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장 변화의 날개를 펴다] 번인화 발맞춰 극장 산하 예술감독들 중장기 발전계획 발표

26일 오전 서울 국립중앙극장 해와달 레스토랑에서 60주년 환갑을 맞은 국립극장 <2010 국립극장 기자간담회> 자리에 참석한 (좌로부터) 국립창극단 , , 국립무용단 , 국립국악관현악단
1950년 아시아 최초의 국립극장으로 출발한 국립극장이 창립 60주년을 맞아 새로운 모습으로의 변신을 꿈꾼다.

'변신'의 배경에는 그동안의 '국립극장 예술 활동'을 둘러싼 외부의 비판이 있다. 라이선스 공연 외에는 극장을 외면하는 관객들, '국립'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대표 레퍼토리의 부족 등 국립극장은 그동안 공연예술사적 성과와 별개로 수년째 침체되어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국립극장을 지탱하는 상주 예술단들의 역할이 더 중요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대관 위주의 다른 공연장과 달리, 국립극장에 대한 평가는 곧 상주 예술단의 공연에 대한 예술적 평가와 직결된다. 때문에 현재 정부 주관으로 법인화가 진행 중인 국립극단의 향방과 각 예술감독들이 구상한 중장기 발전계획은 앞으로의 국립극장 예술을 가늠할 수 있는 주요한 단초가 될 것으로 보인다.

독립 운영되는 국립극단, 다른 산하단체와 별도 운영

지난달 26일 국립극장에서는 을 비롯해 유영대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배정혜 국립무용단 예술감독, 황병기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이 한 자리에 모여 새롭게 재편되는 국립극장의 부흥 전략을 발표해 이목을 끌었다.

임연철 극장장
원래 4개 단체 예술감독이 모두 참석했어야 할 이날 자리에는 국립극단 예술감독의 자리가 없었다. 최치림 국립극단 예술감독이 지난달 18일 사임했기 때문. 최 전 예술감독은 문화체육관광부의 국립극단 재단법인화 결정에 따라 대학로의 극장 두세 곳을 통합˙운영하는 보직으로 옮긴 것으로 전해졌다.

임연철 국립극장장은 국립극단의 현황에 대해 "법인화와 관련된 모든 사항은 정책을 담당하는 문광부 실무국에서 검토하고 추진하는 중으로, 국립극장은 과거 소속단체였다는 의미에서 지원과 후속 조치를 계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국립극단은 국립극장 60주년 기념일인 4월 29일 이전에 법인화를 완료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고, 그때까지는 극장 소속으로 함께 머물게 된다.

이에 따라 전임 예술감독이 기획한 공연들도 잇따라 보류되거나 취소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둥둥 낙랑 둥>은 계획대로 공연됐지만, 2월 중 예정됐던 <겨울, 해바라기>는 취소됐다. 4월 공연 역시 보류를 검토 중이다. 하반기에는 <한여름밤의 꿈>, <둥둥 낙랑 둥>, <테러리스트 햄릿>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새로운 법인체 출범과 신임 예술감독의 취임 여부에 따라 공연 일정과 새로운 레퍼토리 제작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법인화된 국립극단은 더 이상 극장 소속의 산하단체가 아니다. 은 이에 대해 '이제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별개의 단체'라는 표현을 썼다. 그는 "법인화와 관련된 모든 문제는 문광부가 추진하며 지침이 내려오면 관련 사항을 국립극단과 논의할 것"이라고 밝히며 "이름만 '국립'이고 완전히 새로운 국립극단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국립극단은 이미 재단법인이 된 국립오페라단이나 국립발레단처럼 재정자립도를 키워 정부 재원보다 관객 확보에 더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유영대 예술감독
국립창극단, 기존작 업그레이드와 레퍼토리화 목표

국립극장의 맏형 국립극단이 변신을 위한 진통을 겪는 사이, 전통극의 현대적 창작을 보여주는 국립창극단의 역할은 더 커지게 됐다. 은 특히 국립창극단 창립 48주년을 맞아 더욱 원숙미 있는 '중년의 모습' 보여주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그가 올해 가장 야심차게 내세운 작품은 국가브랜드 공연인 <청>이다. 5월 공연 예정인 이 작품은 올해 창극단의 캐치프레이즈인 '대중과 함께하는 창극'에 걸맞게 심청 이야기를 업그레이드했다. 이미 2006년 초연 당시 50여 회의 공연에서 관객 6만 명이 관람할 정도로 좋은 반응을 얻은 <청>은 본 관객이 또 봐도 좋도록 내용 수정과 무대 보완이 가미됐다. 유 예술감독은 "가족 사랑과 자기 정체성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작품이 될 것"이라고 말하며 "이번에는 80회 이상 10만 관객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청>에 앞서 4월에는 <춘향 2010>이 무대에 오른다. '춘향'과 '심청' 이야기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자주 소개되는 것은 고전으로서의 높은 이월가치 때문. 특히 이번에 공연되는 춘향은 발칙한 모습으로 그려지는 춘향이 등장할 예정이어서 관심을 모은다.

