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문학> 55년, 빛과 그림자] <현대문학>출신 작가들 좌담회'신인추천제' 공모제 형식으로 변화… 테마소설집 <캣캣캣>출간

문예지 '현대문학'창간 55주년을 기념해 현대문학 출신 작가(소설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이 말하는 현대 문학의 역사, 2000년대 문학에 대해 들어본다. (좌로부터) 명지현, 태기수, 강진, 김서령, 최은미, 박형서, 김설아
출판사 현대문학이 만든 전통 중 하나가 신인추천제도다.

과거 50-60년대, 기성작가들의 추천을 받아 월간 <현대문학>에 작품을 발표하는 것이 등단의 한 형식이었고 한때 이 형식으로 등단한 작가가 국내 문인의 절반을 차지했지만, 세월이 흐르며 현재 신인추천제도는 이름을 유지한 채 예심과 본심을 거친 공모제 형식으로 변했다.

참고로 작품을 책으로 발표하며 '작가'의 이름을 얻는 외국과 달리, 한국은 공모제 형식을 통해 작가의 이름을 얻는다. 신문사의 신춘문예 공모와 문학전문 출판사들의 신인상 공모제가 그것이다.

기사를 읽는 독자 중 '내가 아는 작가는 아니던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적어도 본격문학이라고 부르는 순문학 작가들의 경우는 거의 대부분이 이런 방식으로 제도권의 인정받는다.

98년부터 2008년까지 현대문학 출신 작가들을 한 자리에 불렀다. 98년 등단한 태기수 작가부터 2008년 등단한 최은미 작가까지 다양한 나이, 배경의 작가들이 '현대문학'이란 이름으로 모였다. 작가들은 얼마 전 창간 55주년을 기념해 테마소설집 <캣캣캣>을 내기도 했다. 이들에게 물었다. 젊은 세대가 읽고 쓰는 <현대문학>은 어떤 모습인가,라고.

소설가 강진
왜 현대문학입니까

이렇게 모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 '현대문학'출신이신데요, 현대문학은 신인추천제도란 말을 쓰죠? 신인상이 아니라.

태기수 "전통적으로 추천제를 해왔기 때문에 이름을 고수하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기성 작가들이 신인을 추천해 문예지에 작품을 발표하는 걸 1회 추천으로 하고 2회 추천된 걸 등단이라고 여겼다고 해요"

박형서(2000년 등단) "추천제도란 이름도 나름의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제 경우에는 특히 그런 것 같고. 1999년 이전에는 일 년에 두 번 추천제도를 시행했는데, 저는 99년 하반기에 응모했거든요. 응모기간이 아닐 때 응모를 한 거죠. 출판사에서 연락이 없어서 '떨어졌나 보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듬해 봄에 전화가 온 거에요. 등단했다고. 작품을 보낸 적이 없다고 하니까 99년 가을에 낸 작품을 어느 편집자가 갖고 있다 2000년 추천 심사 때 제출해 주신 거더라고요."

최근에는 작가지망생들이 신춘문예 보다 출판사 신인공모로 등단하는 걸 선호하는데, 현대문학 경우에는 특히 인기가 높죠. 원로, 중견 작가 중 현대문학 출신이 많이 계신 것도 한 이유가 될 텐데요.

소설가 김서령
김서령(2003년 등단) "대단한 선배 작가들이 많은 면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 현대문학 출신 신인들에게 발표 기회가 많기도 해요, 작가들이 이 점을 고마워하죠. 신인 작가들은 활동 초반에 작품 청탁이 잘 없고, 이런 시기를 오래 거칠 수도 있거든요. 그러다 무인의 길을 포기하게 되는 경우도 더러 있는데 현대문학은 월간지 성격상 연재 지면이 많고, 현대문학 출신의 작가들에게 청탁을 자주하는 편이에요. 포기하지 않고 작가의 길을 가도록 도와주는 거죠."

명지현(2006년 등단) "문학출판사에서 무인들 교류를 주선할 때가 있는데, 현대문학은 등단자 축하모임, 현대문학상 시상식, 재작년 송년회까지 일 년에 3번은 현대문학 출신 작가들과 다른 작가들을 교류하게끔 자리를 만들어줘요. 사실 작가들은 개별적으로 작품을 쓰기 때문에 다른 문인이나 비평가를 만나고 싶어도 교류가 잘 없을 수 있거든요."

