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그리다/문학]시대 변화따라 달라지는 가족을 바라보는 시선 소설·시에 담아

소설가 신경숙
'한국문학사는 '집'과 '성장'의 문학사라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문학평론가 강유정의 <돌아온 탕아, 수상한 귀환>의 서두 부분이다. 최근 몇 년 간 공지영의 장편소설 <즐거운 나의 집>, 신경숙의 장편소설 <엄마를 부탁해> 등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한국문학에서 가족을 바라보는 시선에 관한 일련의 비평작업이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강 씨의 말처럼 "한국문학사는 집의 문학사"다. 서사구조를 지닌 소설은 물론, 시 역시 마찬가지다. 함돈균 문학평론가는 "가족의 문제는 한국시에서 기본적인 상수항이었다.

이 말은 가족의 문제가 일종의 공기와 같은 것이어서, 특별한 계기가 없다면 그 자체가 주요한 시적 모티프로 의식되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가족 판타지 vs. 새로운 가족

소설가 공지영
그렇다면 한 소설사에서 '집과 성장'으로 대표되는 가족은 어떤 의미였을까? 이광수의 <무정>은 고아로 자란 외로운 천재의 입사식이었고, 염상섭의 <삼대>, 채만식의 <태평천하>는 세대적 갈등을 토해 당대의 삶을 입체화했다. 황종연 문학평론가는 전쟁 이후 한국소설을 '편모슬하의 장남성장기'로 요약한다.

'편모슬하에 있는 어린 장자의 자아형성에 얽힌 그 이야기는 한국전쟁 이후 한국사회에서 개인의 성장이 어떤 일반적 조건 아래 있었던가를 살피는 추론에 유용한 예화가 되어 준다' (황종연, <편모슬하, 혹은 성장의 고백> 1995)

강유정 문학평론가는 <돌아온 탕아, 수상한 귀환>에서 "한국 소설사는 환멸과 내적 성숙이라는 개념이 사라진 아버지 혹은 왜곡된 어머니와 결합된 성장의 가족로망스로 압축될 수 있다"고 말한다.

억척 어멈과 장남 이야기가 1950년대 한국소설의 한 표정이라면, 김승옥을 비롯한 1960년대 소설은 타락한 모성으로 상징되는 왜곡된 사회로 입사해야만 하는 순수한 영혼의 환멸로 구성된다. 1960년대 소설에서 아버지의 부재는 곧 타락한 어머니였고 한편으로 순정과 거리가 먼 도시의 횡포로 비춰진다.

1980년대 이후 한국소설에서 아버지는 일종의 억압의 기율에 대한 상징으로 자리잡기 시작한다. 아버지는 억압적 문명이자 강제적 법률로서 아들들에 의해 부정당하고 축출당했다. 감옥, 이데올로기, 통제, 수용소와 동의어로서 아버지는 '배척하거나 화해해야 할 대상'으로 한국소설사에 드리워진다.

소설가 은희경
1990년대 한국소설에서 미시서사가 대세를 이루며 서하진, 김인숙, 은희경, 김형경, 차현숙, 전경린, 권지예 등 여성작가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급격하게 변하는 한국사회의 단면을 '자발적 가족 해체의 서사'로 보여준다. 이들 소설에서 가출, 이혼, 불륜의 서사가 반복되는 이유다.

정혜경 문학평론가는 <가족서사의 재구성, 그 지난한 탈주>에서 "타자를 억압하는 완강한 가족 이데올로기를 부정하고 여성의 욕망을 발견하는 서사는 일종의 사회변혁의 열망이었고 그런 만큼 전복적인 에너지를 가지고 있었다"고 말한다. 이런 시도는 1980년대 전체주의적 공동체 의식이 간과했던 개인성의 발견이란 평과 남성에 대한 양극화된 이해, 낭만적 환상이란 평을 동시에 얻었다.

2000년대 가족서사는 다시 변모한다. 1990년대 소설이 주로 '가족해체의 서사'였다면 최근 소설은 '가족서사의 재구성'으로 옮겨가고 있다. 이 재구성은 두 가지 벡터로 나아가는데, '새로운 가족의 탄생'과 '과거로의 회귀'다.

첫번째 변모의 주인공은 2000년대 등단한 젊은 작가군이다. 이들 소설에서 딸들은 아버지를 가부장이라 욕하지 않고, 아들들은 아버지를 대신해 가부장이 되길 원치 않는다.

부재 중인 아버지의 그림자가 일종의 원체험으로 작용했던 이전 세대와 달리 이들에게 가족의 결핍은 별다른 상처가 되지 않는다. 아버지는 때때로 '모자'가 되는 측은한 존재(황정은, <모자>), 동물이 된 우화적 존재(박민규, <기린입니까? 기린입니다>), 그것도 아니면 가정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사시사철 야광 바지를 입고 달리는 존재(김애란, <달려라 아비>)로 그려진다.

