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의 새 활로 찾기] 공동 프로모션, 해외직배, 공동체 상영 등 다양한 시도

독립영화가 언제라고 관객 만날 고민이 없었겠느냐만은, 올해 그 고민은 더욱 역동적으로 실천될 것 같다. <워낭소리>의 대중적 흥행과 영화 진흥 정책의 변화로 대표되는 2009년의 격변을 지나며 독립영화를 둘러싼 환경이 변한 것이 한 이유다. 독립영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졌고, 동시에 독립영화가 시장 영역에서 자생적이고 지속 가능한 생산-유통의 구조를 만들어야할 필요성도 커졌다. 지금 모색되고 있는 새로운 독립영화 배급의 방식들은 이에 대한 대응의 전략이자 그동안 독립영화계 내부에서 축적되어 온 논의와 역량이 집결된 결과로 볼 수 있다.

독립영화 배급사, 뭉치면 산다

지난해 12월15일 서울독립영화제에서는 '독립영화 배급, 2009 진화의 순간'이라는 제목으로 '2009 희망다큐 프로젝트'를 돌아보는 세미나가 열렸다. '2009 희망다큐 프로젝트'는 여러 독립영화 배급사들이 각자 개봉 예정이었던 다큐멘터리 영화들을 한 달에 한 편씩 차례로 상영하며, 이들 개봉작에 대한 프로모션을 공동으로 진행한 사업. 1월에 개봉한 <워낭소리>는 그 첫 작품이었다.

이 사업의 성과는 <워낭소리>의 흥행에 그치지 않는다. 장기적으로 볼 때는 "독립영화 배급사들이 네트워크를 구성해 공동으로 시장에 진입함으로써 보다 전문적인 독립영화 배급 구조를 만드는 출발점"(원승환 독립영화배급지원센터 소장)으로서의 의미가 크다.

참여했던 독립영화 배급사들 역시 네트워크를 만들었다는 데 의의를 둔다. 시네마달의 이상엽 배급팀장은 "독립영화 배급사들이 현안에 대해 공동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가능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사업을 계기로 독립영화 배급사간 소통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디스토리의 곽용수 대표는 개별적으로 마케팅을 진행할 때에 비해 관객과의 관계가 지속적이었다는 점을 성과로 꼽았다. 관객에게 잘 알려진 영화인들에게 응원메시지를 받아 노출하고, 영화잡지에 상영작을 소개하는 고정 지면을 확보하고, 온라인 서점과 연동해 소설가와 감독의 대담을 주선하는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한 장기간의 프로모션이 개별적 상영작뿐 아닌 독립영화 전체에 대한 인식을 높였다는 것이다. 일종의 "커뮤니티" 형성 시도였던 셈이다.

해외 직배에 나선 독립영화

독립영화가 나름의 전문화된 방식으로 진입을 시도하는 시장은 국내에만 머물지 않는다. 독립영화 배급사 키노아이DMC는 지난해 26일부터 <날아라 펭귄>, <경축! 우리 사랑>,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하늘을 걷는 소년>을 일본 전역에 순회 상영하는 '2009 眞! 한국영화제'를 진행하고 있다. 1월8일까지 나고야에서 상영한 후, 2월27일부터 도쿄, 3월말에는 오사카 등 총 10여 개 도시에서 상영한다.

이는 현지 배급사를 통한 상영회가 아닌, 일본 내 미니씨어터 체인망과 연계한 직배 형식의 개봉이라는 점에서 최초로 시도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국내 배급사가 일본에 직접 배급한 영화는 한류 스타가 출연하는 상업 영화가 대부분이었다.

독립영화 상영에 적합한 일본의 환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점도 특기할만 하다. 일본 전역에 분포되어 있는 미니씨어터는 대규모로 개봉하는 상업영화 외에 다양한 영화를 상영하는 단관들로, 일본 특유의 영화 문화 중 하나다. 이번 프로젝트를 담당한 이은경 이사는 "미니씨어터들은 각각 개성 있는 라인업으로 자기 정체성을 형성해 왔고, 일본에는 그런 문화를 수용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다. 각 미니씨어터마다 고정 관객층이 형성되어 있다"고 말했다. 독립영화를 안정적으로 배급할 수 있는 환경이라는 것이다.

키노아이DMC는 이달 일본 지사인 키노아이저팬을 설립한다. 앞으로 이곳을 본거지로 일본 내 한국 독립영화 배급을 다각도로 추진할 예정이다.

상영관을 넘어 공동체 상영으로

하지만 국내 상영관 사정은 이런 활발한 사업 추진 움직임과는 괴리가 있다. 우선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으로 운영되던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가 지난해 말 문을 닫았다. 2년 여의 계약 기간이 만료되었고, 새로운 독립영화전용관이 공모제를 통해 문을 열 계획이라고는 하지만 이런 정책적 결정에서 한국 독립영화의 상황과 전망에 대한 이해가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이 많다.

<워낭소리>의 제작자인 스튜디오느림보의 고영재 대표는 "중장기적 계획 없이 내려진 결정"이라고 말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주도해서 마련하긴 했지만, 장기적으로는 독립영화계가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만드는 방향으로 지원 방식을 바꾸어 가야 하는데 그런 고려가 없다는 점이 문제다.