전통과 보수란 시선에 대해

최근에는 출판사마다 문학적 성향이 크게 다르지 않지만, 그래도 상징적인 이미지가 있죠. 현대문학 추천제 응모하시기 전 월간<현대문학> 읽으시면서 어떤 생각하셨나요?

김서령 "예전에는 정기구독자가 아니라도 현대문학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면 월간지 발표 작품을 다 볼 수 있었어요. 등단 전에 호주에 있었는데 그때 현대문학 출신 신인들의 작품을 읽는 게 제일 좋아하는 일과 중 하나였거든요. 이기호 작가, 이신조 작가들의 신인시절 작품들이죠. 어느 순간 정기구독자만 볼 수 있게 바꾸었는데, 이 점은 아쉬워요."

소설가 김설아
현대문학이 갖고 있는 전통성과 상징성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겠지만, 한편으로 보수성을 지적 받기도 하죠. 이 보수성이란 월간지에 게재된 작품이나 비평에 관해 독자들이 갖고 있는 이미지일 텐데요. 편집위원들도 다른 문예지에 비해 훨씬 연령대가 높고요. '<현대문학>은 보수적이다'란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서령 "실제로 <현대문학>에는 굉장히 다양한 작품들이 실려요. 오히려 다른 잡지에 비해서 색깔이 없다면 없다고 할 정도로."

박형서 "다른 문예지들, 가령 <문학과사회>, <창작과 비평>은 기회의도라는 게 있잖아요. 이번에는 어느 주제에 초점을 맞추겠다. 가을에 복간하는 <문예중앙>은 아예 전 편집위원을 젊은 층으로 하고 있고. 다른 문예지들은 기획 담론으로 잡지와 출판사 색깔을 공고히 하는데 반해서 <현대문학>은 기획의도를 잘 드러내지 않는 편이죠. 그래서 한 편으로 작가들의 목소리가 커질 수 있고. 스펙트럼이 다양한 작품이 소개되죠."

최은미 작가와 김설아 작가가 생물학적 나이로 가장 젊은 작가신데, 20대가 보는 <현대문학>은 어떤가요?

김설아(2004년 등단) "확실히 젊은 층 보다 중장년 층이 관심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주변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현대문학>이 확실하게 어떤 이미지를 가진 문예지다, 인지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소설가 명지현
최은미 "다른 계간지처럼 기획의도가 뚜렷하기 보다는 작품이 많이 실리고, 전통성을 가지고 있다라고 생각하는 듯해요"

재미있는 것은 현대문학이 전통과 보수라는 상징적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최근의 현대문학 출신의 젊은 작가들은 이런 이미지들과 상당히 대척점에 선 작품들을 발표하고 있다는 겁니다. 2000년대 식 서사, 그러니까 장르문학을 차용한다거나, 이야기에 환상성을 가미한다거나 하는 방식의 작품이 상당히 많아요.

최은미 "오히려 '전통적이다'라는 인식 때문에 신인을 발굴할 때는 이전 작가들과 다른 신선함을 많이 기대하는 것 같아요. 새로운 방식의 작가나 작품을 선호하는 게 강한 것 같고요."

강진(2007년 등단) "그리고 출판사의 색깔이 작가들의 작품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아요. 나는 어떤 매체로 등단했으니 어떤 색깔의 작품을 발표하겠다, 이런 생각을 하는 작가는 없으니까요."

그렇습니다, 고양이입니다

소설가 박형서
<현대문학> 창간 55주년을 기념해 세 권의 책이 나왔죠. 작년 12월에 출간된 시집 <시, 사랑에 빠지다>, 올해 2월에 출간된 소설집 <석양을 등지고 그림자를 밟다>, 그리고 지난 주 나온 <캣캣캣>입니다. 앞의 두 권이 중견, 원로 작가들의 작품을 모은 책이라면 <캣캣캣>은 현대문학 출신의 젊은 작가들이 쓴 테마 소설집이죠. 2008년 테마소설집 <피크>에 이어 현대문학이 발행한 두 번째 기획 소설집이기도 하고요. 고양이에 대한 11편의 단편이 담겨 있습니다. 소재를 고양이로 정한 이유가 있었나요?

