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부활을 꿈꾸다] '개방형 IPTV' 전략발표, '3D TV 원년' 준비 분주시청자 눈길 사로잡을 '킬러 콘텐츠' 만들기 합종연횡

지난 23일 열린 쿡TV 오픈 서비스 협약식
거실의 중심에서 저녁마다 가족들의 모임을 주선하던 TV만의 위용은 사라진 지 오래다.

언제 어디서나 TV 프로그램을 볼 수 있고 다른 기능까지 더해진 가볍고 영민한 미디어들에 떠밀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내용을 전할 줄밖에 모르는 TV의 우직함은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제 아무리 화질을 개선하고 외양을 단장해도, TV는 TV였다. IPTV의 등장도 상황을 바꾸지 못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 나타난 산업의 움직임은 'TV의 부활'을 향해 있다. 국내 IPTV 업체들은 본격적으로 PC와 TV의 경계를 허무는 '개방형 IPTV' 전략을 발표했고, '3D TV 원년'을 준비하느라 전세계 관련 산업이 분주하다.

이들이 밝히는 청사진을 모아 보면, TV의 앞날은 창창하다. TV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보여주겠다는 기세다. 게다가 <아바타> 상영관을 거실에 옮겨 놓을 수 있다니! 다시 TV의 시대가 오는 걸까. TV는 뒷방으로 물러난 바보상자의 오명을 벗고 다시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삼성전자가 출시한 3D LED TV
앱스토어 통해 '허브'의 자리 노리는 TV

지난달 23일 KT는 쿡TV의 개방형 IPTV 전략을 밝혔다. 올해 인터넷의 쌍방향성을 활용한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도입한다는 내용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개방형 CUG(Closed User Group 폐쇄 이용자 그룹), 오픈 커머스 서비스 등이 제공되어 TV를 통해 채팅을 하거나 정보를 교환하고 거래를 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중 KT 측이 가장 내세우고 있는 서비스는 12월에 시작할 예정인 앱스토어다. 아이폰의 앱스토어를 TV로 옮겨놓았다고 생각하면 된다. IPTV 이용자들이 스스로 콘텐츠를 업로드, 다운로드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으로, IPTV가 활성화되지 못한 요인 중 하나인 콘텐츠 부족을 해결하려는 한 방안이기도 하다. 방송통신위원회에 등록한 사업자라면 지금까지 적용했던 쿡TV 채널사용사업자(PP) 심사 기준에 부합하지 않더라도 채널을 이용할 수 있게 되며, 개인의 콘텐츠는 여러 개를 모아 하나의 채널을 구성하는 식으로 송출된다.

KT 측은 이 서비스가 콘텐츠 산업 전체의 활성화로 이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미디어 채널의 진입장벽을 낮춤으로써, 중소사업자는 물론 1인 개발자들의 콘텐츠 기획 제작 의욕을 고취시킬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런 의미로 벤처기업협회, 인터넷기업협회, 한국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 한국여성벤처협회,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방송채널사용사업협회 등과 '오픈 IPTV 활성화를 위한 협약'을 체결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산학협력단 서정원 팀장은 "학교 쪽에서 보유하고 있는 학생들의 콘텐츠를 유통시킬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KT 홍보팀 박승근 차장은 "실업난이 심각한데, 누구나 아이디어 하나로 수익을 낼 수 있는 산업적 토대로 기능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25일 풀HD LED TV를 출시했다
'앱스토어'가 활성화되면 바야흐로 TV로 대표되었던 매스미디어와 인터넷을 기반으로 형성된 1인 미디어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광경이 펼쳐질지 모른다. 이를 통해 IPTV는 콘텐츠와 콘텐츠 산업의 '허브' 라는 정체성을 차지하고 싶어한다.

앱스토어 효과를 노리는 것은 IPTV만이 아니다. 삼성전자도 자사 TV에서 구동할 수 있는 다양한 응용 프로그램을 다운받을 수 있는 '삼성 앱스'를 운영할 뜻을 밝혔다. 9일 국내 개발자들을 대상으로 사업 설명회를 갖는다.

