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인권 시계는 반대로 가나]여성,장애인, 이주노동자 등 보여 주며 인식개선 계기 마련

영화 '다섯 개의 시선'
1,3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역대 관객 동원 순위 최고 등극이 확실시되는 <아바타>는 여러 모로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처음에는 자연에 대한 인간 문명의 무분별한 개발이 가져올 위기를 풍자한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었지만, 나중에는 다문화 사회 속에서의 사회통합에 대한 알레고리라는 해석 등이 눈길을 끌었다.

나비족은 우리와 다른 타자인 동시에 우리 사회 안에 공존하는 다른 계층의 이주민이라는 해석도 흥미롭다.

그중 주인공인 제이크를 장애인의 관점에서 본 해석은 나와 타자, 혹은 인간과 자연이라는 이분법에서도 배제된 소수자의 처지를 한 번 더 돌아보게 한다.

방귀자 장애인문화진흥회 회장은 제이크가 꿈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은 이유를 '장애의 몸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유추한다. 그래서 영화 속 제이크는 인간과 나비족 사이에 낀 경계인의 처지다.

영화 '보이 A'
현실의 장애인들도 제이크와 비슷한 처지다. 장애인에 대한 처우와 인식이 비장애인의 사회에서 결국 바뀌지 못하는 것은 이들에 대한 무관심과 그로 인한 무지의 결과다. 비장애인들에게 장애인은 단순한 사회적 약자이고 도와줘야 할 대상이다. '함께 사는 사람들'이라는 구성원으로서의 공동체 의식이 없다. 무엇보다 그런 생각을 하게 할 만한 계기가 없다.

인권영화는 그런 인식 개선을 위한 좋은 계기가 된다. 현재 국내에 존재하는 인권영화 관련 단체 및 행사들은 얼마나 많은 인권의 문제들이 우리 사회에 난립해있는가를 보여준다. 여성과 장애인, 청소년 성평등과 이주노동자 등 익숙한 인권 담론의 대상들을 비롯해 북한 인권과 양심적 병역거부와 같은 민감한 화두들도 현존하는 인권영화제와 관련 단체의 축을 이루고 있다.

<여섯 개의 시선>(2003)에 이어 <다섯 개의 시선>(2005) 등 국가인권위원회가 '시선' 시리즈로 기획˙제작한 옴니버스 인권영화에는 여러 명의 감독이 참여하며 우리 사회의 인권 감수성을 높이는 데 일조했다. 외모지상주의 사회의 폭력적 판단 기준, 지나친 교육열의 희생양인 아동, 탈북 청소년, 장애인, 비정규직, 중국 동포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무관심과 일상화된 차별 문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다루며 인권 문제를 일반관객과 가깝게 했다는 평가를 얻었다.

이후 등장한 인권영화는 다양함보다는 특정 분야에 제한을 두고 그 안에서 파생될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조망해왔다. 국가인권위원회의 네 번째 극영화 프로젝트 <시선 1318>(2008)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청소년 인권을 다룬다. 그동안 다른 소수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았지만, 한국의 교육 환경에서는 사각지대에 놓인 청소년 인권 문제는 영화를 통해 주의 환기의 목적을 충실히 이행했다.

죽은 자나 살인자의 인권도 생각해보자는 제안도 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2004)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와 민간조사관, 공무원 출신 조사관들이 함께 의문사를 규명하는 과정을 다루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지 되물어본다. <보이 A>(2007)는 성인이 된 소년범이 석방된 후 재사회화하는 과정을 그렸다.

영화 '어둠의 아이들'
세상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던 10살에 입소해 14년을 보낸 소년은 24살인 현재에도 10살 그대로의 순진함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살인자라는 주홍글씨는 여간해서는 지워지지 않는다. 영화는 결국 한 번 실수한 범죄자를 아무런 차별없이 포용할 수 있겠냐고 관객의 양심에 직접 물으며 경종을 울린다.

3월 개봉을 앞둔 사카모토 준지의 <어둠의 아이들>은 한국에서 방영 중인 아동 성폭력 공익광고를 떠올리게 한다. 재일교포 소설가 양석일이 태국에서 실제 일어나고 있는 소아성학대와 아동인신매매의 현실을 섬뜩한 필치로 그려낸 이 문제작은 오늘날 아이들이 처한 비극을 관객들과 대면시킴으로써 아동 인권 보호의 필요성을 재차 환기시킨다.

이처럼 '인권영화' 혹은 인권을 다룬 영화는 장르 내에서도 약자의 처지에 처해 있었다. 머리로는 알지만 '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이성적 반응이 심정적 동요로 이어지는 메커니즘이 형성되기 어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언제든 인권 침해의 당사자가 될 수 있는 세상은 인권 문제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가속시킬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의 경우가 좋은 예다. 비록 의사 표현의 자유를 가졌지만, 그것이 허위사실 유포나 민심을 호도한다는 의혹을 받을 때 범죄자의 올가미에 걸릴 수 있는 세상이다. 가수 신해철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축하하는 조롱의 발언을 했다가 검찰의 조사를 받기도 했다. 국가보안법이라는 무소불위의 '빨갱이법'이 여전히 건재한 까닭이다.

지난 인디포럼 월례비행의 상영작이었던 홍형숙 감독의 <경계도시> 시리즈는 21세기에 접어든 대한민국에도 레드 컴플렉스는 여전히 불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아무런 이념의 고민 없이 살지만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국가보안법의 엄정한 잣대 앞에서 모호한 정체성을 가졌던 송두율 교수는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몇 달 동안 숱한 고난을 겪어야 했다.

영화 '시선 1318'
학문과 사상의 자유를 가진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의 관용은 허상일 뿐이었다. '경계인'을 포용할 수 없었던 사회는 끊임없이 양자택일을 강요한 끝에 결국 만신창이가 된 지식인을 풀어주었다.

<경계도시2>의 특별시사회를 마치고 나온 김정헌 현 문화예술위원장은 "송두율 교수와 지금의 내 모습이 겹치는 부분이 너무 많아 여러 생각이 들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 위원장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일방적인 부당 해임에 대해 법적 투쟁을 벌이다 복직된 바 있다. 두 사람의 경우는 정부의 의사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은 언제든 쳐내려는 획일성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인권은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꼭 지키자'라는 말은 공허하게 들린다. 인권을 가진 측과 침해하는 측의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권은 모호한 이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의 이야기다. 동시에 나의 이야기이며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 한국인권 시계는 반대로 가나 ◀◀◀
▶ 시대착오적 인권 침해에 문화예술계 화났다
▶ 스크린에 투영된 우리의 인권, 뒤돌아보니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