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갤러리] 왁구바리 셰이크 기획전

이동훈, '고향을 버리다'
아직도 간혹 다방이 있다. 아니, 있다기보다 나타난다, 는 게 정확한 표현인지 모른다. 먼 거리, 전체 풍경에서는 결코 눈에 띄지 않는 이 오래된 밀실들은 문득 엿보이는 골목 안, 소멸 직전의 불길함으로 마음을 끄는 낡은 건물 등 도시의 아주 깊숙한 곳에 불쑥, 있어서 행인을 놀랜다. 다방이라니, 역사의 허공에 흩어진 고대어의 파편 같은 이름 아닌가.

간혹 남은 것도 본뜻이 아니다. 초기의 다방은 말 그대로 차 마시는 곳, 차를 마시며 음악을 듣거나 문학을 논하거나 시국을 전하던 문화 공간이었으나, 그 세련됨과 활력을 프랜차이즈 커피숍에 내어준 후 남은 것은 한때 안락함이었던 은밀함 뿐이었다. 그 은밀함이 화폐 가치의 교환 관계를 상징하는 '티켓'과 결합하면서 다방은 성매매의 온상으로 비춰지기도 했다. 그럴수록 다방은 '다방'으로부터 멀어졌고, 큰 길의 안쪽으로 숨어들었다.

신진 작가 모임인 '왁구바리 셰이크'가 대전 대덕구 중리동의 한 건물 지하에 있는 유정다방에서 보는 것도 이런 다방의 변천사다. 8명의 작가들이 이곳에 얽힌 역사와 사연들, 사회적 맥락들을 각각의 시선으로 풀어냈다. 그 내용은 다방에서 있었을 법한 낭만적 풍경에 대한 상상(이상규, <언니네 음악다방>)와 그곳의 보편적 정서였을 기다림의 복원(박진이, <끝없는 기다림>)에서부터 다방을 밀어낸 커피숍 프랜차이즈 사업에 대한 풍자(손민광, <정복자의 커피잔 1쌍>)에까지 이른다.

다방을 대중적 문화 공간으로 만든 구심점으로써의 TV를 모티브로 한 권재한의 작품은 다방에 대한 젊은 작가들의 '향수'가 실은 <아날로그적 소통>에 대한 갈망임을 일러준다.

최윤희의 <당신을 위한 무도회>는 다방을 통해 이루어진 성매매의 한 본질을 포착한 작품. 화려하지만 처연하게 차려진 탈의실은 '팔리기' 위해 꾸며졌을 여성들의 몸을 상상하게 만든다.

손민광, '정복자의 커피잔 1쌍'
다방 문화의 상징인 배달 보자기 속에 프랜차이즈 커피숍의 종이컵을 담은 노종남의 <배달의 민족>은 세계화 속에서 지역 문화의 변화 가능성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며, 홍석민의 <다 먹어버릴거야>는 좀더 비판적인 입장에서 세계화의 힘을 풍자했다.

이동훈의 <고향을 버리다>는 이 프로젝트 자체의 의의를 알리는 안내판과도 같다. 다방에 설치되어 있던 바퀴벌레약을 확대해 그래픽적 이미지로 바꾼 이 작품은 버려진 공간을 새롭게 창조해 관객과 소통하겠다는 의지를 실현한 것.

이리도 지극한 뜻이 모여 2월1일부터 21일까지 유정다방은 그야말로 정이 넘치는(有情) 문화 공간이었던 영화를 다시 누릴 예정이다.


권재한, '아날로그적 소통'
노종남, '배달의 민족'
박진이, '끝없는 기다림'
홍석민, '다 먹어버릴거야'
이상규, '언니네 음악다방'
최윤희, '당신을 위한 무도회'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