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비평시대] 전문가 주도에 문제 제기… 쇄국정책 풀린 '아이폰' 사례로 가시화

기술은 점점 문화의 선구자로 등장하고 있다. 빠른 속도로 진화하는 첨단의 기술은 세상을 놀라게 하는 만큼 압도해 버린다.

그것의 편리는 대중적으로 이해된 후 기존 문화와의 타협점에서 받아들여지기보다, 선포되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낸다.

사회의 급변에 뒤처지지 않도록 훈련된 기술 소비자인 우리 대다수는 그 속도를 따라잡고, 제공된 가능성을 시도해 보느라 바쁘다.

상품으로서의 신기술은 언제나 흥미로운 기능을 내세우고, 당대 최고 아이돌 스타들의 손에서 빛나기에 소유의 욕구를 불러 일으킨다.

저 흥미로움과 섹시함, 그리고 시대에 발맞춘다는 안도감을 얻기 위해 우리는 종종 몇 달치의 교통비나 아이티 어린이 수백 명에게 비상식량을 먹일 수 있는 돈을 지불하곤 한다.

그렇게 우리 생활에 들어온 기술적 가능성은 미디어학자 마셜 맥루한의 말마따나 "신체의 확장"으로 기능한다.

그러나 새로 생긴 시각과 팔다리, 때로는 언어와 감정 체계로서의 기술 상품들의 유효기간은 길지 않다. 부각되어 알려진 주력 기능이 몸에 막 익을 즈음이면 또다른 흥미거리들이 판매대에 놓인다. 그러면 또 그게 필요해 보인다. 기술과 정이 들 이유는 없다. 부품을 갈아 끼우는 만큼 개인도 진화할 것이라고 광고는 속삭인다.

기술이 사회에 선보이고 우리 몸에 접속해 문화의 일부를 구성한 후 다음 타자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이 기술 생산-소비의 메커니즘은 거의 자동적으로 보인다. 기술의 논리 안에 퇴보나 유예는 없다.

전진만이 있다. 기술이 사람과 문명에 복무한다는 공고한 상식은 기술의 속도전의 부작용들, 기술에 대한 피로감이나 가치판단의 무력화, 최신이 아닌 기술에 대한 선택권의 제한 등을 그야말로 부작용으로 치부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 모든 부작용을 무시해도 좋은 것일까? 부작용을 기술 생산-소비 메커니즘에 내재된 특정 요인에서 기인한 증상으로 본다면 문제는 부작용 자체가 아니라 누가 어떤 이유로 이 메커니즘을 운영하고 있는가,가 된다.

이는 기술 문화 전체에 대한 반전의 시선이다. 전문가들이 주도하는 기술 문화에 대한 문제 제기이기 때문이다. 이런 시선의 중요성은 작년 말 드디어 '쇄국 정책'이 풀린 아이폰의 사례에서 확인된 바 있다.

국내 이용자들의 요구는 일차적으로는 아이폰 자체에 대한 것이었지만, 그것은 국내 IT 산업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아이폰의 국내 출시를 막아온 '정책'에 대한 저항이기도 했다. 아이폰은 기술이 사회에 통용되는 과정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정치적 목적과 경제적 이해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임을 가시화했다.

이런 사회적 경험은 기술을 몸과 일상의 일부로 활용하는 이용자들의 권리이자, 나아가 기술-문화의 중요한 축으로서 기술에 대한 대중적 정보 공유와 논의를 촉발시키고 있다. 블랙베리와 아이폰의 열혈 이용자로 알려진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는 아이폰 출시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카페에 가입한 경험에 대해 이렇게 털어 놓았다.

"그들은 단지 아이폰 출시만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아이폰이 왜 출시되지 않는지를 궁금해 하다가 한국의 IT 산업정책의 문제점에 접근하게 된 상태였죠. 한국의 비싼 요금제도, 이동통신사들이 낡은 수익모델을 고집하느라 무선 인터넷망을 협소하게 설정해 소프트웨어산업이 위축되는 등의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카페는 뜨거웠습니다."

