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문화, 라이프 화두는] 먹을거리 안전성 문제에 경기불황 겹쳐 홈메이드 제품 상승세

인터콘티넨탈 주방장이 직접 만든 홈메이드햄
모두들 어렵다지만 나의 삶의 만족을 느끼고 싶은 웰빙에 대한 생각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음식과 여행 분야의 올해 최대 화두는 무엇일까. 지난해 말 '트렌드 코리아 2009'를 펴낸 서울대학교 생활과학연구소 김난도 교수는 음식과 여행에서 각각 '홈메이드'와 '유유자적'을 키워드로 꼽았다.

외식 지고, 홈메이드 뜨고

올해 연말은 외식 대신, 집에서 모임을 가지려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난 모습이다. 온라인 종합쇼핑몰 디앤샵의 파티 장식용품 이달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44%나 증가했다. 연말 파티에서 빠질 수 없는 와인용품도 전월 대비 56% 증가했다. 옥션의 경우도 파티용품 카테고리의 지난 달 일주일간(11월 17일~11월 23일) 매출이 전년대비 20%가량 늘어났다.

파티용품 매출 증가에 대해 디앤샵 측은 신종플루에 대한 우려로 인해 집에서 안전하고 위생적인 연말파티를 즐기고자 하는 '홈파티 족'이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불황의 여파로 저렴한 소비를 즐기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덧붙였다.

홈메이드 냉동볶음밥
이런 분위기를 이용해 온라인 몰에서는 연말 홈파티를 위한 다양한 기획전을 선보이며 '홈파티족' 눈길 잡기에 나서고 있다. 디앤샵이 '지금은 파티가 필요한 때'라는 타이틀로 12월 말까지 파티용품 기획전을 진행하고, 해외쇼핑 11번가는 유명 식기 브랜드의 디너웨어 세트를 판매하는 '크리스마스 디너웨어' 기획전을 12월 말까지 연다. G마켓 컨텐츠몰에서는 다양한 요리강의를 싼 가격에 제공하며, 롯데닷컴은 고구마 샐러드, 푸딩 등 홈파티에 먹기 좋은 음식들을 5% 할인가에 판매한다.

집에서 만들어 먹는 음식의 인기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특급호텔들도 서로 경쟁하듯 호텔 주방장이 직접 만든 홈메이드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의 베이커리 '그랜드 키친 델리'는 홈메이드 푸딩과 소시지 및 육류 가공품 등 호텔 주방장의 노하우가 담긴 28가지의 홈메이드 제품을 내놓았다.

조선호텔 일식당 스시조는 주말마다 홈메이드 오뎅을 선보이는 '라이브 오뎅' 행사를 갖는다. 주방장이 고객 앞에서 가다랑어 포와 다시마를 이용해 국물을 우려내고, 정종과 간장으로 맛을 낸 국물에 생선살을 으깨 만든 가마보코를 비롯해 도가니, 문어, 무, 유부 주머니 등을 넣고 푹 끓여낸다. 그랜드하얏트 호텔도 올해 주방장이 만든 이탈리안 홈메이드 소시지와 북경식 누들, 초콜릿과 쿠키 등 다양한 '주방장 표' 제품을 선보였다.

인터컨티넨탈 김현숙 대리는 "대량생산된 가공식품에 대한 불신과 웰빙 문화로 인해 홈메이드 음식에 대한 선호도가 증가하고 있으며, 프리미엄 시장에서 홈메이드가 대세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호떡, 핫케이크, 과자 등 밀가루에 설탕, 버터 등을 배합한 분말제품인 프리믹스 시장의 성장도 눈부신 한 해였다. 집에서 손쉽게 간식을 만들어먹을 수 있도록 출시된 프리믹스 제품 시장은 2007년 520억원, 2008년 820억원에 이어 2009년엔 1,100억 원 규모로 30% 이상 성장했다.

