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왜 사회에 참여하나] '지금 내리실…' 등 세 권의 책 2000년대 젊은 지식인의 고민 드러내

촛불, 디지털 젯 프린, 2009, 조습 촬영
<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 참사역입니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자의 죽음>, <리얼리스트>.

최근 잇따라 출간된 세 권의 책은 2000년대 젊은 지식인들의 고민을 드러낸다. 흥미로운 점은 다양한 문화적 스펙트럼을 지닌 지식인들이 모두 용산참사에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 참사역입니다>는 용산 참사에 관한 작가들의 헌정집이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자의 죽음>는 김수환 추기경, 노무현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 등 굵직한 인물들의 죽음에 가려진 용산 참사의 의미를 되묻고 있다. 반년간 문예지 <리얼리스트>의 특집 역시 '용산, 냉동고에 갇힌 민주주의'로 용산 참사에 대해 다루고 있다.

다양한 스펙트럼의 문화예술인들이 입을 모아 용산 참사를 말하는 이유는 뭘까? 이 새로운 시각이 우리 사회에 던진 변화는 무엇일까?

2009년 한국사회 키워드는 용산

젊은 지식인들이 다시 용산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자의 죽음>을 편집한 김수한 편집주간은 "책의 출간 시점이 12월임을 감안해서 올 한해 정치 풍경을 조망하는 방향으로 기획했다. 올 초부터 용산참사, 김수환 추기경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등 한국사회를 좌우한 사건 중 하나가 '죽음'이라는 데 편집위원 모두 동의했다. 단순한 애도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사회에서 앞으로 일어날 정치 징후를 보여주는 집약적 사건들이다"라고 말했다. 용산 참사는 올 한해 한국사회를 드러내는 대표적인 사건이지만, 미디어와 대중의 뇌리에서 망각되고 있다는 진단에서 책을 기획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리얼리스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박일한 책임편집인은 기획의도에 대해 "용산을 통해 한국사회의 현주소를 돌아보는 동시에 문학이 놓여야 할 자리에 대한 성찰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당한 삶과 언어가 파괴되는 현실 앞에 작가들이 제대로 된 복원을 위한 노력에 나서지 않는다면 직무유기에 해당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 참사역입니다>를 엮은 작가들의 시선도 이와 맞닿아 있다. 이 책의 기획을 맡았던 신형철 문학평론가는 "온라인 공간을 통해 선언 이후 활동 방향을 논의했는데 용산 참사가 오늘날 한국사회의 가장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상처라는 판단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젊은 작가 200여 명이 모인 '작가선언 6.9'는 현 정부에 대한 비판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관한 비평까지 다양한 정치 담론이 생성되다 7월부터 용산 참사를 중심으로 활동해왔다.

용산 참사역입니다

<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 참사역입니다> 헌정식 사회를 보는 박상 소설가
지난 8일 저녁 용산 참사 현장에는 30여명의 문인을 포함해 100여 명의 시민이 한 자리에 모였다. '작가선언 6.9'가 엮은 <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참사역입니다>의 헌정식에 모인 이들이다. 소설가 박상의 사회로 염무웅 평론가가 대표 인사를 전했고, 윤예영 시인, 최창근 극작가, 김용민 시사만화가, 노순택 사진작가, 김종도 화가가 유가족들에게 책을 헌정했다.

'작가선언 6.9'는 지난 해 촛불시위부터 올해 용산 참사,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등 일련의 사회변화를 겪으며 올해 5월 27일 젊은 문인 30여명이 첫 모임을 가지면서 결성됐다. 총 192명의 문인이 작성한 한 줄 선언을 모아 6월 9일 선언문 '6.9 작가선언'을 발표했고 이를 모아 <이것은 사람의 말>을 출간한 바 있다.