삼성전자가 새삼스럽게 TV용 애플리케이션에 관심을 갖는 것은 애플사에 대한 대응전략이라는 해석이 있다. 애플리케이션 시장을 활성화하며 아이튠스와 아이폰, 아이패드를 성공적으로 출시해 미디어 산업의 최강자로 떠오른 애플사가 곧 TV를 내놓을 것이라는 예측이 무성하다. 삼성 앱스는 이에 대비해 TV는 물론, 스마트폰과 PC 등 삼성전자의 여러 플랫폼에 호환될 수 있는 콘텐츠를 갖추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아바타> 상영관이 거실로, 3D TV

기기의 진화는 TV로 볼 수 있는 것의 범위를 확장시킬 것이다. 드디어 3D TV의 시대가 도래했다. 지난달 25일 삼성전자가 3D LED TV를 출시한 데 이어 이달 말에는 LG전자가 신제품을 내놓는다. 올 여름까지 소니와 파나소닉 등 일본 업체가 본격적으로 3D TV 시장에 뛰어든다.

삼성전자 TV
영화 <아바타>의 성공이 3D 영상에 대한 소비자의 욕구를 불러 일으키는 점을 검증했고, 6월 열리는 남아공월드컵은 3D TV 수요가 증가할 분기점이라고 산업계는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솔깃한 콘텐츠가 없다면 제아무리 뛰어난 TV라도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다. TV 제조업체들이 기기 출시와 더불어 콘텐츠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그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할리우드 영화제작사 드림웍스와 손을 잡았고 게임제작업체를 비롯한 여러 콘텐츠 업체와의 제휴를 추진하고 있다.

LG전자는 4월에 정식 오픈할 예정으로 국내에서 유일하게 3D 채널을 시험방송하고 있는 스카이라이프와 제휴를 맺었다. 스카이라이프가 자체 제작하는 3D 콘텐츠에 투자자로 참여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당장은 3D 콘텐츠가 충분하게 확보되어 있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얼리어답터일수록 3D 영상에 대한 목마름을 해소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3D TV에 장착된 2D 영상을 3D로 변환하는 기능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아무래도 이는 궁여지책이다.

소니의 3D TV 출시에 관심이 모아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영화, 게임제작사를 계열사로 거느리고 있어 콘텐츠 확보에 가장 유리한 입장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른 TV 제조업체와는 달리 3D 촬영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3D TV의 기술력도 그만큼 뛰어날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남아공월드컵도 소니의 3D 기술로 중계된다. 소니는 현재 디스커버리 커뮤니케이션, 아이맥스 등의 업체와 2011년 미국을 대상으로 한 24시간 3D 방송 채널을 설립할 것을 협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LG전자가 CGV에서 진행한 3D TV 마케팅
새로운 TV 시대의 새로운 콘텐츠 전략

기존 방송사와 제작사들 역시 새 TV에 담을 새 콘텐츠를 준비하느라 바쁘다. 몇몇 지상파 방송사들이 올해 안에 완성할 3D 프로젝트를 구체화했다. 우선 올 10월 서울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담 기간에 모든 지상파 방송사들이 참여하는 3D TV 시험방송이 시작된다. 방송사들은 3D 촬영 장비를 갖추고 기술을 도입, 제작 인력을 교육 재조정하는 중이다.

EBS는 올해 안에만 총 3개의 3D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4월에 방송되는 다큐멘터리 <한반도의 매머드>는 이후 3D로 변환해 극장 개봉을 추진할 예정이다. 3D로 제작된 <한반도의 공룡 2>는 12월에 먼저 극장 개봉한 후 내년에 방송한다. 그리고 올 여름에 촬영해 연말까지 완성할 예정으로 3D 실사 다큐멘터리 <앙코르와트>를 제작한다. 이 프로그램을 연출하는 김유열 CP는 "처음으로 야외에서 3D 카메라 촬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미 여러 편의 3D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기술력과 경험이 바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유열 CP는 캄보디아의 고대 유적인 앙코르와트는 규모가 웅대하고 다양한 층을 가지고 있어 3D 영상으로 표현하기에 적합하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앙코르왕조의 흥망성쇠를 내용으로 한 스펙터클한 장면들이 포함될 예정.

드라마제작사인 초록뱀미디어는 얼마전 3D 드라마 제작 계획을 밝혔다. 3D 콘텐츠 전문업체인 리얼스코프와 손잡고 만드는 이 드라마의 장르는 미스터리인 것으로 알려졌다. 초록뱀미디어의 박성수 PD는 "3D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멜로 등 다른 장르보다 미스터리가 적합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EBS 한반도의 매머드
이렇게 3D 콘텐츠 제작이 시작되고 있지만, 제작 환경이 안정되기까지는 시간이 좀더 필요할 것 같다. 김유열 CP는 "제작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3D 콘텐츠 제작에는 촬영 장비나 기술뿐 아니라 효율적인 제작 노하우나 수익 구조, 전문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초록뱀미디어의 박성수 PD의 말처럼 "지금 3D 콘텐츠 제작은 노하우를 쌓는 과정"일 수밖에 없다. 독립프로덕션 허브넷의 김병민 PD는 "지속적으로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수익 모델을 만드는 것이 선결과제"라고 말했다.

