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활에 빠진 대중문화] 경쟁적 사생활 들추기에 높아지는 폭로수위, 멍드는 대중문화

인기 아이돌 그룹으로 활동하던 한 청년이 어느 날 하루 아침에 쫓겨나듯 미국으로 돌아갔다.

2PM 박재범 군의 이야기다. 과거 자신의 홈페이지에 쓴 글이 문제가 되었다.

2005년 미국의 소셜 네트워킹 사이트인 '마이 스페이스'에 그는 "한국이 정말 역겹다. 나는 한국인들이 싫다. 돌아가고 싶다", "한국은 이상하다. 나는 랩을 잘 못하는데 사람들은 잘한다고 생각한다. 바보 같다" 같은 글들을 남겼다.

그 공개된 내용은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네티즌들은 여기저기 사이트에다 비난의 글들을 올려 놓았다. 대충 골자를 보면 "돈만 벌러 왔냐. 그러려면 미국으로 돌아가라"는 그런 내용들이었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2PM 은퇴운동', '재범 자살 청원운동'까지 벌어졌다. 언론들은 거의 실시간으로 계속해서 박재범 군에 관련된 기사들을 쏟아냈다. 단 4일간 무려 760여 건의 기사가 쏟아졌다. 네티즌들은 또 이 기사를 여기저기 퍼다 날랐고 상황은 순식간에 일파만파로 커져갔다.

2PM(사진-KBS제공)
박 군에게 어느 날 갑자기 벌어진 이 일련의 사건들은 우리가 흔히 사생활이라고 부르며 꽁꽁 닫아왔던 공간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가를 잘 말해준다. 문제의 발단이 된 '마이 스페이스'라는 공간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우리는 이제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이 인터넷을 통해 공존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사생활의 침해는 바로 이 근본적인 환경 변화에서 비롯되는 바가 크다. 사적인 공간으로 여기고 있던 곳이 수많은 사람들의 표적이 됐을 때, 공적 영역이 되어버리고, 이것은 사적 공간의 심각한 침해로 바뀔 수 있다. 그만큼 한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늘 이렇게 외부에 열려진 채로 불안하게 존재하게 된 셈이다.

박재범 군이 그룹 탈퇴 발표를 하고 미국행 비행기를 탄 후에도 이 불안하게 노출된 '사생활 문제'는 계속 지속됐다. 여론은 동정론으로 바뀌고 네티즌들은 '복귀 운동'을 벌였으며, 그것은 또 네티즌들의 자성론으로까지 이어졌다. 복귀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고, 실제로도 JYP엔터테인먼트에서는 올 상반기에 그를 복귀시킬 계획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또 '사생활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2월25일 JYP엔터테인먼트측은 박 군이 "사회적으로 심각한 물의를 가져올 사생활 문제를 일으켜 영구탈퇴를 결정했다"고 밝혔고, 2PM 역시 2월27일 팬과 가진 간담회에서 박 군 탈퇴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그러자 기획사를 비판해오던 팬들은 이제 2PM까지 비판하고 나섰다.

하루아침에 열성팬들이 안티팬이 되어버린 것. 이 안티팬들은 거꾸로 2PM 멤버들의 사생활을 가지고 2PM을 공격했다. 루머를 퍼뜨리고 신상정보를 공개했던 것. 결국 박재범 군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은 사생활로 시작해 사생활로 끝나버린 셈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열성팬이 하루아침에 안티팬이 되는 상황 속에서 연예인들의 사생활은 점점 더 불안한 상황에 놓여질 수밖에 없다. 이른바 사생팬(연예인들의 사생활을 쫓는 팬)이라 불리는 열성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들을 따라다니며 그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기도 한다. 연예인들의 개인정보는 이 과정 속에서 쉽게 노출되고 공유되기도 하며 심지어 팔리기까지 한다.

그것이 거의 스토커 수준이기 때문에, 때론 소속 매니저와 마찰이 벌어지기도 했다. 2PM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일부 팬들이 열성적으로 좇던 사생활은, 순식간에 안티로 돌아서면서 폭로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한다. 작금의 팬덤 문화가 점점 조직화되어가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의 경쟁 상대의 사생활을 캐서 폭로하는 이른바 '사생안티'도 차츰 늘어가고 있다.

