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에 대한 문화적 고찰]연극·뮤지컬·UCC 공모전 등 통해 부드러운 치유 시도

시선을 넘어
"죽고 싶다"거나 "나 우울증이야"라고 말하는 사람을 그냥 지나치는 건 금물이다.

우울증을 하나의 질환으로 인정하지 않고 '별 것 아닌 것'으로 치부한다면 환자들은 치유될 수 없다.

최근 우울증이라는 중대한 문제를 문화라는 새로운 접근으로 치료하기 위한 시도들이 펼쳐지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대한신경정신의학회와 함께 4월 4일을 '정신건강의 날'로 제정했다.

'정신건강의 날'은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없애고 올바른 인식과 국민적 관심을 촉구한다는 의미로 출발했다. 지난 1970년 제정된 이후 올해로 41번째 행사다. 4월부터 한 두 달 동안 각종 공연과 강좌, 행사 등을 통해 참여자들에게 유익한 정보를 제공한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산하 12개 지부학회와 협력해 정신건강 희망시대를 열어가기 위해 4월 1일부터 전국적으로 대국민 정신건강 강좌를 실시하고 있다. 치매와 기억력 등 노인 정신건강, 우울증·스트레스 등 성인 정신건강, 아동·청소년 등 자녀·가족 정신건강, 인터넷·알코올 등 중독 예방과 치료 등으로 실직적인 의학 정보를 전달하고 있다.

G-mind정신건강연극제 <행복한 삼복씨>
우울증, 문화와 만나다

최근 경기도 광역정신보건센터는 '2010 G-mind 정신건강축전'을 열고 미술제와 연극제를 진행한다. 'G-mind'사업은 경기도가 2008년부터 추진해 온 정신보건 서비스다. Good Mind(정신건강증진), Green Mind(자살예방위기관리), Great Mind(정신재활), Global Mind(기획평가)로 진행되어 왔다.

올해는 제3회 정신건강 미술제 '예술, 가능성을 말하다'가 6월 30일까지 13회에 걸쳐 전국을 순회하며 전시한다. 이번 전시회는 한일 교류전으로 정신장애인이 표현의 주체자로서 세상과 소통하는 기회를 마련했다. 한국작품 총 36점과 일본 장애인 작가 6명의 작품 22점이 전시될 예정이다.

한국정신건강미술학회는 "이번 전시회는 2008년 '정신, 그 내면의 세계'에 이어 개최되는 미술제다. 장애의 유무와 관계없이 모든 사람을 표현의 주체자로서 인식하고, 장애를 그들이 가진 하나의 개성과 다름이라고 인식하게 하는 데 의의가 있다"며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느끼는 즐거움과 그 활동을 통해 맺어지는 관계를 통해 지역 주민들이 그들이 가진 가능성을 보고, 정신장애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을 줄이고자 기획됐다"고 전했다.

미술제에 이어 '제4회 정신건강 연극제'도 개최된다. 연극 <행복한 삼복씨>(원제: 굿 닥터)는 정신장애를 앓았다가 회복 후 재활치료를 받고 있는 주인공 오삼복의 이야기다. 연극은 오삼복을 통해 비정상적인 편견으로 주인공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를 꼬집는다. 정신장애를 가진 남자 오삼복을 통해 '진정으로 바보는 누구인가?'를 묻는 작품이다. <행복한 삼복씨>는 32회에 걸쳐 각 시 군을 돌며 6월 28일까지 공연한다.

정신건강의 날 UCC공모전
대중문화의 힘을 빌리기도 한다. 경기도는 ''라는 타이틀로 기념식을 진행해 각종 시상식과 함께 그룹 윤도현 밴드의 공연으로 우울함을 날려버렸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도 지난 2일 가수 김장훈과 싸이의 희망콘서트를 개최해 국민적인 관심을 이끌어냈다.

얼마 전 대전 유성구 정신보건센터에서는 '정신건강의 날'을 기념해 UCC 공모전을 진행했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문제이지만 그만큼 잘 알고 있지 못하는 정신장애와 우울 자살 등의 사회문제를 UCC제작을 통해 비장애인과 장애인 모두가 공감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 행사였다. 5분 이내의 창작 UCC나 포토에세이 분야로, 온라인 UCC를 통해 우울증과 자살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이끌어내는 데 의미를 뒀다.

여성우울증, 공연으로 잠들다

40대 여성 우울증 환자들이 늘어가고 있는 추세에서 여성을 위한 공연은 반갑기 그지없다. 여성 관객들에게 직설 화법을 사용해 그들의 마음을 긁어주고 평온을 주기 때문이다. 최근 일련의 여성을 위한 공연들은 꽁꽁 묶여있던 중년 관객들의 고민을 한 올 한 올 풀어주려고 한다. 관객과 무대 위 배우가 하나가 되는 시점에서는 위안을 얻을 수 있는 기회도 마련된다.

"엄마는 태어날 때부터 엄마인 줄 알았다." 뮤지컬 <메노포즈>에는 한 물 간 연속극 배우, 전문직 여성, 전업주부, 웰빙주부 등 4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우연히 한 백화점 속옷매장에서 만난 중년 여성 4명은 서로 중년의 위치에서 느끼는 여성, 엄마, 아내로서의 외로움을 코믹하면서도 진지하게 이야기한다.

뮤지컬 <메노포즈>
뮤지컬 제목이기도 한 '메노포즈'는 폐경이라는 뜻으로, 40~50대 여성들이 경험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폐경을 경험하고 느끼는 허탈감이나 무기력증과 같은 우울한 면보다는 또 다른 인생의 '시작'이라는 의미로 관객에게 다가간다. <메노포즈>를 보기 위해 객석의 80%를 차지하는 여성 관객들의 박수를 받기에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한다.

공연이 끝난 뒤 정신과 전문의와의 상담 시간이 기다리는 연극도 있다. '정신건강의 날'을 기념해 진행되는 연극 <아내들의 외출>이 그렇다. 연극은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어머니와 아내들의 심리를 대변한다.

젊은 시절 남편의 외도로 고통을 받다가 남편과 사별 후 증오와 그리움이 남은 엄마, 조기 폐경으로 우울증을 앓고 있는 딸, 가족에게 완벽한 엄마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 며느리 등 세 여자가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가며 정신적으로 치유방법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이 세 여자의 먹먹한 이야기가 끝나고 나면 관객들은 정신과 전문의와 질의응답 형식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현대사회 여성의 심리적 어려움과 해법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강동성심병원 한창환 정신과 과장은 "여성들은 임신, 분만, 폐경기를 겪는 동안 호르몬 변화로 인해 더 쉽게 우울증에 걸리게 된다. 심리사회적으로는 남녀평등이 이루어졌다고 해도 여전히 스트레스가 많고, 참고 견디는 것이 미덕인 것으로 여겨지는 경향들이 많아 이런 억압된 감정들이 우울증상으로 표출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여겨진다"고 설명했다.

정신건강의 날 기념 연극 <아내의 외출>
그는 이어 "반면 남성들은 명예퇴직, 감원 등 사회적 압박으로 우울증이 오는 경우가 많은데 자존심 때문에 치료받을 시기를 놓치거나 술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강은영 기자 kis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