몇몇 제작사들이 '3D 입체콘텐츠 제작자협회'를 꾸리기 위해 준비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서태지와 빅뱅의 콘서트를 3D로 제작한 오션망고의 윤차성 마케팅 이사는 "우선 실사 3D 촬영 역량을 갖춘 제작사들끼리 협회 발족을 의논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3D 콘텐츠 산업의 형식과 기술, 정책과 제작 비용 등을 정리해 나가기 위해서다. 좋은 3D 콘텐츠가 우리집에 오는 길은 이렇게 멀고 험하다.

TV 시대를 향한 기대에서 빠진 것

시중에는 새로운 TV 시대에 대한 기대가 크다. 똑똑한 TV와 함께 우리가 거실에서 큰 화면을 통해 할 수 있는 일은 분명히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덥썩 이 트렌드에 동참하기 전에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은, 새로운 TV는 우리의 생활방식까지 바꿀지 모른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3D TV를 마련하려고 계획 중인 당신은 매번 안경 끼고 TV 볼 준비가 되었느냐는 말이다.

3D TV에 대한 루머와 진실

3D TV에 대한 기대가 많은 만큼, 루머도 많다. 그중 논쟁이 된 몇 가지 이슈를 정리해 봤다.

1. 3D TV는 건강에 나쁘다?

UC 버클리 대학의 마틴 뱅크스 교수는 3D 영상을 보는 것이 두통과 피로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3D 영상이 현실에서와는 다른 시각적 조절 능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아직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반박도 만만치 않다. 삼성전자 홍보팀의 김세훈 과장은 "3D 영상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3D 영상에 대한 몰입도가 높기 때문에 피로를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젊은이들보다 집중력이 떨어지는 노인이나 어린이의 경우 3D 영상을 훨씬 더 편안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는 것.

2. 3D TV는 스포츠 중계에 적합하다?

역동적인 움직임이 주 내용이 되는 스포츠 프로그램이 3D TV의 가장 좋은 파트너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 강하다. ESPN 등 스포츠 전문채널은 3D 송출 시스템을 가장 발 빠르게 도입했고, 오는 4월 3D 채널 정식 오픈을 앞둔 영국 Sky도 지난 1월 한 술집에서 축구팀 아스날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간의 경기를 3D로 방송하는 시사회를 열었다.

하지만 호주의 주간지 헤럴드 선의 그렉 톰은 다른 견해를 내놓았다. 진정한 스포츠 팬이라면 오히려 2D 영상을 선호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의 경험에 의하면, 3D 영상으로 보는 축구 경기에서는 마치 오려 붙인 것처럼 선수가 동동 떠보였고, 선수의 움직임에 집중하게 되어 전체 경기의 흐름을 보는 것은 오히려 불편했다는 것이다. "3D TV는 아무래도 스포츠 팬보다는 게이머들을 위한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3. 3D TV를 시청할 때 적정 거리는?

3D 영화에는 입체가 가장 정확하고 편안하게 보이는 거리가 있다는데, 3D TV도 마찬가지일까? 인터넷에는 50인치 3D TV는 3m 이상의 거리에서 보라는 충고가 돌아다닌다. 그렇다면 3m 길이가 나오지 않는 집에 50인치짜리 3D TV는 언감생심일까?

이 질문에 대해서 국내 3D TV 제조업체들은 오히려 "2m 내에서 보라"는 답을 내놓았다. LG전자 홍보팀의 박영신 대리는 "2006년 일본에서 열린 3D 관련 컨소시엄에서 발표된 '안전 가이드라인'에는 2m 이내에서 보라고 적혀 있다"고 전해주었고, 삼성전자 홍보팀의 김세훈 과장은 "1.5~2m 정도 거리가 적당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꼭 3D TV에 해당되는 사항이 아니다. 김세훈 과장은 "3D TV는 50인치 내외로 출시되는 것이 보편적인데, 이 정도 크기 TV를 보기에 적당한 거리"라고 말했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