연예인과 팬들 사이에 사생활을 두고 벌어지는 각축전은 이제 아예 대중문화의 한 부분으로 프로그램화되어가는 추세다. 어차피 숨길 수 없다면 아예 스스로 사생활을 드러내겠다는 것이다. 사생활은 지금 토크쇼가 장사하는 가장 잘 팔리는 아이템이 되었다. '강심장' 같은 많은 연예인들이 출연해 경쟁적으로 이야기를 쏟아내는 토크쇼에서는, 병풍(?)이 되지 않으려고 가장 내밀한 사생활을 폭로하는 것이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닌 게 되었다.

출연한 연예인들은 저마다 팻말에 자신이 할 이야기를 적어놓는데, 그 내용 중 거의 대부분이 사생활에 관련된 것들이다. MC들은 아예 그 사생활을 좀 더 끄집어내기 위해 유도심문을 하기도 하고, 그런 사생활을 노출하는 분위기를 권장하기도 한다. 때론 자신의 사생활이 아닌 타인의 사생활까지 들춰내는 상황에까지 이르면, 진정성 운운하는 이러한 토크쇼가 의도하는 것이 결국은 백화점식의 사생활 전시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된다.

이것은 비단 '강심장'만의 사정이 아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토크쇼들이 이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지금껏 토크쇼들은 출연한 연예인들의 사생활을 어떻게 끄집어낼 것인가를 고민해왔다. '야심만만' 같은 토크쇼는 설문방식을 이용해서 자연스럽게 출연진들의 사적 이야기를 끄집어냈고, '놀러와'나 '해피투게더' 같은 토크쇼는 골방이나 목욕탕 같은 편안한 공간을 연출해 출연진들이 편안하게 사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게 유도했다.

작금의 토크쇼들이 그 형태가 어떻든 대부분 연예인들의 신변잡기로 흐르는 것은 그 사생활 장사가 대중들에게 가장 잘 팔리는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쩌면 TV가 가진 속성인지도 모른다. TV는 결국 이쪽 창에서 저쪽 창을 들여다보는 그 관음적인 특징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TV는 프로그램을 통해 어떤 식으로든 노출을 하게 마련이고 그것 속에는 연예인들의 사생활이 끼어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것은 작금의 과도하게 경쟁적으로 되어버린 사생활 폭로의 수위다. 굳이 알고 싶지 않은 것까지 들춰내어 결국은 보게 만드는 식의 자극은 차츰 둔감해지고, 따라서 더 강한 자극을 요구하게 만들고 있다.

항간에는 연예인들의 사생활 노출이 '볼 권리'라고 주장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올해 초에 인터넷과 신문지상을 떠들썩하게 메운 김혜수-유해진 커플에 대한 기사는 일파만파 사회를 들끓게 만들었다. 김혜수라는 엣지 있는 여성과 유해진이라는 명품 조연의 만남은 '미녀와 야수'에서부터 '루저들의 희망'으로까지 불리게 되었다.

하지만 이 기사를 통해 불거져 나온 또 다른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한국형 파파라치'에 대한 논란이다. 이 커플의 열애사실을 밝혀내기 위해 한 스포츠신문이 잠복 취재를 했던 것. 결국 이 커플은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이런 식의 취재방식에 불편함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 잠복 취재에 대해서 이들은 연예인들의 사생활이 마땅히 대중들의 것이라는 논리를 피력했다. 이들의 논리를 따르자면 "연예인들은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사생활은 팬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인기를 이용해 수많은 것을 얻는 그들이 개인 생활은 공개되기 싫다고 말하는 건 '도둑놈 심보'이다"라고까지 말한다.

이것은 마치 이 스포츠 신문이 대중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지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이러한 취재방식에 대한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쏟아져 나오는 비난 여론을 두고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이 스포츠 신문이 전가의 보도처럼 들고 나오는 '대중들의 요구'라는 카드는 사실은 그저 자신들의 논리를 위해 호명된 것이라는 혐의가 짙다.

그렇다면 사생활을 들춰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은 그저 연예인들에게나 국한된 일일까. 그렇지 않다. 결국 이 사생활 들추기는 대중문화의 한 경향을 만들고, 그 경향은 고스란히 대중들에게 스며든다. 늘 누군가의 사생활을 보는 것에 익숙해져 간다는 것이다.

아무리 TV가 가진 속성에 노출과 관음의 욕구가 있다고 하더라도, 과도하게 사생활을 노출하면서 심지어 그것이 시청자들의 볼 권리라고까지 주장되는 상황은 시청자를 호명해 불필요한 욕구를 강요하는 것처럼 보인다. 팬덤에서부터 프로그램과 기사에 이르기까지 지금 대중문화는 누군가의 사생활을 경쟁적으로 들춰내고 있고, 그 반복적인 자극에 대중들은 점점 둔감해져 가고 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