한 시기에는 여러 지역에서 문화들이 발전된 양상을 보이기 시작한다. 모체문명(기원전 100~기원후 700)이 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 피라미드, 고분 등 종교와 제의에 관한 자료들이 나타나며 권위를 나타내는 건축물들도 등장한다. 이 시기 황금유물을 간직한 시판왕은 사회적 계층화가 진전되었으며, 국가가 형성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보다 조금 늦은 나스카문화(기원전 100-기원후 600)는 특히 지면에 거대한 선과 면으로 연결된 조형성이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지상회화의 성격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지만 대규모 인력을 동원할 수 있는 권력이 존재하였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나스카 문명은 군사력과 무력을 통해 확장해 나갔으며 이는 일부 유적지에서 발굴된 나스카 도자기, 요새의 축조, 무덤에서 발견된 다량의 무기, 두상을 전리품으로 남긴 관습 등에서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이어 등장한 와리제국(600-900)은 여러 지역에서 발달된 문화가 일단 통합되었다는데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아울러 도시가 정비되고 종교가 제 기능을 발휘하고, 장례를 통하여 문화를 전수하는 시스템이 정착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0세기가 되면 다시 지역으로 분할되어 각 지역의 문화를 발전시켜 나갔다. 람바이예크문화, 치무문화, 잉카문화 등 10여개의 지역으로 세력이 분화되고 문화가 각각 발전되어갔다. 그러다 15세기(1430)에 4지역 세력의 연맹체인 잉카제국이 성립되는 것이다.

페루의 정치적 중심지 쿠스코주의 코리칸차 신전
잉카는 쿠스코에 수도를 정하고 강력한 왕권을 행사하며 차빈, 모체, 나스카, 티아우아나코 문명들로 시작된 지역의 국가들을 정복하여 정치, 경제, 문화, 언어 및 종교적인 통일을 이루었다.

잉카의 왕은 태양의 신전을 통하여 '태양의 아들'이라는 것을 내세워 왕권을 강화해 나갔다. '잉카'라는 의미는 원래 왕을 칭하는 말이고, 잉카인들은 잉카제국을 '타우안티수유(4개로 나누어진 제국)'라 불렀다. 4개의 수유를 지배하는 잉카의 왕은 국가의 최고 통치자인 동시에 군사면에서는 최고의 통수권자, 종교면에서는 최고의 제사장으로 고대 국가의 신성왕의 특징을 갖추고 있었다.

잉카제국의 대표적 유적으로 쿠스코에서 약 100킬로미터 떨어진 마추픽추가 있다. 1911년 미국인 고고학자 하이렘 빙엄에 의해 발견된 마추픽추는 잉카의 귀족, 남여 사제와 선택받은 여성(아클라스)에게만 허락된 성역으로 여겨져 왔다.

마추픽추 유적에 대해선 대체로 태양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공간으로 이해되어 왔으나 최근에는 산신에게 제사를 지냈던 공간이라는 새로운 견해가 개진되었다. 결국 마추픽추는 정치의 중심지 국읍인 쿠스코와 달리 종교와 제의를 담당하던 종교적 중심지 별읍으로 우리나라 삼한시대의 소도(蘇塗)와 같은 곳이라고 할 수 있다.

태양의 신화를 가진 태양의 아들 잉카문화는 양면성을 갖고 있는 것이 그 특징이라고 하겠다. 태양과 함께 항상 달이 짝을 이루며 숭배의 대상이 되어 태양의 신전과 달의 신전이 공존한다.

잉카제국의 수도인 쿠스코에서
햇빛을 관측하기 위한 시설과 그림자를 관측하는 시설이 공존하며, 늙은 봉우리 마추픽추와 젊은 봉우리 와이나픽추가 공존한다. 정치적 중심지 쿠스코가 있어 정치를 행하고, 종교적 중심지 마추픽추가 있어 종교적 의례를 주관한다. 태양을 숭배하여 태양에 대한 축제를 벌이지만 산신에 대한 숭배도 동서남북 지역별로 게을리하지 않는다. 잉카제국을 중심으로 중앙집권화를 노리지만 4개 지방 연맹세력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토기에 새겨진 네모 모양의 마름모 문양이 중심지를 상징한다면 동그라미 모양의 나선문은 변화와 발전을 상징한다. 토기에 조각된 사람들의 모습도 남자와 함께 반드시 여자가 등장하며, 남여가 함께 어우러진 모습들도 조각되어 있다. 또한 스페인의 식민지가 된 이후 카톨릭이 국교가 되었지만 종래 그들의 토착신앙을 그대로 믿고 있다.

음과 양의 조화, 중앙과 지방의 조화, 잉카문화와 서구문화의 조화를 이루며 안데스의 고대문명과 잉카문화는 변화 발전하여 왔으며 현재 페루문화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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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식 국립중앙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