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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트렌드 그때 그때 달라요

[소설과 문화시장은 함께 간다]
30년대 영화 소설, 70년대 대하소설, 지금은 단편소설이 대세
최근 오락성과 작품성 겸비 '중간소설' 등장… 매체환경 변화 반영
  • 방상작가
<프랑켄슈타인>, <드라큘라>, <앵무새 죽이기>의 공통점은?

오락성과 작품성을 두루 겸비한 작품, 이른바 중간소설이다. 중간소설은 미국 문학평론가 피들러가 <경계를 넘고 간극을 좁히며>에서 순수문학과 대중문학 사이 경계 해체를 선언하며 만든 개념.

중간소설은 2차 대전 후 잡지와 텔레비전 보급으로 대중문화 수준이 높아지면서 순문학 작가가 통속잡지에 집필하면서부터 하나의 장르로 인식됐다.

대중성과 작품성에 대한 찬반논란이 뜨거운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도 일본 내에서 '중간소설'로 분류되는 경우가 있다.

최근 한국의 출판계 역시 대중소설과 순소설의 장르가 섞인 중간소설을 선보여 왔다. 권지예, 정이현, 이홍 등이 신작에서 추리 기법을 도입한 신작 장편소설을 발표했고, 박민규의 단편 <절(말 많을 절-한자 병용)>또한 무협지 형식을 빌려왔다.

  • 이홍작가
지난 주 출판사 새파란상상은 박상 작가의 야구소설 <말이 되냐>를 시작으로 '중간소설 시리즈'를 출간했다. 출판사 측은 "현대 문화는 이미 하이브리드 시대, 모든 것이 혼합되어 융합되는 시대에 들어섰다고 이야기한다. 세계 문학계는 주류 문학과 서브 장르 사이의 중간문학의 중요성을 주목하고 있다"라고 출간 배경을 설명했다.

중간소설이란 개념이 생소하게 들리지만, 사실 문화 시장과 소설의 변화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계간 <창작과비평> 2007년 여름호 특집 '한국 장편소설의 미래를 열자'에서 최원식 문학평론가는 "소설과 시장은 함께 간다. 시장의 문제가 소설의 발생, 발전에 관건적"이라고 말한다.

"소설, 특히 장편의 발달은 근대 이전 이후를 막론하고 시장의 규모와 대체로 평행을 이룹니다. 장편시대의 징후를 보여준 1930년대나 한국 자본의 규모가 커진 요즘, 장편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봐도 장편과 시장은 긴밀합니다."

1930년대 근대화 시대, 영화소설이 있었다면, 1970년대 신문연재 붐을 타고 대하소설이 주류로 떠올랐다. 최근에 700매 내외의 장편 소설 출간이 늘어난 것 역시 달라진 문화 시장을 반영한다. 매체환경에 따라 달라진 온 한국 소설의 모양새를 구경해보자.

70년대는 왜 대하소설 천국이 됐을까?

우선 각 시대별로 '붐'을 이룬 소설에는 어떤 게 있을까?

1930년대 영화붐을 타고 영화소설이 하나의 장르를 이뤘다. 영화소설은 말 그대로 영화를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써진 소설. 강현구 호서대 국문과 교수는 <영화소설의 시대별 고찰>에서 "영화소설은 영화의 부침과 그 궤를 같이 한다. 영화가 번성했던 1920-30년대, 1960년대, 2000년대에 영화소설도 활발하게 창작됐다"고 말한다.

1920년대 영화가 대표적인 대중문화산업으로 부상하자 이런 추세를 반영해 영화의 상상력과 기법을 수용한 영화소설이 창작된다. 국내 영화소설의 효시는 1926년 심훈의 <탈춤>. 이밖에도 1937년 동아일보에 연재된 <애련송>과 나운규의 <잘 있거라>, <아리랑>, 1939년 매일신보에 발표된 최금동의 <향수>까지 1920-30년대 24편의 영화소설이 발표되며 하나의 장르로 인식됐다.

