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의 음식예찬]

'봄이라 입맛을 잃은 당신께 맛을 찾아 드립니다.'

요리사, 푸드스타일리스트, 요리연구가의 말이 아니다. 글로 밥을 버는 사람, 작가들의 말이다. 마른 체형, 움푹 파인 볼, 음식보다 술과 담배에 익숙한 입술. 도통 식도락과는 인연이 없을 듯한 작가들 중 사실 알려진 미식가들이 많다.

오죽하면 작가 씨는 "먹지 않는 시간은 시간이 아니다"라고 했을까. 음식은 작품의 중요한 소재이기도 하다. 작가들의 음식 예찬, 그들의 작품과 말에서 맛을 찾아 보자.

'입안 가득 퍼지는 쑥밥의 향'

음식이 특별해지는 것은 그 속에 추억이 담길 때부터다. 작가에게 봄 음식은 누가 뭐래도 쑥밥과 푸성귀에 싸먹는 쌈밥일 터다. 그가 열아홉 살 절집과 인연을 맺으면서 처음 먹어 본 음식이다.

황석영
'내가 절에서 난생 처음 먹어본 음식이라면 쑥을 넣어 지은 밥과 엉겅퀴로 끓인 된장국이다. 쑥밥은 그냥 산야에 널린 쑥을 뜯어다가 콩나물밥이나 무밥처럼 넣어 지은 밥에 양념장을 쳐서 비벼 먹는다. 국도 역시 들판에 지천인 엉겅퀴를 캐다가 냉잇국처럼 된장과 들깨를 넣고 한소끔 끓일 뿐인데, 입 안에 싱싱한 풀 향기가 가득 찬다.'

푸른 물이 든 쑥밥의 매캐한 향내가 그려지는가. 입맛을 돋우었다면 황 작가가 그 시절 절간에서 "특히 맛있다고 기억하는" 쌈밥을 구경해 보자.

'너푼너푼하게 잘 자란 곰취 잎에 된장쌈을 해서 먹는 맛은 그 싱그러움이며 쌉쌀한 뒷맛이 그만이다. 나중에 백두산엘 갔다가 양념장을 쳐서 싸먹던 야생 곰취의 맛은 잊을 수가 없다. 아예 밥을 참기름과 깨소금과 잘 버무려서 한 입만큼의 주먹밥을 만들어 살짝 데친 곰취 잎으로 싸서 김밥처럼 한 덩이씩 먹는 맛도 좋다.'

봄날의 맛을 느낀 그곳은 '칠북이란 작은 면에 갔다가 야산에 자리 잡은 자그마한 절집'이라고 하니 이번 봄에 찾아도 좋겠다. 곰취 잎은 훗날 백두산에서 다시 먹은 맛을 잊을 수가 없다고 하니, 참기름 깨소금과 버무린 주먹밥을 들고 북한산이라도 타는 것이 어떤지.

'봄나물의 왕은 미나리나물'

봄은 봄나물을 먹을 때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작가 씨는 봄나물의 왕으로 미나리나물을 꼽는다.

'미나리나물은 봄나물 중에 왕 같다. 미나리나물 오른 날은 미나리나물만으로 밥상이 고급 같다. 그렇지만 미나리 혼자 있으면 빛이 덜 난다. 그 옆에는 달룽개장(달래간장)이 있어야 하고, 국은 이왕이면 쑥국이 더 좋다. 이 세 가지가 함께 오른 밥상은 신춘맞이 스페셜 밥상 되겠다. 그리고 밥상머리 옆 앉은뱅이책상 위 소주병 화병일망정 버들개지 가지라도 한두 가지 꽂혀 있다면.'

작가는 "찔레꽃 향기도 나지 않고 뻐꾸기 소리도 나지 않는 쌀밥이나 솔(부추)김치를 먹는 일은, 지렁이 울음소리 들리지 않는 죽순을 먹는 일은 배릴 채우는 일종의 단순 '작업'일 뿐"이라고 말한다. 때문에 봄나물도 퓨전식은 사양한다.

봄나물을 캐는 데도 정석이 있다. 쓴나물 옆에 미나리가 나면 쓴나물 안 캐고 미나리부터 캔다. 달래는 조금만 캐도 된다. 아무리 많이 캐온 것 같아도 데쳐놓고 보면 언제나 한 주먹인 미나리와 달리, 달래는 간장에 양념으로 조금 썰어 넣으면 쓸모가 끝나니까.

'요즘처럼 그걸(달래) 따로 무쳐 먹을 줄도, 그것으로 전을 부쳐 먹을 줄도 몰랐다. 그래서 또 나는 요즘 소위 말하는 퓨전 음식들에 잘 적응이 안 된다. 샐러드라는 것도 그렇다. 그러고 싶으니까들 그러는 것이겠지만, 나 같은 촌사람이 볼 때는 그런 것도 그저 왠지 요망스럽게 느껴진다. 한 가지 것으로 그냥 한 가지만 해먹고 말지 뭘 저래싼다냐, 싶어서.'

