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시크] 홍익대 패션디자인과 간호섭 교수경제, 교육, 음식, 패션 순으로 문화 성숙… 한국은 지금 음식 단계

패션만큼 코리안 시크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분야가 있을까? 패션의 프리즘으로 조망한 코리안 시크의 과거와 미래.

지금 한국에 문화적 이미지라는 것이 있다고 봅니까? 세계에 내놓을 '코리안 시크'를 규명하기가 애매합니다

한 나라의 문화가 성숙하는 데는 순서가 있어요. 경제가 안정되고 나면 교육 사업에 열을 올리죠. 그리고 나서는 음식문화가 부상하고, 그 다음 순서가 패션이죠. 일본의 스시를 생각해 보세요. 처음에는 생선을 날로 먹는다고 해서 미개한 음식 취급을 받았죠. 하지만 지금은 뉴욕의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팔리고 있어요. 한국은 지금 음식 단계에 와 있어요. 김치와 된장 냄새에 코를 싸 쥐던 것이 어제 같은데 어느새 슬로 푸드니 웰빙이니 하며 점차 긍정적인 이미지로 바뀌고 있죠.

그럼 문화가 성숙하기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건가요. 한국인에게 문화적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은 아닌가요?

기다린다고 무조건 되는 건 아니죠. 사실 문화ㆍ예술 분야의 성숙을 위해서는 아티스트 개인이 엄청난 고난의 시간을 겪어야 해요. 자기만의 아이덴티티를 찾아내는 것은 디자이너에게 있어 평생에 걸쳐 해내야 하는 숙원 사업이에요. 이렇게 개인이 찾아낸 정체성이 모여서 국가의 문화적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거에요. 찾아낸다고 해서 끝나는 것도 아니죠. 시장에서 상업성을 검증받아야 해요. 분명한 건 우리에겐 잠재력이 있어요. 지금은 요원해 보이지만 김연아와 박태환이 이런 식으로 세계를 제패할 거라는 사실을 과거에 누가 짐작이라도 했나요? 단지 시간이 필요해요. 문화의 성숙은 레볼루션(revolution)이 아닌 이볼루션(evolution)으로 이해해야 돼요.

우리나라에 자기만의 정체성을 가지고 상업적으로도 성공한 아티스트가 흔치 않은 이유는 앞서 말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봅니까?

사실 어떤 학교를 나와서 어떤 교육 과정을 거치는가도 중요하지만 스스로 고민하지 않으면 성과를 기대할 수 없어요. 또 하나 중요한 건 아티스트는 기업과 손잡아야 해요. 패션은 흥행이 돼야 하거든요. 영화배우 안성기도 국민 배우가 되기 이전에 흥행 배우 시절을 거쳤어요. 이건 패션뿐만 아니라 순수 예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예요. 상업 얘기만 나오면 비예술적이고 천박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옷이 안 팔리면 어떻게 되는 줄 아세요? 무게를 달아서 근 수로 팔려 나가요. 걸레값이 되는 거에요. 기업과 일하기 위해서 디자이너는 자신의 작품 세계를 묵묵히 구축하고 있어야 해요. 자기 돈은 1원도 쓰기 아까운 게 사람의 심리인데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만한 뭔가를 보여줘야 하지 않겠어요? 이와 관련해 디자이너는 가끔은 스스로를 알리는 스타 마케팅도 할 줄 알아야 해요. 톰 포드가 의 표지 모델로 나서고 갈리아노가 인상적인 피날레 무대를 장식하는 건 괜히 심심해서가 아니에요. 자기 몸 값을 높이는 전략이죠.

정부의 지원도 필요한 거 아닐까요. 요즘엔 특히나 디자이너들의 세계 진출에 정부가 열을 올리고 있는데.

정부에서도 대대적으로 나서고 있죠. 최근 뉴욕에서 열린 한국 디자이너들의 전시에 CFDA(미국패션디자이너협회)가 후원한 건 대기업의 자본을 끼고 정부가 전략적으로 나섰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에요. 하지만 아직도 너무 따로 노는 경향이 강해요. 서울시, 지식경제부, 문화체육관광부 등 지원 주체도 너무 많고 그러다 보니 화끈하게 확 밀어주는 게 아니라 찔끔찔끔 지원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어요. 시에서 서울컬렉션에 올해 몇 십억 원의 예산을 들였다고 자랑하는데 턱없이 부족하죠. 뒤에 '0' 하나 더 붙여야 해요.

아직 시기가 무르익지 않았더라도 한국 문화 특유의 분위기에 대해 말할 수 있지 않나요. 패션 분야에선 어떤 공통점이 있다고 봅니까?

전 섬세함이라고 생각해요. 교포 디자이너인 두리 정이 드레이프 잡은 것을 보면서 정말 끝내준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나라에서는 손재주를 이용한 이런 디테일적 섬세함을 찾아보기 힘들어요. 어찌 보면 유전적 요인이 아닌가도 생각해요. 그 섬세함은 서구의 복잡한 화려함과는 또 다르죠. 소박하지만 초라하지 않고 손이 많이 간 듯한 느낌이랄까? 조선 백자 달 항아리를 떠올리면 되겠네요.

한국 문화는 중국과 일본 중간의 어느 지점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자주 호기심이나 연구 대상에서 제외되곤 하는 거 같습니다.

동남아 국가들이 문화에 있어서 상당히 흡사한 면을 보이는 것에 비하면 한중일 3국은 신기할 정도로 판이하게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어요. 중국은 화려하고 거대하죠. 일본은 축소 지향에 정적이고 단순한 것들을 선호해요. 한국에는 중용의 미가 있죠. 음식만 봐도 너무 다르잖아요? 중국의 맛이 화려한 불맛이라면 일본은 조리나 양념이 절제된 칼맛, 한국은 손맛이죠.

운동신경에 있어서 흑인들을 따라잡을 수 없듯이 민족마다 문화적 적성이 다른 것 같습니다. 우리 민족이 두각을 드러낼 수 있는 분야가 있을까요?

문화를 창조하고 향유하는 능력에 있어서 우리는 기본적으로 우수한 민족이에요. 풍류를 즐길 줄 알고 정신적인 면을 강조하잖아요. 다만 우리는 단절된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전쟁 이후로는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어요.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 셈이죠. '잘 살아보세' 시절을 벗어나자마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곳은 당연히 문화육성이에요. 과거에 체력이 국력이었다면 이제는 문화력이 국력이니까요.

코리안 시크에 대해 우리 스스로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봅니까?

정확히 언제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미 시작됐고 한창 진행 중이에요. 미래의 문화 중심은 동양이 될 거라는 이야기는 예전부터 있었고 실제로 동양으로 흐름이 넘어오고 있어요. '역 실크로드'의 시대가 열리는 거죠. 달이 차면 기울 듯이 기운 달은 차오르게 돼 있어요. 우리도 곧 가득 차게 될 거에요.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