하반기에는 한국전쟁 60주년을 맞아 차범석의 <산불>이 창극으로 무대에 오른다. 국립극단에서 연극으로 공연됐던 이 작품은 이미 한 차례 창극 버전으로 공연돼 가능성을 인정받은 바 있다. 유 예술감독은 이번 10월 공연에 대해 "이전과는 다른 큰 스케일로, 산불의 위풍당당함을 표현하는 것은 물론, 한국전쟁 60주년을 맞아 전쟁의 비극과 이데올로기적 메시지를 담아낼 것"이라고 설명했다.

배정혜 예술감독
한편 지난해 2월 초연됐던 <로미오와 줄리엣>이 올해는 한해의 대미를 장식하게 된다. 이 작품은 창극에서 처음 시도된 번안 작품으로, 판소리 어법에 맞게 잘 옮겨졌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유 예술감독은 "기회가 되면 <맥베드>나 <리어왕>을 한국화한 작품도 하고 싶다"는 욕심을 밝히며 창극을 통해 세계 명작에 도전할 것이라는 포부를 내비쳤다.

특히 그는 신작이 없다는 일부 비판에 대해 "전통 민족극을 공연하는 곳이 국립극장이고, 기존 레퍼토리를 지속적으로 선보이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일축하면서도 "새 작품 창작과 레퍼토리화를 통해 대중적 인지도를 올리고 <청>을 통한 창극 인식 재편에 중점을 두겠다"고 답했다.

국립무용단, 해외 진출과 신작 공연으로 브랜드 강화

올해 국립무용단의 공연 일정엔 유난히 외국 이름이 많다. 한국의 전통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국가 브랜드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등 해외 공연 비중을 늘린 것.

은 "그동안 무용단의 해외 공연은 <코리아 환타지>와 같은 소품 형식의 작품이 주였다면 이번에는 , <춤, 춘향>과 같은 장편무용극으로 구성한 점이 다르다"며 올해 일정의 특징을 설명했다.

황병기 예술감독
스타트를 끊는 것은 역시 국가 브랜드 공연 <춤, 춘향>이다. <춤, 춘향>은 밴쿠버의 퀸엘리자베스 시어터와 뉴욕 링컨센터에서 4일 간격으로 잇따라 일정이 잡혀 있다. 2006, 2007년에 이어 지난해까지 객석 점유율 90%에 육박하는 대중적 성공을 거둔 는 독일에서 7회의 투어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특히 이번 투어는 에서 국립무용단과 함께 호흡을 맞춘 클래식 재즈그룹 살타 첼로(Salta Cello)의 모국이기도 해 관객 접근성 면에서 이점을 갖는다.

유럽 초연이기도 한 이번 공연은 현지인들의 우리 춤에 대한 반응과 평가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배 예술감독은 이번 일정에 대해 "한국에서의 평은 좋았지만, 외국 관객에게는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떨린다"고 긴장감을 나타내면서도 "세계 정상급 공연과 나란히 하는 국가 브랜드 공연이 될 것"이라며 기대감도 감추지 않는다.

하지만 국내 관객들에게 반가운 소식은 역시 국립무용단의 신작 소식이다. 그동안 한국춤의 대중화 작업을 계속해온 은 "올해도 예술적 취향보다 대중적 취향을 위주로 한국춤에 입각한 재창조 작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설명하며 "특히 5월 가정의 달과 12월 연말을 노려 대중화를 시도할 것"이라고 구체적인 계획을 밝혔다.

가장 기대를 모으는 것은 5월에 공개될 <프린세스 콩쥐>. 판타지댄스컬을 표방하는 이 작품은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작품으로, 장기공연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 배 예술감독은 "한국춤은 특수 관객층 외에는 안 온다는 인식이 큰데 <프린세스 콩쥐>가 그런 편견을 깨는 시도가 될 것"이라며 "발레 <호두까기 인형>처럼 재미있고 환상적이며 현대적인 테크닉의 작품을 기대해달라"고 당부했다.

국립국악관현악단, 국악 칸타타로 예술성 향상 박차

지난해 조정수 상임지휘자를 새로 초청하며 역량 강화에 힘써온 국립국악관현악단은 올해 예술적 역량을 총동원한 대작을 통해 국악관현악단으로서의 위상과 목표를 굳게 다진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바로 <어부사시사>가 있다.

"문학의 최고봉은 고산 윤선도의 시조라 생각한다"고 운을 뗀 황 예술감독은 "역대 문장가들은 많지만, 한글문학의 극치를 보여주는 작품은 바로 <어부사시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윤선도의 <어부사시사>에 대해 "춘하추동마다 10수씩 되어있는 총 40수 시조로, 그 양이 방대하나 내용이 멋지다"고 감상을 밝히며 "이를 바탕으로 국악 칸타타를 만들 것"이라고 간략히 설명했다.

