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갤러리] 윤정미 개인전 <핑크 & 블루 프로젝트 II>

예린이와 예린이의 핑크색 물건들_(2005)과_예린이와 예린이의 핑크색 물건들(2009)
당신이 고른 색이 당신을 말해준다, 특히 당신의 성(gender)을.

윤정미 작가가 2005년부터 해온 '핑크 & 블루 프로젝트'의 가설이다. 시작은 유난히 분홍색에 집착하는 딸이었다.

여자아이 용은 분홍색, 남자아이 용은 파란색으로 구분하는 아동용품점의 질서는 일상에 얼마나 어떻게 침투해 있을까, 라는 궁금증이 작가를 아이들의 방으로 이끌었다.

여자아이의 방에서 분홍색 물건을, 남자아이의 방에서 파란색 물건을 골라냈다. 그렇게 펼쳐놓은 방의 풍경은 마치 연출사진처럼 온통 붉고 푸르렀다.

그리고 3~4년 후 작가는 아이들을 다시 찾아갔다. 부모의 판단과 사회적 관습에 취약한 어린 시절을 지나 그들의 취향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핑크 & 블루 프로젝트 II>에서는 이 후속 작업을 예전 사진과 나란히 전시한다.

예찬이와 예찬이의 파란색 물건들(2005)과 예찬이와 예찬이의 파란색 물건들(2009)
전체적인 인상은 여전히 붉고 푸르다. 예린이의 색감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더 많은 분홍색 물건들 속에 폭 파묻혀 있다.(<예린이와 예린이의 핑크색 물건들>) 예찬이와 토마스 역시 파란색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예찬이와 예찬이의 파란색 물건들>, <토마스와 토마스의 파란색 물건들>) 어린 시절 형성된 가치관은 그만큼 굳세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마이아는 분홍색과 파란색, 간간히 섞여 있는 보라색 사이에서 색에 대한 풍부한 식견을 자랑한다.(<마이아와 마이아의 핑크 & 파란색 물건들>) 자주성 역시 인간의 본성 중 하나다.

아예 자신의 취향을 작가의 의도에 가두기를 거부한 아이들도 나타났다. 스티브의 물건들 중 압도적인 범주는 스포츠용품이다. 이제 겨우 '색'만으로는 스티브의 삶을 설명할 수 없다.(<스티브와 스티브의 스포츠 콜렉션>) 로라는 작가가 시키는대로 방을 어지르고 싶지 않았다. 다만 침대에 걸터앉은 모습이 가장 자신답다고 생각했다.(<로라방의 침대에 걸터앉은 로라>)

이렇게 작가의 가설은 대체로 증명되었으되, 때로는 수정되고, 때로는 반대에 부딪히며 또다른 질문을 낳았다. 그 과정을 솔직히 펼쳐놓았기에 보는 이마다 제각각 결론을 고르게 만든다. 당신이 고른 메시지가 또한 당신을 말해줄지 모른다.

전시는 다음달 5일까지 서울 종로구 팔판동에 위치한 갤러리인에서 열린다. 02-732-4677~8.

토마스와 토마스의 파란색 물건들(2006)과 토마스와 토마스의 파란색 물건들(2009)

마이아와 마이아의 핑크색 물건들(2006)과 마이아와 마이아의 핑크 & 파란색 물건들(2009)
스티브와 스티브의 파란색 물건들(2006)과 스티브와 스티브의 스포츠 컬렉션(2009)
로라와 로라의 핑크 & 보라색 물건들(2006)과 로라방의 침대에 걸터앉은 로라(2009)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