다양한 정치담론을 생성하던 '작가선언 6.9'는 7월부터 용산 참사를 중심으로 활동해왔다. 용산과 관련한 인터넷 신문 기고,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였고, 젊은 작가들이 올해 발표했던 칼럼, 시, 소설, 비평 중 용산 참사와 관련된 글을 모아 헌정집을 묶었다.

424쪽의 문집에는 '작가선언 6.9' 회원들이 쓴 시와 에세이가 담겨 있다. 1,2부에는 용산 참사와 관련된 시 31편과 시인들의 에세이를 실었다. 3,4부에는 인터넷 신문 등 매체를 통해 발표한 문인들의 칼럼을 엮었고, 5부에는 이윤엽 화가, 김종도 화가, 이동수 만화가, 노순택 사진가의 작품과 가수 조약골의 에세이를 담았다.

'작가선언 6.9'가 활동하는 방식은 이전의 지식인 단체와 다르다. 가장 큰 특징은 구심점 없이 200명에 가까운 문인들이 자발적으로 활동한다는 것인데, 모든 활동은 자율적인 논의를 거쳐 결정한다. 예를 들어 6월 9일 발표한 공동 선언문의 경우 대표자가 작성하면 온라인 공간에 수백 개의 댓글이 달리고 이를 보완해 다시 한 줄씩 고쳐가며 최종본을 완성했다.

70년대 문인들의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염무웅 문학평론가는 "세상이 달라진 것만큼 문인들의 사회적 활동도 달라진 것 같다. 요즘은 산발적이고 각자 자유롭게 활동한다. 시대 변화에 따라 작가들의 운동 방식이 달라진 것"이라고 말했다.

리얼리스트 100

<리얼리스트>는 문학단체 '리얼리스트 100'에서 펴내는 반년간 문학 전문지다. '리얼리스트 100'은 2007년 9월 리얼리즘 문학을 고민하는 작가들을 주축으로 탄생한 문인단체. 100여명 안팎의 문인들은 온라인(www.realist.kr)을 통한 작품 발표와 함께 '대운하 저지를 위한 작가행동',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위한 연대활동', '용산 참사 해결을 위한 작가행동' 등 대외활동을 병행해 왔다.

'민중문학'의 맥을 잇고 있는 작가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는데, 작가 면면을 살펴보면 시인 백무산, 김해화, 정우영, 김해자, 박일환, 송경동, 문동만, 황규관, 임성용, 이민호와 소설가 김성동, 이시백, 안재성, 홍명진, 이인휘, 이재웅, 평론가 박수연, 고명철 등이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박일환 시인(<리얼리스트> 책임편집인)은 "현실문제에 고투하고 현장을 뛰어다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작품에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시도는 일시적 흐름, 현상이 꾸준히 지속되어야 한다"고 창간 배경을 설명했다.

이민호 시인(<리얼리스트> 편집위원)은 "특별한 작가를 지향하지 않고, 작품 선정에 있어서 객관성을 기했다. 지난 시기 노동문학과 민중 문학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리얼리즘의 정신을 더 펼쳐보자는 시도"라고 설명했다.

<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 참사역입니다>가 젊은 문인들의 사회참여를 담아낸 책이라면, 문예지 <리얼리스트>는 사회참여와 창작을 병행했던 기존 작가들의 문학적 결실을 선보이는 장인 셈이다. 작가들이 회비를 걷어 잡지의 제작비와 원고료를 충당했다는 점도 기존 문예지와 차별화된 점이다.

창간호 특집 주제는 용산 참사. 백무산 시인의 시 '민주공화국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자행한 학살 만행을 보라!'와 홍명진 소설가의 단편 '2009, 서울 피에타', 김순천 르포작가의 작품 '용산, 격렬한 혼돈'과 송경동 시인의 시론 '용산이라는 질문', 임동근 연구원의 논단 '개인의 욕망으로 굴러가는 주택정책', 박김형준 작가의 사진, 김대중 작가의 만화 '폐허 위에'를 통해 용산 문제를 총체적으로 바라본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자의 죽음

사회비평지 <당대비평>이 정간되며 발행된 단행본 형식의 기획 시리즈 '당비의 생각' 3권의 제목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자의 죽음>. 제목처럼 책은 두 전직 대통령과 용산 참사를 대조해 한국사회를 분석한다.

