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갤러리] <젊은 모색 三十> 전

구본창 'In the Beginning 06', 1994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한국의 청년 미술을 총정리하는 전시가 열린다.

1981년 <청년작가> 전으로 시작해 1990년 지금의 이름으로 바뀐 <젊은 모색> 전의 30주년을 맞아 그 궤적을 돌아보는 기회를 마련했다.

당대 가장 실험적이고 진취적인 미술작업들을 선정, 소개하는 <젊은 모색> 전의 변천사를 확인할 수 있다.

그동안 <젊은 모색> 전을 통해 선보인 작가는 총 327명. 그 중에는 서용선, 구본창, 서도호, 이불, 최정화 등 현재 한국 현대미술의 허리로 활동하는 작가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이번 전시를 위해서는 43명 작가의 대표 작품 150여 점이 추려졌다.

전시장의 동선은 곧 시대의 흐름이다. 시대마다 권력의 모습이 어떠했고, 또 그에 대한 미술적 저항은 무엇이었는지를 따라갈 수 있다.

고영훈 'This is a Stone', 1974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까지 군사정권 하에서 김용철 작가는 제 할 말을 못하는 언론을 풍자한 작품을 선보였으며, 한국화가 김호석은 어지러운 세태를 바라보는 네눈박이 황희 정승의 얼굴을 그렸다.

때로는 가장 무뚝뚝한 인상의 작업이 가장 섬세하고 저항적인 것이기도 했다. 1980년대 후반 화단이 미니멀리즘과 민중미술의 양 축으로 나뉘어져 있을 때, 그 틈새를 고민한 오상길 작가의 작업이 한 예다. 푸른 벽돌 가루로 원을 만들고 그 주변에 나뭇가지와 생선 머리, 닭뼈 등을 늘어놓은 그의 작품은 언뜻 추상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시대에 맞는 미술의 역할에 대한 고민의 산물이었다.

"미술이 시각적 아름다움을 주는 시대는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역할은 이제 광고와 영화, 디자인 산업의 몫이었죠. 그와 다른 지점에서 미술이 일깨울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습니다."

작가는 자연에서 취하고, 자연으로 되돌릴 수 있는 재료에서 답을 구했다. 전시가 끝난 후 작업은 '분해'되어 왔던 곳들로 돌아갔고 관객들의 정신 속에만 남았다. 그러한 섭리가 바로 속세의 구별짓기와 대립 관계에 반하는 작품의 메시지였다.

당대 사회의 상처를 직시한 작품들도 눈에 띤다. 윤영석 작가는 1995년 거대한 시체실을 만들었다. 총 10개의 관을 놓았다. 삼풍 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 대구지하철 가스 폭발 사고 이후 사회에 만연한 절망감을 담은 작품이었다. 제목은 <유토피언의 관>이었다.

김정욱 '무제(Untitled)', 2008
시대의 변화와 함께 도입된 테크놀로지는 그 자체가 새로운 가능성이었다. 90년대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사진을 활용한 미술들이 등장한다. 재현의 문제는 곧 실존의 문제로 이어졌고, 따라서 가장 기본적이고도 강력한 실존의 바탕이자 매개인 몸이 미술의 주요 소재로 떠오른다. 구본창, 홍성도 등의 작품이 이를 증명한다.

미술이 어떻게 전 세대의 한계에 반대하고 그것을 극복하며 현재에 이르렀는지 살필 수 있는 흥미로운 전시다. <젊은 모색 三十> 전은 6월6일까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다.


최정화 '슈퍼플라워', 1995
오상길 '무제(Untitled)', 1989
문범 'Falling Petals', 1987
이기봉 'Extra-Ordinary-Late-Summer', 1998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