1930년대 영화의 인기와 함께 영화소설이 등장했다면 1970-80년대 대하소설이 대세를 이뤘다. 오창은 문학평론가는 "황석영의 <장길산>, 김홍신의 <인간시장> 등 신문 연재소설이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고 이들 작품이 호흡이 긴 대하소설의 붐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1974년부터 84년까지 한국일보에 연재된 황석영의 <장길산>을 비롯해, 김주영의 <객주> (1979~1983년 서울신문 연재) 최명희의 <혼불>(1981년 <동아일보> 창간 60돌 기념 장편소설 공모에 제1부가 당선된 뒤 1988~1995년에 제2~5부의 잡지 연재를 거쳐 1996년 10권으로 완간) 등이 이 시기 신문을 거쳐 탄생한 대하소설들. 김홍신의 <인간시장>은 1980년, 주간한국에 <스물두살의 자서전>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시작했고, 이듬해 9월 제목을 <인간시장>이라고 고치고 책으로 펴냈다.

  • 김홍신작가(위), 황석영작가
대하소설, 연재소설이 당시 붐을 이룬 것은 시장과 정치적 환경 때문이다. 당시 신문 검열 때문에 연재소설은 역사소설이 주를 이뤘고 '궁중비화'와 같은 내용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신문과 소설이 대중문화의 절대 우위를 차지했던 환경 역시 작가들이 신문에 연재를 하는 배경이 됐다. 오창은 평론가는 "당시 어떤 작가가 어느 신문에 연재하느냐에 따라 구독에 영향을 미쳤을 정도였지만, 90년대 매력이 떨어지며 대하소설 연재 붐이 식었다"고 덧붙였다.

한국에서 단편이 대세인 이유

최근 인터넷 연재 붐을 타고 장편소설 출간이 늘었지만, 국내 문학계 대세는 단연 단편소설이다. 2000년대 이후 문학계에 도래했던 '장편소설 육성론'은 국내 문학계가 단편소설을 중심으로 구성됐다는 일종의 반증이었던 셈. 국내 작가들이 단편소설을 위주로 활동하는 것과 관련해 김연수 소설가는 "형식이 갖춰지면 어쨌든 그에 상응하는 내용이 마련되는 법"이라고 말한 바 있다.

"문예지들이 단편소설을 청탁하니까 소설가들은 단편소설만 쓰는 것이다. 말은 간단하지만, 뜻은 복잡하다. 한국의 문학제도가 단편소설 위주로 구성돼 있다는 뜻이다.(…)연재하지 않는다고 할 때 작가가 장편소설을 쓰면서 기대할 수 있는 수입은 같은 분량의 단편소설을 쓸 경우의 절반에 불과하다. 단편 위주로 형성된 한국문학제도가 바뀌지 않는 상황에서 한국작가들이 더 많은 장편소설을 쓰리라고 기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2007년, 창작과비평 특집, <그 입술에 아무리 귀를 기울여봐도>)

  • 김주영작가
왜 단편 위주 문학제도가 탄생했을까? 서영인 문학평론가는 <문학의 경계, 시장의 법칙>에서 "등단, 신인작가의 활동 기반과 국가적 지원체계, 문학상 제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기반과 구조에 의해 완성된 것"이라고 분석한다.

신춘문예나 잡지의 단편 소설 당선을 통해 등단하고 단편 중심의 문예지에 작품을 발표해 그 작품을 모아 소설집을 내는 관행, 주요 문학상이 단편으로 대상을 한정하고 있으며 문화예술위원회 지원 역시 단편에 치중되고 있는 현상은 자연스럽게 작가들이 단편 소설 집필에 집중하게 한다는 것.

서영인 문학평론가는 같은 글에서 "세계문학과의 교섭과 소통에 있어서도 서사보다는 문체나 이미지 같은 디테일에 치중하는 단편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2000년대 경장편소설

그렇다면 최근 한국소설은 어떤 모양새로 변하고 있을까? 황석영 소설가는 "세계적으로 소설이 차츰 짧아지고 있다"고 말한다.

