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그리다/미술] 한국미술 모자상부터 <가족> 전까지

민복진, 가족, 1964
한국문화에서 '가족'이라는 테마의 인기는 생존 본능과 관련된 것 같다.

전쟁과 급격한 근대화의 역사가 낳은, 개인이 전부 이해하거나 감당할 수 없었던 비극들이 한국사회를 생존에 대한 급박한 정서 속으로 몰아 넣은 것이 혈연 공동체를 향한 집념의 연원이 아닐까.

'가족'을 보고 설명하고, 사회생활의 중심에 놓으려는 강력하고도 면면한 경향에 대해 진화심리학자라면 유전자의 명령이라고 말할 것이고, 사회학자라면 무리지음의 정서적이고도 경제적인 효용을 제시할 것이지만 대부분은 그저, 그런 줄도 모르고 저녁식사 때마다 가족이 주인공인 일일 드라마를 챙겨보며 명치가 묵직해지는 것을 느끼는 중이다.

한국 근대미술에서도 꼭 그 정도의 감정 수준이 보편적이었는데 1950년대 이후 활발하게 그려지고 만들어진 모자상이 이를 대표한다. 어머니가 아이를 푸근히 안거나 젖을 먹이는 형태는 단지 둘만의 관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었다.

이들 간의 종종 혼연일체된 모습, 서로에 대한 몰두의 표정은 각각의 인물이 아닌 분위기에 초점을 맞추게 한다. 결국 보이는 것은 강력한 유대감이며 모자는 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기표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장욱진, 가족, 1973
모자상에서 강조하는 모성은 어머니의 역할에 대한 것만이 아니며 가족 이데올로기의 압축된 전형, 그 이상화의 출발점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즉 모자상들은 남성과 여성의 합의된 평등한 결합과 세대 간 규약을 주고 받는 펼쳐진 계보로서의 가족이 아니라 '어머니'의 밀실 같은 품으로서의 '가족'을 상상하도록 하는 진입로다. 조각가 민복진의 작품이 대표적이다.

장욱진과 이중섭, 박수근 등의 '한국적' 작가들의 가족 테마는 이런 사회문화적, 미술사적 맥락을 응축한 지점이기에 한국적이다. 미술평론가 박영택은 <가족을 그리다>에서 이들의 삶의 배경에 한국전쟁이 있었음을 지적한다.

당시 "오랜 세월 동안 지속된 전통적 가족 질서, 나아가 전근대적 시스템 전체가 무너져내리는 위기의식"이 "개인의 실존을 위협하는 체제의 폭력과 광기에 대한 미학적 반응물"로서의 가족 그림이 등장한 원인이었다는 것이다.

이때 가족 그림의 의미는 이중적인데, 가족 구성원의 죽음과 행방불명에 당면한 작가 자신의 물리적이고도 구체적인 참혹을 투영하는 것이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가족'이라는 이상적 삶의 방식과 질서를 회복하려는 의지의 표명이기도 했다.

임옥상, 6.25 후 김씨 일가, 1990
후자는 사실 매우 정치적인 구상이었지만 전자와 동시에, 생존 본능에 의해 '발생'했기 때문에 퇴행적인 형태일 수밖에 없었다. 작가들 스스로도 이성을 찾을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가족을 '차갑게' 조명하는 작업들은 1980년대 이후에야 가능했다. 임옥상은 가족을 한국사의 굴곡이 집약된 표상으로 다루었다. <6.25 후 김씨 일가>는 한 평범한 할아버지의 회갑 기념사진을 재구성했다. 한국전쟁을 거치며 죽거나 사라졌다는 뜻으로 참석자 중 몇몇을 삭제했다.

그들의 빈 자리가 처연하기 이전에 섬뜩하다. 그의 다른 작품 <가족>은 한국 미술이 좀처럼 인정하지 않았던 가족, 즉 미군과 '양공주'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의 존재를 상기시키기도 한다.

'가족'에 대한 천진난만한 꿈으로만 고단한 생을 버틸 수 있었던 시대가 있었건만, 그 '이상'이 끈질긴 상식이 되고 집착이 되고 마침내 권력이 되는 경향에 저항하는 시대도 어느새 찾아 왔다.

1980년대 초 안창홍은 그로테스크한 가족의 이미지를 선보였다.(<가족사진>) 전형적인 가족 사진의 포즈를 취하고 있지만 그들의 눈은 공허하고 입은 메말랐다. 이는 한국 현대미술이 시도하는 '가족'에 대한 해부와 의심, 변주의 서막처럼 보인다. 가족은 더 이상 당연한 은신처가 아니다.

안창홍, 가족사진, 1982
오늘날 많은 작가들이 '가족-되기'의 과정을 추적한다. 국가주의를 작동시키려는 권력의 의도에 의해, 보장된 소비자로서의 가족을 유지하려는 미디어를 통해, 나와 남을 구별짓고 무리에 속하려는 대중의 편의적 관습에 의해 가족이 만들어지고 있음에 주목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가족이 무엇인지, 나아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묻는다.

국제 결혼 커플, 동성애자 커플 등 '비주류' 가족을 담은 김옥선의 사진(), 독신 여성에 대한 백지순의 작업들은 그 이질성을 통해 고착화된 '가족'의 범위를 확장할 것을 제안한다.

그러나 가족이란 늘 엄밀한 사회학적 시선으로만 조명할 수 있는 테마가 아니라는 점은, 한편에서 다시 '자기기술적' 작업들을 태동시킨다. 작년 전북도립미술관에서 열린 <가족> 전은 작가가 가족이라는 테마와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한 분투, 그 과정에서의 긴장을 엿볼 수 있는 전시였다. 기획자인 김병철 스스로가 결혼을 앞두고 부모님과의 갈등을 겪고 새 가족을 꾸릴 준비를 하며 열었던 전시였다.

20~30대의 젊은 작가들이 가족이라는 테마를 통해 구현해낸 것들이 대부분 사물이라는 것은 특징적이다. 집 자체나 가구가 주된 소재였고, 화초와 선인장 등의 식물이 은유적으로 쓰였다. 가족의 삶을 물리적으로 지탱해줄 주거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젊은 세대의 당면 과제이기 때문일까, 혹은 언제부터 구성원들이 가족 내에서 '배치'되어 살고 있다고 인식하기 때문일까.

김영봉의 작업은 전자의 문제 의식을 드러낸다. 재개발 지역에서 공공미술 작업에 참여한 이 작가는 현장에서 주워 온 폐자재로 자신이 살았던 집들의 모형을 만들었다.(<집>)

김영봉, 집, 2009
그래도 이 정도면 가족 관계에 대한 향수는 남아 있는 편에 속한다. 홍승택의 작업에는 자기 자신뿐이다.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라는데 혼자 코 파는 그림을 그려 냈다.(<비오는 날 막걸>) 콧방귀다. 이 불경함이야말로 구조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좀처럼 가족 관련 통계망에는 잡히지 않는 독신자들이 가족에 대해 갖는 솔직한 심정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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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