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활에 빠진 대중문화] 작가·화가·배우의 사생활 담은 책·영화

사생활의 노출은 미디어뿐만 아니라 문학, 영화, 미술계에도 존재한다. 작가의 사생활을 뒤쫓는 작업부터 인간과 사회의 양면성을 꼬집는 훔쳐보기(관음증)의 문제까지. 사생활에 대한 고찰은 최근 대중문화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사생활 속 작가주의

"처음에는 독도를 그렸다. 정확하게 말하면, 독도와 그 하늘에 날고 있는 새를 그렸다. 그래서 소설집 '새의 말을 듣다'를 낼 때, 느닷없이 담당자에게 들이밀고 표지에 넣겠다고 우겼다. 내 책에 내 그림을 넣으려는 욕망은 실상 꽤 오래 전부터 품어왔었다. 드디어 표지에 등장한 섬과 새. 그 새는 두 봉우리 위를 날며 알타이어로 우리에게 뜻을 전하는 새였다. 그렇게 독도를 우리 의식 속에 혼연일체로 불어넣기 위해 새는 전령사 혹은 무격의 모습이 되었다. 나로서는 어려운 접근 방법이었지만, 그건 새의 추상성이 신화에 닿아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그림을 꿈꿔온 지 여러 해 만에 마침내 다가갈 수 있었던 길..."(<나는 가짜다> 중 윤후명의 '섬과 새와 나')

최근 출판계에는 작가의 진정성을 찾는 작업이 한창인 듯하다. 유명 작가들의 '사생활'을 더듬어 그들이 작품에 녹인 사상과 상념을 담아내고 있다. <나는 가짜다>(헤럴드경제 편집국)는 우리 시대의 대표 소설가와 시인 42명이 자신의 얼굴을 직접 그리고, 그동안 드러내지 않았던 내밀한 이야기들을 담았다.

<나는 가짜다>의 작가들은 작품이 아닌 진솔한 글을 통해 '진짜' 자기 모습을 이야기한다. 소설가 마광수는 책 속에서 '나는 정신적 트랜스젠더'라는 소제목으로 <즐거운 사라> 때문에 겪은 고통의 시간을 반추하며 "나는 다시 태어난다면 야한 여자로 태어나고 싶다"고 고백했다.

소설 <스타일>의 백영옥은 책 속에서 '마놀로 블라닉과 아줌마 탐정'이라며 패셔니스타일 거라는 생각과 달리 대학시절에 산 청바지를 구멍 날 때까지 입고 다녔던 일화를 공개했다. <나는 가짜다>에는 이들 이외에 김다은, 해이수, 이문재, 김주영, 백가흠, 박범신, 안정효, 이명랑, 이승하, 김기택 등 내로라하는 작가들이 자신의 사생활을 노출하며 독자에게 친근하게 다가간다.

<오프 더 레코드 현대미술>(정장진, 동녘)은 미술평론가로 활동하는 작가 정장진이 풀어놓는 화가들의 사생활을 통해 현대미술을 이해하고자 했다. 작가는 책을 통해 밀레, 고흐, 마네, 들라크루아 등의 사생활의 에피소드를 주재료로 삼아 미술의 이해를 높였다.

"마그리트처럼 처음부터 제목 없이 그림을 그린 다음 제목 회의까지 열어가며 선택한 예는 미술사에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일이다. 나아가 작품 제목에 이토록 큰 중요성을 부여한 화가도 일찍이 없었다. 마그리트의 작품이 난해한 이유는 바로 이 제목에 있다. 이는 역으로 그의 그림에서 언어인 제목이 이미지인 그림 못지 않은 중요성을 갖고 있음을 말해 준다"(<오프 더 레코드 현대미술> 중)

김화영 교수가 쓴 <한국 문학의 사생활>(문학동네)은 작가들의 사생활 고백이 담겨있다. 작가는 그가 만난 소설가, 시인, 평론가, 기자들과 나눈 대화의 기록을 글로 썼다. 김춘수, 고은, 이청준, 이승우, 송하춘, 신경숙, 이혜경, 한승원, 성석제 등 24명의 작가들이 작품을 쓴 배경이나, 글을 쓸 때의 습관, 문학적인 사생활 등을 재미있게 엮었다. 솔직하게 드러나는 작가들의 멘트를 통해 그 작가가 가진 작품 세계까지 엿볼 수 있다.