기획주간인 서동진 교수(계원디자인예술대)는 서문을 통해 "어떤 죽음이 대대적으로 애도될 때, 그것은 단지 죽은 자의 사회적 지위 탓으로 돌릴 수 없는 애도하는 자의 정치적 욕망이 투영되어 있음을 가리킬 것이다"고 지적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 '정치적' 죽음이라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죽음은 '역사적 죽음'이며 용산 참사는 '정치 자체의 죽음'이라는 것. 책은 죽음의 의미의 위계화와 차별화는 추모하려는 사람들의 의지만이 아니라 죽음을 순응시키며 갈등을 잠재우는 통치의 전략 혹은 방식이라고 말한다.

'애도에 대한 질문', '기억에 대한 성찰'로 나뉜 책은 10편의 비평을 실었다. 필진들의 면면을 보면 엄기호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위원, 권명아 동아대 국문과 교수를 비롯해 김성태 문화평론가, 송경동 시인, 박동천 전북대 정치학과 교수 등 사회각계각층의 다양한 스펙트럼의 지식인들이다.

조동환, 조해준, 이경수 작가의 구술드로잉과 이상엽 다큐멘터리 사진가, 김흥구 사진작가, 조습 사진 작가의 작품도 함께 실었다. 지식인의 글과 문화예술인들의 작품이 결합된 형태의 무크지인 셈.

김수한 편집주간은 "다양한 문화예술인, 지식인이 함께 사회를 고민하는 것이 의미 있을 것 같아 이번 비평집을 묶으며 함께 작업했다. 드로잉과 사진 등 이미지들은 주제를 더 선명하게 만들어 주었다"고 말했다.

2009년 지식인, 어떻게 변하고 있나?

용산을 구심점으로 목소리를 내지만, 젊은 문화예술인들의 사회참여는 촛불시위, 잇따른 사회지도자들의 죽음, 미디어법 처리 등 한국사회 일련의 정치 지형 변화와 맥락을 함께 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이들이 '작가선언 6.9', '행동하는 라디오 언론재개발'처럼 이전 세대와는 다른 방식의 소통을 시도한다는 것이다. '작가선언 6.9'에 참여한 이영광 시인은 "수평적 의사공동체로 오랜 논의를 거쳐 활동 방향을 결정했다. 작가들이 갖고 있는 생각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었고, 그 차이를 딛고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하면서, 때로 멀어 보이고 낯설어 보였던 사람들이 동질성을 회복할 수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활동에 참여한 젊은 작가들은 사회를 보는 감각도 이전과 달라졌다고 입을 모은다.

심보선 시인은 "작가와 시민의 정체성이 어떻게 만나는지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됐다. 작가들이 현실과 정치문제에 접속하는 것이 곧 문제를 해결했다는 건 아니다. '문학과 정치'는 여전히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이지만, 우리가 변해가면서 그 문제를 직시하고 부딪치고 계속 젊은 작가들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영광 시인 역시 "그 동안 작가 개인의 문학적 추구에만 매몰된 점이 많았다는 자각과 반성이 있었다. 작가가 특별히 힘 있는 일을 할 수는 없겠지만, 본업에 충실하면서도 몸으로도 조금씩 움직이고, 작가들의 목소리가 퍼져나갈 수 있게끔 노력해야겠다고 생각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진은영 시인은 "(활동을 통해) 미약하지만, 뭔가 할 수 있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 작가로서 작품을 통해서도 세상과 만날 수 있다는 구체적으로 만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생겼고, 그런 작품에 쓰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다"고 말했다.

사회에 대한 젊은 지식인의 감성이 새로운 담론으로 발전할지, 주목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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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주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