미디어학자 로저 실버스톤은 <왜 미디어를 연구하는가?>라는 질문에 "미디어가 우리에게 세계를 이해하고 그 의미를 공유하는 능력을 다양하게 가지도록 하기 때문에, 그러한 능력에 대한 기여자로서의 미디어를 연구해야 한다"고 답한다. 그리고 미디어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단지 독립된 기계 장치나, 내재된 과학적 공식이 아닌 "정치경제적 과정"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는 모든 기술에 해당되는 일이다. 홍성욱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기술의 궤적은, 기술이 새롭게 열어주고 힘을 부여하는 사회 세력들과 동시에 그 기술 때문에 힘을 잃는 사회 세력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 그때그때 형성되는 불안정한 균형에 따라 불규칙하고 가지치기 식의 경로를 따른다"고 지적한다.(<욕망하는 테크놀로지>) 군사 기술로 고안된 아파넷이 인터넷이라는 대중적 통신수단으로 자리잡은 것이 한 예다.

일상 속 기술의 역사는 기술이 결코 공표된 명분에 복무하지 않으며, 따라서 그것이 만들어낼 현실을 예단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음을 증명한다. 19세기 후반 토머스 에디슨이 구술을 기록하고 재생하는 용도로 구상한 축음기는 결국 음악 미디어로 자리잡았는데, 이는 도시 중산 계급이 새로운 음악 소비층으로 떠오른 때문이었다.

한국에서 텔레비전은 도입 초기인 1960년대에는 공공장소에 설치되어 올림픽, 아폴로 11호 달착륙, 남북적십자회담 등에 대한 집단기억을 형성했다가, 이후 중산층의 필수품으로서 가정에 자리잡게 되었다.(임종수, '텔레비전의 사회문화사', <한국의 미디어 사회문화사>) 인터넷을 통한 MP3 다운로드와 스트리밍 서비스가 앨범을 사라지게 했고 음원 문화와 '후크송'을 낳았다는 사실은 기술이 문화적 가치 기준과 정서에까지 개입함을 알 수 있는 가까운 사례다.

여성을 가사 노동에서 해방시킨다던 각종 기술들이 대중화된 후에도 평균가사노동 시간은 줄지 않았다는 미국의 연구 결과도 있다. 이는 가사 기술이 가사 노동이 힘든 일이 아니라는 인식을 퍼뜨렸고, 그 결과에 대한 기대수준도 높였기 때문이다. 즉 세탁기가 청결을 대중화해, 빨래를 더 자주 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루스 코완, <과학기술과 가사노동>)

아이폰을 위시한 스마트폰들의 각축, DSLR 카메라의 대중화, 3D 영화 개봉에 이은 3D 텔레비전 출시와 로봇 산업의 확장 등 기술적 변동의 중심에 있는 한국사회에 이들은 참고할 만한 사례들이다. 저 다채롭고 혁신적인 시각과 팔다리, 언어와 감정 체계들을 잘 '장착'하려면 그것들이 태어나고 지금 여기에 도달한 연유, 또 그것들이 우리 삶과 사회에서 발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이용자 스스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준다. '문화'의 진화는 대화와 이해, 논의를 통해 일어나기 때문이다.

기술 비평은 이 다방향의 소통을 부추기는 촉매로서, 나아가 "양날의 칼인 기술적 가능성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실현하는 민주적 방법"(박영욱 연세대학교 미디어아트연구소 HK교수)으로서 활성화되어야 하는 사회적 과제다.

▶▶▶ '기계를 비평한다' 관련기사 ◀◀◀
▶ 반전의 시선… 쇄국정책 풀린 '아이폰' 사례로 가시화
▶ 아이폰으로 점친 가까운 미래… 7가지 이슈로 분석
▶ 새로운 이동성… "테크놀로지와 인간은 서로 규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