예스24측은 "최근 작가들의 에세이 집 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작가들의 성향과 개성을 알 수 있는 책들로 인해 독자와의 관계도 많이 가까워졌다. 더불어 작가들의 사생활이 기록된 책들은 독자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특히 작가주의가 뚜렷한 작가들의 세계는 더욱 그렇다"고 말했다.

훔쳐보기의 사회학

흔히들 현대 사회는 개인주의가 팽배하고 그로 인해 소통의 부재가 심각하다고 한다. 작가의 사생활이 독자에게 흥미로운 건 그나마 인간미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허락받은' 사생활 노출과 은밀히 지켜보는 '허락받지 않은' 사생활은 엄연히 다르다. '허락받지 않은' 사생활 노출을 두고 훔쳐보기(관음증)로 해석되기도 한다.

"점차 객실을 찾는 시간이 많아진다. 손님이 퇴실한 객실이 아니라, 아직 묵고 있는 객실. 밖에 볼 일이 있어 밤이 되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으리라고 생각되는 객실. 그곳에서 린은 냄새를 찾는다. 이곳에 머무르는 남자는 어떤 냄새가 날까? 라벤더 냄새?...(줄임)...이번 객실은 여자가 묵고 있는 객실. 의자 옆 신발은 굽이 엄청 높은 힐이다. 그걸 신은 사람은 틀림없이 자신감이 넘치고 스스로를 아름답다고 생각한다...(줄임)...만약 손님이 바에 무언가를 놓고 갔다거나 약속이 미루어져 예상치 않게 돌아오게 되면, 곤란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 그럴 경우 자신의 그럴싸한 변명을 손님이 믿어줄지, 린은 확신이 서지 않는다. 하지만 들킬 수 있다는 위험, 바로 그 때문에 객실에 머문다"(<침대 밑에 사는 여자> 중)

<침대 밑에 사는 여자>(마쿠스 오르츠, 살림)는 소외된 영혼인 호텔 메이드 '린'의 일탈이 씌어졌다. 주인공 린은 객실에 숨어 투숙객의 삶을 관찰한다. 바로 침대 밑에 숨어서. 피상적이고 단편적인 인간관계 속에 소외된 현대인들에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작가는 책 속에서 "린은 생각했다, 난 원한다, 누군가 내 침대 밑으로 들어오길. 난 원한 거다, 한 번만이라도 누군가 내 삶에 귀를 기울여 주길"이라며 긴 여운을 남긴다.

영화 <여배우들>도 은근하게 '훔쳐보기'를 권유한다. <여배우들>에는 톱스타 고현정, 최지우 등을 비롯해 윤여정, 이미숙, 김민희, 김옥빈 등이 등장해 여배우들의 사생활을 스크린에 보여준다.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영상과 여배우들의 거침없는 입담은 실제 상황을 방불케 한다. 잡지의 화보 촬영을 위해 보인 20대부터 60대까지의 여배우들의 소탈한 일상은 우리와 다르지 않다. 관객은 미디어에 그간 공개되지 않았던 여배우들의 사생활을 지켜보며 입가에 미소를 짓는다. 얼핏 훔쳐본 일상이 역시 우리와 닮아 있기 때문이다.

반면 미디어 아티스트 김희선은 지난해 '대구아트페어'에서 선보인 '홈(Home)'을 통해 현대 사회를 꼬집었다. 그는 '홈'에서 아파트의 야경을 매개로 '사회적 관음증(social voyeurism)'에 대해 이야기했다.

전시기획자 박소영 씨는 "'홈'은 사회를 구성하는 개별적인 가정사를 무관심하게 바라보는 듯한 설정을 통해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진정한 소통의 부재와 한 개인의 인권을 침범하는 정보가 가진 권력의 문제를 숙고하게 하는 작품이다"고 설명했다.



강은영 기자 kis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