가장 큰 손실은 그동안 인디스페이스에 축적된 운영 노하우와 이곳을 중심으로 형성된 독립영화계 커뮤니티가 해체된다는 것이다. 인디스토리 곽용수 대표가 지적하듯 "인디스페이스는 독립영화의 진지와도 같은 곳"이었다. 상영관을 찾지 못해 장기간 개봉하지 못한 독립영화들이 선보였을 뿐 아니라 공공 라이브러리로서의 기능도 있었다.

최초로 일본에 직배하는 형식의 '2009 眞! 한국영화제'
이런 의미에 비추어 볼 때 "형식적 민주주의"(고영재 대표)인 공모제의 효용은 의심 받을 수 있다. 영화진흥위원회는 지난해 12월 2010년 독립영화전용관 공모를 실시한 결과 "적정단체가 없다"는 이유로 재공모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직까지 재공모 시기는 확정되지 않았다. 새로운 독립영화전용관이 선정될 때까지 얼마만큼의 공백 기간이 있을지 불확실한 상태다.

이처럼 인프라가 열악한 만큼 상영관 중심의 배급 방식에 대한 대안도 모색되고 있다. 관람을 원하는 단체나 개인이 직접 상영회를 개최할 수 있도록 영화를 제공하는 형식의 '공동체 상영'이 한 예다.

2008년 설립된 시네마달은 이에 가장 적극적인 독립다큐멘터리영화 배급사다. 작년에만 약 200 차례의 공동체 상영을 지원했다. 감독이 자신의 가족사를 통해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풀어낸 <할매꽃>, 새만금 간척사업에 저항하는 지역 주민들의 이야기를 담은 <살기 위하여> 등이 이런 방식으로 관객과 가까이 만났다.

공동체 상영의 의미는 단지 극장에 없는 영화를 찾아 볼 수 있다는 편리에 머물지 않는다. 이름 그대로 '공동체' 문화의 한 매개가 된다는 점에서 '사회운동'으로서의 독립다큐멘터리영화의 역할과 결합하기도 한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주인공으로 한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의 경우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서 추진하는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건립을 위한 모금 행사를 겸한 공동체 상영을 여러 차례 진행했다. 88만원 세대의 진솔한 초상인 <개청춘>도 전국 학교를 순회하며 당사자인 20대 관객 앞에 절찬리 상영중이다.

지난해 말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가 문을 닫았다. 독립영화가 자생력을 갖추기 위해 다양한 배급 방식을 시도할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
이상엽 배급팀장은 "시네마달이 설립되기 전에는 공동체 상영의 루트가 거의 없었다. 작년 공동체 상영이 많이 늘어났고, 앞으로 대안 배급의 한 형태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속 가능한 독립영화 시스템, 가능할까

이 모든 시도들이 정착되려면 수익 구조로 이어져야 한다. 영화를 만드는 이들에게 적절한 대가가 돌아가지 않는데 자생적이고 지속 가능한 시스템이 꾸려질 리 없다.

지난해 일어난 <워낭소리> 동영상 불법 유통은 독립영화에 대한 대중적 인식이 높아진 것이 곧 독립영화 시스템을 뒷받침하는 충분조건이 아님을 증명했다. 독립영화계 내부에서는 투명하고 공정한 온라인 배급 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제기되었다.

고영재 대표가 만든 인디플러그는 그 고민의 산물이다. 인터넷을 통한 독립영화 다운로드 서비스는 물론 IPTV, 모바일 미디어 등 다양한 디지털 플랫폼에 대한 독립영화 배급을 총괄하는 신디케이터(콘텐츠 유통 전문 사업자)다. 이미 몇몇 IPTV에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고, SKT의 모바일 오픈마켓에 100여 편의 독립영화 다운로드 서비스를 시작했다. 오는 3월, 독자적 다운로드 사이트를 오픈해 본격적으로 가동한다.

크게 두 가지 목적이다. 우선 온라인, 디지털 플랫폼에서의 독립영화 소비를 합법화하겠다는 것. 그리고 나아가 오프라인에서 상영될 기회가 없는 다양한 독립영화가 관객을 만날 수 있는 대안적 창을 마련하겠다는 것.

이를 위해 사이트는 단순히 콘텐츠 다운로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독립영화문화를 활성화하는 구심점이 되도록 구성될 예정이다. 전문필진의 독립영화 리뷰와 독립영화계 소식을 개제하고, 관객이 참여할 수 있는 코너를 마련해 커뮤니티 성격을 강화한다.

인디플러그의 매출액 중 20%는 독립영화 전체를 위한 기금으로 적립된다.

이에 대한 내부의 기대도 크다. 시네마달 이상엽 배급팀장은 "독립영화에 대한 정보를 쉽게 찾는 인터페이스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인디스토리 곽용수 대표도 "기존의 시장 질서가 아닌 새로운 시장 질서를 만드는 계기"로서 의미를 부여했다.

관건은 대중적 지지를 얼마나 얻느냐다. 정서적으로 호소하는 것을 넘어 불법 유통을 통한 공짜 콘텐츠에 익숙한 한국 관객들의 경제적 인식도 바꾸어야 한다. 지금 독립영화가 시도하는 다양한 배급 방식은 영화를 '소비'하는 것이 곧 영화 '문화'를 나누는 일임을 알림으로써 지지를 획득하려는 전략이다. 이 기획들이 상업영화와 구별되는 독립영화 '시장' 형성으로 이어지는 데 가장 큰 변수는 한국사회의 문화적 수준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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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