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반란] 현모양처서 적극적 '내조' 펼치는 대등한 동반자·친구로

MBC <내조의 여왕>
아내들의 '변신'에는 미디어의 역할도 크다.

미디어는 아이의 육아 방법뿐만 아니라 살림 비법 등을 전수한다. 이는 현재 아내들의 입장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그것을 반영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아내들의 변화를 일찍 감지한 것도 미디어다.

아내들이 자발적으로 임신과 출산 등의 결정권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면서, 미디어도 이런 현상을 그리고 있다. 미디어 속에 비친 아내들은 어떤 모습일까.

1> MBC <살맛납니다>의 경수(홍은희)는 남편 창수(권오중)의 뒷바라지로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 얼마 전 실직한 남편을 대신해 한 갤러리에 취직하는가 하면, 남편의 디자인 공부를 지원하기 위해 속옷 장사도 마다하지 않는다. 아내를 넘어 가장으로서 리더십을 발휘하며 가정을 이끌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생각지도 않은 임신으로 깊은 고민에 빠졌다. 지금 형편으로는 두 아이의 양육도 버겁다. 경수는 남편이 디자인 공모전에 출품한 작품의 당선 여부에 따라 임신 사실을 알릴지 말지 결정할 생각이다.

2> KBS <수상한 삼형제> 속 김이상(이준혁)의 아내 주어영(오지은)도 남모를 고민에 빠져 있다. 바로 2세 문제다. 시어머니와 남편은 아이를 원하지만, 정작 자신은 아이를 갖기에는 시기상조라고 생각한다. 결혼한 지 1년도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커리어 우먼으로서 성공하고 싶은 욕심도 있기 때문이다. 어영은 보석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회사와 관련한 홈쇼핑 사업 규모를 확장하며 보람을 느끼고 있다. 어영에게 2세 계획은 아직 먼 이야기다.

KBS <엄마가 뿔났다>
3> 케이블 채널 QTV <맘VS맘 엄마를 바꿔라>에는 두 집안의 엄마를 8일간 바꾸어 생활하는 가족 리얼리티 프로그램. 처음 4일은 기존 가족의 규칙대로 생활하다가 나머지 4일은 바뀐 엄마의 마음대로 규칙을 정해 생활하게 된다. 즉 엄마가 가족의 규칙을 정하고, 아빠와 아이들은 바뀐 엄마의 규칙을 따르는 것이다. 가정 내 규칙을 정하는 아내와 이를 따르는 과정에서 부딪히는 남편과의 마찰에서, 남편은 무조건 아내의 말을 들어야 한다.

<살맛납니다>와 <수상한 삼형제>는 각각 20%와 4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보이는 인기 드라마다. 두 드라마에는 억척스러운 엄마보다는 현명하고 자기 주장이 강한 아내들이 가정을 지키고 있다.

이 드라마 속 아내들은 남편을 위해 소극적인 내조가 아닌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목소리를 낸다. 두 드라마는 소위 '욕하면서 본다'는 의미의 억지 설정과 캐릭터가 존재하지만, 시청자 특히 여성들의 지지를 얻으며 인기 가도를 달리고 있다.

<살맛납니다>의 경수는 직장을 얻었다가 본격적으로 남편의 뒷바라지를 위해 회사까지 그만 둔다. 또한 남편 대신 집안의 생계를 떠안는다. 누구의 요구나 강요가 아닌 바로 자신이 선택한 결정이자 의지다. 남편을 위한 조용한 내조가 아닌 현실적이면서도 과감한 행동 결정이었다.

<수상한 삼형제>의 어영은 '딩크족(double income no kids)'의 예를 보여주기도 한다. 맞벌이 부부로서 의도적으로 자녀를 두지 않는 아내의 모습을 반영한다. 가정과 일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후에 아이를 낳아도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

MBC <살맛납니다>
어영의 모습이 낯설지 않은 이유는 아내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설득하는 모습이 현재 젊은 부부들이 공동으로 껴안고 있는 고민들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두 드라마 속 아내들은 남편을 위해 소극적인 위치가 아닌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목소리를 낸다.

2008년 사회적으로도 큰 반향을 일으켰던 KBS <엄마가 뿔났다>는 아내 한자(김혜자)의 '출가'를 다룸으로써 변화된 아내의 일면을 담았다. 남편과 자식들을 위해 40여 년간 살아 온 한자가 60세가 넘은 나이에 자신을 위해 독립하는 사건이 드라마 속에서 벌어진 것이다.

한자는 남편 일석(백일섭)에 의지해 시부모 봉양과 시동생 뒷바라지에 남편, 자식들에 얽혀 '무능한' 아내로 살아왔다. 그러나 60세가 넘은 나이에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자각으로 '아내의 반란'을 일으킨다. 남편과 가정에 종속됐던 아내에서 자립적이면서 주체적인 자아로 돌변한 셈이다.

드라마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더 변화한 아내상도 보여준다. 지난해 MBC <내조의 여왕>도 아내들의 '반란'에 한 몫을 톡톡히 했다. <내조의 여왕>은 무능한 남편 온달수(오지호)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아내 천지애(김남주)의 활약상이 그려졌다.

<내조의 여왕> 속 '내조'는 '아내가 남편을 돕는다'는 뜻의 단순한 사전적 의미가 아닌, 대등한 관계 속에서 자아를 찾아가는 아내들의 새로운 모습이 조명됐다. 예전 대가족 시대에 남편에 종속돼 살던 아내들의 자화상은 21세기 현재 대등한 동반자이자 친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내조의 여왕>에서 김이사(김창환)는 자살을 시도한다. 그러나 자살하려는 남편에게 "여보. 맛있는 저녁 차려놨으니 어서 집으로 와"라는 아내의 전화 한 통화가 걸려온다. 남편은 아내의 전화에 눈시울을 붉히며 삶에 대한 의지를 갖는다. 남편들에게 아내는 삶의 안식처이자 무거운 짐을 나눠진 동반자로 여겨지는 것이다.

서울 YWCA 측은 "<내조의 여왕>은 '열린 내조'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우리는 내조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내조는 보편적으로 아내가 남편을 위하는 것으로, 희생이라는 의미로 풀이됐다"며 "그러나 아내(여성)의 역할과 진취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요즘, 집에서 가사만 하며 자신의 자존감을 낮추는 여성은 없다. 살림과 육아 등으로 대변되는 닫힌 의미의 내조가 아닌 따끔한 충고로 남편의 올바른 선택을 돕고, 삶의 희망을 주며, 파트너로서의 삶을 사는 열린 내조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강은영 기자 kis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