풀무원 크리스마스 고구마케이크
프리믹스 제품 외에도 꼬마김밥 세트, 김장김치 DIY세트, 냉동 볶음밥, 홈메이드 스파게티 소스 등 점점 다양한 홈메이드형 상품이 쏟아지고 있다. 풀무원에 따르면, 올해 새로 출시한 김장김치 DIY세트는 온라인에서만 하루 100세트 이상 팔리는 큰 인기를 누렸다. 뿐만 아니라, 아이스크림, 햄버거, 맥주 등 홈메이드 푸드 전문점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또, 홈베이킹 서적과 도구 시장이 더욱 확대되고, 홈베이킹 강좌의 인기도 높아지고 있다. 홈메이드 음식 관련 온라인 동호회도 다수 생겨나 맥주, 치즈 등 다양한 메뉴의 홈 레시피와 만드는 과정 등이 공유되고 있다.

서울대 김난도 교수는 홈메이드 음식에 대한 뜨거운 호응에 대해 "지난해 끊임없이 터져 나온 먹거리 안전성 문제로 식품에 대한 사회적 불신이 커졌고, 여기에 경제불황의 영향으로 실속파 소비자가 늘어났으며, 불황기의 특징인 가족에 대한 중요성이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제주도 '올레' 등 유유자적 여행 붐

하나투어 관계자는 올해 최고의 히트 여행상품으로 제주 '올레'를 들었다. 올레는 제주도 사투리로 '좋은 길' 또는 '작은 길'이라는 뜻이다. 올해 제주도 올레를 걷기 위해 찾아온 이들은 20만 명이다.

풀무원 홈메이드 스파게티 소스면
김 교수는 제주 올레의 인기에서 '걷기여행'에 대한 욕구를 발견한다. 걷기여행은 자연과 호흡하고 나를 돌아보며 사유하는 유유자적한 여행이다. 김 교수는 올해 여행계의 화두를 "빠름에서 느림으로의 변화"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기존에 여행은 될 수 있으면 많은 곳을 둘러보기 위해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는 관광위주의 패턴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올들어 부쩍 심신의 이완과 단련, 자아성찰을 추구하는 치유적이고 개인화된 여가문화로 트렌드의 중심축이 이동했다는 게 그의 견해다.

여행의 이 같은 새로운 흐름은 올해 나온 여행관련 서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가만히 거닐다', '대한민국 걷기 좋은 길 111', '지리산 둘레길 걷기여행', '걷는 것이 쉬는 것이다', '꿈속에서도 걷고 싶은 길', '주말이 기다려지는 숲 속 걷기 여행', '길 위에서 놀다', '서울 걷기여행' 등 걷기와 관련된 여행서적이 봇물을 이뤘다.

또, 단체로 떠나는 여행사의 패키지 상품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줄고, 개인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는 게 여행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천천히 사유하며 즐기는 유유자적 여행에 대한 욕구는 국내여행의 증가로 이어지기도 했다.

명사와 함께 하는 제주올레 문학투어
여행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올해 해외여행객 수가 급감한 데에는 유가상승과 경제불황이라는 변수도 있지만 '우리 것의 재발견'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것도 한 이유다. 해외여행의 경험이 쌓인 여행객들이 외국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을 버리고 우리나라로 눈을 돌리는 것이다. 한 예로, 걷기여행지로 유명한 스페인의 산티아고보다 우리나라의 길들이 더 멋지다는 인식이 여행객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다.

빠른 여행에서 느린 여행으로의 패러다임 변화는 보고, 먹고 마시고, 쇼핑하는 소모적인 여가문화를 바꿔놓고 있다. 여행을 통해 그 지역의 자연을 지키고, 그 지역 사람들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게 하는 착한여행, 즉, 공정여행(Fair Travel)의 수요가 부상하고 있다.

하나투어는 올해 다일공동체와 협약을 맺고, 캄보디아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여행경비 중 1달러를 현지 아이들의 식사비로 쓰는 여행상품 '1달러의 기적'을 출시했다. 하나투어 관계자는 윤리적인 여행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는 점을 감안해 앞으로 공정여행 상품 개발에 더욱 힘쓸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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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화 기자 cand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