  • 김이설작가
"우리 원고 매수로 천매 내외의 경장편과 그 절반쯤의 중편 정도가 하나의 흐름이 된 것은 그것이 단편의 압축적인 긴장감과 장편의 서사구조를 함께 지닐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창작과비평 2007년 여름호 특집, <전업의 고통으로 감당하는 문학의 본령>에서)

작품의 완성도와 별개로 실제 한국 출판시장에서도 이런 변화가 감지된다. 계간지<세계의 문학>은 2008년부터 경장편 시리즈를 소개하고, 이를 단행본으로 출간하고 있다. 단행본으로 출간된 김이설의 <나쁜피>는 계간지 연재 당시 491매, 이홍의 <성탄피크닉>은 650매 정도. 이어 출간을 기다리고 있는 황정은의 <백의 그림자>와 하재영의 <스캔들> 역시 410매 분량으로 잡지에 실렸다.

90년대 국내에도 장르문학이 출현했고 2000년대 본격문학에서도 장르적 코드를 차용한 배경에 문화 환경 변화가 큰 변수로 작용했다. 정영훈 문학평론가는 <장르문학과 본격문학이라는 시빗거리>에서 90년대 장르문학 출현에 대해 "컴퓨터 통신과 인터넷 발달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1990년대 초 하이텔 동호회를 비롯한 통신문학을 통해 그 동안 보지 못했던 많은 장르들이 양산되었고, 여기서 이영도와 듀나 같은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독자들에게 알리게 되었으며, 이들 동호회를 매개로 장르문학의 독자들이 팬덤을 형성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최근 본격문학작품에서도 종종 장르 소설의 문법을 차용하는 경우가 있다. 박진 문학평론가는 <장르들과 접속하는 문학의 스펙트럼>에서 "천명관의 <프랭크와 나>는 누아르 장르의 관습을, 박민규의 <절>은 무협소설의 관습을 끌어들여 이 같은 작업을 한다.

박성원이 <긴급피난-우리는 달려간다 이상한 나라로 2>에서 보여준 이성의 광기와 판단 불능의 딜레마는 영화 <소우>와 <큐브> 시리즈 등 스릴러물에 잠재된 장르적 가능성의 또 다른 버전"이라고 설명했다.

다시 최근 각광받는 '중간소설'로 돌아가자. 순문학과 대중문학 경계에 선 중간소설은 한편으로 순문학 작품제작의 저속화를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더구나 오늘날 한국 출판계처럼 순문학과 중간문학의 경계가 엄격하게 구별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대중문학을 중간문학, 혹은 순문학으로 취급하는 폐단도 일어난다.

고봉준 문학평론가는 "순수문학이라고 불렀던 소설들이 흥미를 준다고 하기보다는 진지한 면이 있고, 대중문학은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는 데 초점을 둔다. 이 두 특징이 결합된 중간소설은 이 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메커니즘인 자본의 논리가 문학에 결합될 때 나오는 특징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황석영 작가가 '세계문학의 대세'라고 말한 경장편 시리즈 역시 마찬가지. 오창은 문학평론가는 "경장편 소설이 대세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최근 영화적 감각의 소설과 짧은 호흡의 문장, 과거에 비해 적은 분량의 소설이 많이 출간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경장편 소설이 모두 문학적으로 높은 성취를 이룬 작품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 고봉준 문학평론가 역시 "코맥 매카시와 주제 사라마구 등 한국에서 인기를 얻은 서구 작가들의 작품은 대부분 장편"이라고 덧붙였다.

"근대 이후는 물론이고 전근대에도 그래요. 장바닥에 떠도는 유언비어들이 소설의 원시적 형태이니 소설은 시장에서 태어난 거지요."

문학평론가 최원식 씨가 2007년 <창작과 비평> 대담에서 나눈 대화의 일부분이다. 모든 소설은 시대의 환경을 반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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