황 예술감독이 '최초의 국악 칸타타'라고 표현한 <어부사시사>는 현재 임준희 작곡가가 작업 중으로, 11월 중 공연을 계획하고 있다. 또 국립창극단과 협업하던 관례와 달리, 이번 작품은 (창극단 특유의) 남도음악 성악법에서 벗어난 작품이기 때문에 외부 합창단을 참여시키는 것도 특징적이다. 황 예술감독은 "획기적인 대작인 만큼, 거는 기대가 크다"며 "신중을 기해 작업하고 국립극장 60주년 기념일에 시연회를 가질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이 내세운 또 하나의 야심작은 테마가 있는 퍼포먼싱 콘서트 <뛰다, 튀다, 타다>. 타 장르에 비해 늘 젊은 관객층의 수요가 부족한 국악 중에서도 관현악 공연은 특히 취약한 장르다. 이에 황 예술감독은 20˙30대 젊은 관객층 공략을 목표로, 국악관현악 연주뿐만 아니라 춤, 연극, 대중음악이 함께하는 신개념 음악회를 기획했다. 지난해 초연에서 새로운 공연 양식의 실험에서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뛰다, 튀다, 타다>는 금년에 업그레이드를 거쳐 젊은 관객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예정이다.

국립극장, '수석ㆍ부수석제'와 '오디션제'로 활력 찾을까

국립극장은 지난 연말부터 전속단체에 수석ㆍ부수석제와 오디션 제도를 도입해 단원들 간의 경쟁을 통한 질적 향상을 꾀하고 있다. 두 제도는 그동안 규정상으로는 존재했지만 비용 등의 문제로 실행되지 못했다.

수석ㆍ부수석제는 발레단의 프린시펄(주역), 솔리스트(독무˙조연), 코르 드 발레(군무) 제도와 비슷한 구성 형태를 보인다. 은 이미 수석 제도를 운영하고 있던 국립국악관현악단에 부수석 제도를 보완하면서 이를 계기로 다른 단체들에도 이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임 극장장은 "우수한 단원에게는 추가 수당 지급 등 예우책이 마련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악관현악단은 관현악의 특성상 7개 악기 파트에 수석을 두고 운영해왔다. 부수석도 예전부터 있었지만, 수당 지급 문제로 실행되지 않았다. 예산 확보 후 각 파트 별로 부수석이 한 명씩 추가되어 총14명의 수석ㆍ부수석이 선정됐다.

경력이 오래된 단원이 사실상 수석 역할을 해온 무용단은 이 제도 도입 후 새로운 변화가 예상된다. 은 "성적과 스타성으로 평가되는 만큼, 신단원이 실력 발휘에 따라 부수석을 맡을 수도 있어 새로운 활력소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이에 덧붙여 "주역 횟수나 출연 빈도에 따른 공연수당 차등지급 역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창극단의 경우는 창악부와 기악부에서 각각 한 명씩 선정됐다. 은 이용탁 음악감독과 상의한 후 기량과 친화력 여부, 리더십 등을 주요 기준으로 최근 2,3년 동안 활동이 왕성했거나 주역을 많이 한 사람을 수석ㆍ부수석으로 임명했다. 유 예술감독은 "지금까지는 운영위원과 공연계획이나 작품 방향 등을 논의했지만, 앞으로는 수석ㆍ부수석과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디션 제도는 그동안의 상시평가(출연 횟수나 감독 재량에 따른 점수)를 오디션으로 전환키로 했다. 이는 궁극적으로 단원의 기량 향상 위한 것이라는 것이 임 극장장의 설명이다.

은 "관현악단의 경우 그동안 오디션이 없었다. 국립단체들에 대해 소위 '철밥통' 비난이 있었지만 금년부터 오디션이 진행되는 만큼 단원들도 적극 수용하길 바란다"며 단원들의 노력을 촉구했다.

아직 구체적인 오디션 방침이 정해지지 않은 창극단은 극장장이 선정한 2명의 전문가와 단원이 선정한 2명의 전문가, 그리고 예술감독이 추천한 2명의 전문가와 예술감독의 총7명으로 까다롭게 진행될 예정이다. 은 "핵심적인 것은 전국대회 대통령상을 겨냥한 선정방식이 될 것이라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대통령상 수상 기준이 곧 오디션 기준이 된다는 말이다.

지금까지 외부의 '도전'을 응할 필요 없이 안정된 환경에서 안주해왔다는 비판을 받기도 해온 국립극장 예술단들은 이제 극장 밖의 예술가들과 동일선상에서 경쟁을 하게 됐다. 국립극장과 각 예술감독들이 추진하는 국립예술단의 변화가 경쟁을 통해 어떤 성과를 거두게 될지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