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그리다]대가족·핵가족 전형적 형태서 다문화 가정·한부모 가정 등 다양한 모습

드라마 '민들레 가족'
MBC 주말드라마 '민들레가족'은 제목처럼 가족애를 다룬 드라마다. 세 딸을 둔 평범한 중산층 가정을 통해 "미워도 사랑하고 아파도 감싸 안는 우리 시대 가족의 모습을 그린다"는 것이 제작진의 의도다.

온 가족, 정확하게 온 집안의 여자들이 모여 설날 음식을 준비하는 장면에서 출발하는 드라마는 우리 시대, 가족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기서 의문이 든다. '전형적인 가족'이란 무엇인가? 2010년 한국사회에서 가족은 어떻게 해석이 될까?

가족이란?

진 윌리스의 <가족이란>은 외계인 자글 박사가 외계인 아이들을 대상으로 지구에 대해 수업하는 모습을 담은 어린이용 그림책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외계인의 눈으로 지구 가족을 소개하는데, 구성원들의 성격과 외모의 특징, 가족 관계 등을 보여주면서 현대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가족의 모습을 설명한다.

자글 박사의 표현에 따르면, 지구 가족은 "서로 목에 끈을 달고 서로 좋든 싫든 꽉 묶여 있는 상태"를 말하며, "코와 귀를 달고 있어 딱 보면 가족이란 걸 알 수 있는" 존재다.

즉, 가족이란 결속력이 대단히 강하고, 유사성을 지닌 집단이라는 말이다. 다소 엉뚱한 발상을 통해 저자는 가족이 현대 지구촌의 가장 특징적인 제도 중 하나이며 그 제도는 인위적 산물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남성과 여성이 만나 가정을 이루는 소위 '정상가족'(Normal Family)은 산업화가 만든 신화라는 말이다.

독일의 사회학자 엘리자베트 벡-게른스하임은 <가족 이후에 무엇이 오는가?>(1998)에서 정상가족의 신화가 부식된 현대사회의 가족 개념, 가족관계 메커니즘의 변화를 분석했다.

전통사회에서 가족이란 인간에게 그냥 '주어지는 것'이었다. 인간은 신분이나 서열, 종교 같은 규정에 따라 '태어나는 것'이었고 가족생활이란 그 규정에 의해 표준화돼 있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농경사회에서 대규모 집단 노동이 필요했고, 3,4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제도가 사회주류로 뿌리내린 것처럼 말이다.

성인 한 쌍과 자녀로 구성된 정상가족(핵가족)은 산업화 이후 사회 패러다임이 바뀌며 만들어진 신화다. 정상가족은 성인 남녀가 결혼해서 죽을 때까지 유지됐으며 남편은 일자리를 가지고 밥벌이를, 아내는 가정과 가족을 위해 소임을 다하는 모델이었다.

한국의 가족 개념 역시 근현대 사회의 산물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문학평론가 권보드래는 <연애의 시대>에서 한국에서 연애와 결혼, 가족의 형태는 '연애의 시대'라고 불리는 1920년대 초반, 근대에 이르러 비로소 형성된 것이며 그것이 개인적 차원의 문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근대의 가치 체계를 구성하는 방식이자 표상이었다고 말한다. 홈드라마가 그려내는 '전형적 가족'은 근대의 표상이라는 말이다.

달라지는 가족의 개념

40년간 서구 학계의 주류를 이룬 '정상가족' 신화는 이제 지속되지 않는다. 정상가족 모델의 핵심 메커니즘인 '성별 분업'은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들이 경제활동에 대거 참여함으로써 느슨해졌다.

결혼은 더 이상 '일생의 결합'이 아니라 '취소될 때까지의 결합'이라는 생각이 확산됐고, 인공수정 기술의 발달은 전통적인 부모의 개념조차 변화시켰다. 누가 가족인지, 가족이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이 유동성을 띠게 됨으로써 정상가족이라는 개념은 점차 현실적합성을 잃어가고 있다.

"동거, 멀리 떨어져 사는 가족, 한부모 가족, 동성애 가족 등 변화는 급격했습니다. 이들은 새로운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새로운 '가족들' 입니다. '가족(the family) 이후에 무엇이 오는가'에 대한 대답은 간단합니다. 바로 '가족들'(families)입니다."

현대사회 가족에 대한 엘리자베트 벡-게른스하임의 진단이다. 그는 '결합과 친밀함과 공동체에 대한 동경'과 '자기만의 독자적인 삶에 대한 욕구'가 결합된 새로운 '가족들'이 탄생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최근에는 세계화와 노동시장, 가족형태의 변화에 대해 주목하고 있습니다. 실업의 위험성이 높아지면서 젊은 세대들은 아이 갖기를 포기할 가능성이 높아졌지요. 해외연수, 타지역ㆍ타대륙 근무 등의 기회가 늘어나면서 초국적 가족, 먼 거리를 사이에 둔 가족 등 새로운 형태의 '가족들'의 출현이 예고되고 있습니다."

지난 해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가 한 말이다. 다문화가정, 한부모 가족, 기러기 아빠 등 엘리자베트가 말한 '가족들'은 이미 우리사회 한 켠을 차지하고 있다.

문화가 그리는 가족은?

시대가 변하며 가족을 바라보는 시선도 다양해졌다. 문화는 그 시선을 담아낸다.

'스위트 홈'을 통해 가족 판타지를 충실하게 반영하는 월트디즈니 만화는 근대 서구 사회에서 탄생한 정상가족의 표상으로 읽힌다. 당대의 정서와 욕망을 그대로 드러내는 광고는 어떤가. 최근 텔레비전 광고의 주류를 이루는 이동통신사 광고와 아파트 광고는 디지털 노마드 시대, 대중의 지향점과 딜레마를 함축적으로 드러낸다.

흥미롭게도 이들 이동통신과 아파트 광고의 단골 콘셉트 역시 가족이다. 두바이의 건설현장에서 땀 흘려 일하던 아버지가 7살 아들에게 영상통화로 장래 희망을 묻고 우렁찬 목소리로 "대통령!"이라고 외치는 이동통신사 광고(KTF 'SHOW'런칭 광고), 김현승의 시 '아버지의 마음'을 문구로 만든 아파트 광고(래미안, '우리집 아버지의 마음' 편)의 모티프는 가족 판타지와 직결된다.

대중의 판타지와 기존의 가치를 충실하게 반영하는 대중문화의 한 편에 달라진 가족관을 내세우는 문화 콘텐츠도 존재한다.

영화 <가족의 탄생>, <아내가 결혼했다> 등 정상가정이라고 불리는 형태의 가족보다는 그렇지 않은 형태의 가족이 속속 등장하고 한다. 소설가 박현욱의 동명의 소설을 모티프로 만든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는 일부일처제의 정상가족 범주를 벗어나 일처다부제의 가족을 말한다.

공지영의 장편소설<즐거운 나의 집>과 전경린의 장편소설<엄마의 집>에서는 싱글맘이 가족 경제의 주체로 등장하며 김선우 작가의 장편소설 <캔들 플라워>에서는 아예 할머니와 어머니, 딸로 이어지는 일종의 모계 중심의 가족이 등장한다.

모자이크처럼 파편화된 문화 콘텐츠는 '우리 시대 전형적인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되묻고 있는 듯하다. 2010년 문화가 그리는 가족은 어떤 모습인가? 문학, 회화, 영화와 드라마, 공연 등 한국 문화예술이 표현하는 가족의 초상을 들여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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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