박형서 "이전 테마 소설집 <피크>는 '절정' 이란 소재로 작가들이 단편을 썼어요. 주제가 추상적이면 쓰기가 더 어렵더라고요. 면도칼, 고양이, 사진 같은 작은 주제로 잡으면 오히려 상상할 여지가 더 커지지 않을까 그러다 고양이가 어떨까, 생각해서 제가 의견을 냈죠. 제가 고양이를 기르기도 하고요."

테마를 정하고 마감하는데 얼마나 걸렸나요?

김설아 "작년 8-9월쯤 상의해서 마감은 1월 15일로 정했는데 실제 원고를 넘긴 건 다들 2월이 넘어서였을 거예요." 김서령 "실제 고양이를 키워 본 적이 없어서 제가 고양이에 대해 가진 사유는 일반인과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실제로 만져본 적도 없고, 고양이의 이미지만 빌려 쓴 거죠. 그래도 예전 <피크> 작업 때보다는 수월했던 것 같아요. 소재가 구체적이니까."

명지현 "고양이에 대한 생물학적 지식은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소설 준비하면서 고양에 대한 작품을 찾아봤는데, 특히 일본 작가들의 작품에 고양이를 소재로 한 소설이 정말 많더라고요. 이미 쓴 작품을 내가 쓸 필요는 없으니까 고양이를 소재로 나만의 소설을 쓰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했죠."

소설가 최은미
강진 "제가 사는 아파트 주변에 길고양이가 그렇게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항상 지나다녀도 의식을 못했는데 그 다음에 고양이를 보면 예사롭게 보이지가 않더라고요. '쟤들을 꼬시는 마음으로 소설을 써야겠다' 생각하고 썼어요."

긴 시간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소설집 읽으면서 현대문학 작가들의 특징은 뭘까, 생각했어요. 작가들이 보는 <현대문학>의 특징, 현대문학 출신 작가들의 특징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태기수 "아마 이런 특징을 보고 싶어 출판사가 테마 소설집을 두 권이나 기획하지 않았을까…. 55년 역사에 맞게 작가와 작품이 너무나 많이 배출됐고, 발표됐고, 그래서 스펙트럼이 가장 넓은 매체가 <현대문학>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현대문학의 특징이라면 아마도 다양성이겠죠."

테마소설집 <캣캣캣>

출판사 현대문학의 2008년 테마소설집 <피크>에 이른 두 번째 기획 소설집이다. 고양이를 소재로 쓴 11편의 단편이 담겼다. 작품집에서 고양이는 때로는 인간을 뛰어넘는 주연으로, 때로는 스쳐 지나가는 존재로 등장한다. 공포로 가득 찬 공간부터 낭만적인 사랑의 세계까지 휴먼드라마, 멜로, 환타지, SF 사이를 넘나드는 11가지 이야기가 펼쳐진다.

소설가 태기수
태기수, 양유정, 박형서, 김이은, 김서령, 김설아, 염승숙, 명지현, 강진, 최은미, 정용준 등 현대문학 출신의 소설가 11인이 참여했다. 김이은 작가의 <고양이 소설엔 고양이가 없다>는 메타 텍스트적인 작품. 소설가인 주인공은 고양이에 관한 소설을 청탁받은 것을 기억해내고 부랴부랴 작품 구상에 들어가고 그러다 '죽음의 냄새를 맡는 고양이'에 대한 제보를 받고 고양이에 관한 환상적인 이야기를 구상해 보지만, 이 제보를 취재하는 데 실패하고 만다.

작가는 이 실패담 자체를 결국 소설로 썼다. 이 밖에 2012년의 남한을 배경으로 한 묵시록적 작품인 양유정 작가의 <묘심>, 실연 당한 남자의 환상을 중심으로 고양이 이야기를 풀어낸 염승숙 작가의 <자작나무를 흔드는 고양이> 등이 수록돼 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