소설가 김인숙
요약하자면 이전 세대가 그토록 추구했던 '아버지 죽이기'에 관심이 없는 것이다. 2000년대 오이디푸스는 아버지 라이오스를 죽이기 위한 여정에서 벗어나 '숲'으로 나아간다.

'과거로의 회귀'는 어떤 소설인가? 흥미롭게도 이전 세대의 2000년대 소설에서 가족서사의 과거 회귀가 드러난다. 공지영의 <즐거운 나의 집>, 전경린의 <엄마의 집>은 딸의 눈으로 싱글맘인 엄마를 그리지만, 소설은 이데올로기적 구속을 거절하면서도 '각박한 세상에 안정된 항구가 된다'는 가족이데올로기를 반복하고 있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는 가족이데올로기의 회귀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김유정 평론가는 "<엄마를 부탁해>에 그려진 어머니상은 고전적 의미에서의 신화적 모성에 가깝다. 지금 존재하는 사실적 어머니가 아니라 합의된 기억 속에 간직된 상상적 이미지와 닮아 있는 것"이라고 평했다.

가족 삼각형 밖으로 탈주하는 아이들

아버지-어머니-아이. 프로이트 정신분석의 기초를 이루는 '가족 삼각형'은 한국문학 속 가족을 분석하는 주요 틀이다. '방점이 어느 꼭지점에 찍히느냐'에 따라 문학이 그리는 가족의 초상은 달라진다. 이재복 문학평론가는 아버지에 방점을 찍어 한국 시의 계보를 정리한다.

시인 윤동주
<모든 아비는 의붓아비다>에서 그는 "한국 현대시의 가족로망스는 정상적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구도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것은 식민지와 분단으로 이어지면서 아버지를 살해할 기회를 박탈당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아버지 살해 기회의 박탈은 친부(식민지 조선)와 계부(일제)라는 이중적 구조를 가지게 했다.

친부와 계부의 공존은 다양한 시적 알레고리를 낳는다. 대표적인 형식이 이상, 김소월, 윤동주의 시에 드러난 알레고리다. 이상은 친부의 부활도, 계부의 영접도 거부한 채 상징계의 탈주를 감행하고 있고(오감도 시제1호), 김소월은 이상적인 유토피아와 죽은 친구의 혼을 불러내는 의식을 드러내 보인다(엄마야 누나야, 초혼).

윤동주는 계부에 대항해 스스로 자신을 죽이는 속죄양 의식을 통해 저항의 모습을 보여준다(간). 이재복 평론가는 같은 글에서 "근대를 관통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구도는 장정일, 기형도 이후 새롭게 변주되기에 이른다.(…)90년대 젊은 시인들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거부한다"고 덧붙였다.

함돈균 평론가는 "한국시에서 가족의 문제가 중요한 시적 모티프로 자각되기 시작한 것은 80년대의 폭압적 정치상황이 가부장의 이데올로기-남성적인 것의 폭력성에 대한 은유의 한 종류로 자각되기 시작하면서부터"라고 말한다. 그는 이어 "장정일의 '아빠'에서 화자는 아빠를 단지 가부장-남성의 폭력으로 도식화하지 않고, 햄버거와 동일시하면서 문화제국주의에 대한 은유로 사용하는 시각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1990년대 등장한 김정란과 박서영과 이경림 등 90년대 여성시인들에게 아버지는 폭력적인 것, 어머니·여성성은 억압되어왔고, 따라서 새로운 긍정적 가능성을 내포한 기표로 자리잡는다. 가족 삼각형의 방점은 이제 어머니에게 찍힌다.

시인 이상
진은영과 이민하, 김민정, 황병승 등 2000년대 등단한 시인들의 작품에서는 페미니즘 담론 역시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전락한다. 그들의 시에서 어머니(여성) 역시 가족구조 내에서 아버지와 공모함으로써 오히려 가부장의 이데올로기와 남성성기 중심의 사회체계를 공고화하는 데 일조한다.

김민정의 첫 시집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는 이에 대한 가장 격렬한 반응을 보여준 시집이다. 황병승의 시 주인공은 모두 10대다. 가족은 기본적으로 아이를 가두는 억압의 체계이고, 궁극적으로는 사회체제의 지배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은유로 작용한다. 황병승의 시에서 주인공 아이는 단지 반항하는 아이가 아니라, 지배적 관습을 벗어나 창조하는 개인이 지닌 반항적 기질을 보여준다. 가족삼각형의 방점은 이제 '아이'에게 찍힌다.

함돈균 평론가는 "최근 등단한 김상혁과 김승일의 시에서 화자는 모두 아이다. 김상혁의 시에서 아이는 단 한 번도 부모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화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발표한 김승일의 거의 모든 시는 가족을 주제로 하고 있으나, 그의 가족에는 부모가 없다.

그의 시의 화자는 소년 가장으로서 동생과의 대화를 구어로 전달하는데, 그 발화는 구김살이 없으며 천진한 건강성을 발산한다. 부모가 없는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독립적인 힘으로 살아갈 수 있는 스스로의 가능성을 확신하는 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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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장정일
시인 김민정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