공선옥
'썩썩 비빈 겉절이'

'봄 맛' 하면 겉절이를 빼 놓을 수 없다. 노란 봄배추를 넣어 참기름과 고춧가루에 비빈 겉절이 비빔밥은 잃은 입맛을 되살려 준다. 소설가 씨는 겉절이 비빔밥 만드는 과정을 이렇게 말한다.

'숟갈을 두 개씩 양손에 나눠 들고 '썩썩' 비빈다. 이 '썩썩'이 중요한 점이다. 황소가 풀을 먹을 때처럼, 싸리 빗자루로 마당을 쓸 때처럼 힘 있고 숙달된 자세, 힘의 낭비가 없되 힘있게, 숨이 죽는 동안 삼투압 작용으로 겉절이에서 나온 물이 비비는 일을 쉽게 한다.(…) 향긋한 맛. 이건 참기름의 공로다. 산뜻한 질감. 이건 배추의 공덕이다. 혀를 바쁘게 하는 양감. 이건 밥의 은혜다.(…) 대부분은 과식을 한다.'

맛에 관해서라면 일가견이 있는 작가는 아직도 고향 상주를 찾을 때면 제일 먼저 소싯적 그의 입맛을 사로잡았던 몇몇 음식점에 들른다는 후문이다. 상주시 지천동에 우리밀 칼국수로 유명한 한 식당과 시래기 해장국이 일품인 남천동의 식당은 상주에 가면 반드시 들르는 단골집. 시내 중심부의 막걸리집들이 파는 은잣골막걸리와 배추전도 빼놓을 수 없다.

'교정지를 넘기고 나자 고향에서 먹고 마셨던 몇 가지 음식이 못 견디게 먹고 싶어졌다. 혼자 만들어 먹거나 근처에서 찾아서 먹을 수 없는 건 아니지만 먹고 싶은 마음이 일게 한 바로 그 맛은 나지 않을 게 분명했다. 뭘 맛본다는 것, 맛을 기억하며 소요(逍遙)하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이고 방심한 상태에 스스로를 처하게 하는 것이다.'

작가의 <소풍>의 일부분이다. 맛을 본다는 것은 기억을 더듬는 행위다. 맛있는 음식에는 즐거움의 활기, 땅의 기운, 나누어 먹는 사람과의 관계가 담겨 있다. 그것이 맛의 기억을 최상으로 만든다. 나른한 봄날, 입맛을 잃었다면, 그 옛날 함께 먹던 음식을 더듬어 보자.

(참고 서적: <의 맛있는 세상> 지음, 향연 펴냄/ <행복한 만찬> 지음, 달 펴냄/ <소풍> 지음, 창비 펴냄)

소설 속 달라진 음식 트렌드

소설은 생활사를 반영한다. 소설 속 등장하는 음식은 달라진 우리의 식문화를 보여준다.

소설 <식빵 굽는 시간>, <국자 이야기>, <혀>를 쓴 조경란 작가는 요리학원까지 다니면서 서양요리를 배웠다. 여성지에 레시피를 곁들인 음식이야기를 연재했을 정도로 프로 수준이라고. <뱀장어 스튜>, <꽃게무덤>을 발표한 권지예 작가도 프랑스 유학 시절 8년간 요리전집을 끼고 살았을 정도로 요리하기를 좋아한다.

음식 모티프를 작품에 즐겨 사용하는 것은 조경란 작가와 공통점. 작가는 얼마 전 연희문학창작촌에서 3개월간 작업한 적이 있다. 직접 요리를 하길 좋아하는 그녀를 배려해 창작촌에서 개인 주방이 딸린 집필실을 배정해 주었다는 후문이다.

성석제
소설 제목에 음식 이름을 넣거나 소개로 자주 등장하는 것도 최근의 흐름이다. <마테의 맛>(정한아), <부엌>(오수연), <피스타치오를 먹는 여자>(류소영)를 비롯해 <숨쉬는 새우깡>(최재경), <된장>(문순태), <토란>(이현수), <짬뽕과 소주의 힘>(김종광), <랍스터를 먹는 시간>(방현석), <맛동산 리시브>(양선미), <홍합>(한창훈), <모닝커피>(원재훈), <치즈>(이명인), <된장 끓이는 여자>(한혜영), <코카콜라 애인>(윤대녕), <검은 설탕이 녹는 동안>(전경린) <단팥빵>(한수영) <일요일 스키야키식당>(배수아) 등 일일이 꼽을 수 없을 정도. 음식이 소설 소재로 직접 등장하기도 하지만 작품의 이미지를 음식에 비유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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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주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