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손' 로댕이 온다] <생각하는 사람>, <칼레의 시민> 등 숱한 명작들 쏟아내

오귀스트 로댕
로댕은 근대조각의 개척자다. 1840년 프랑스 파리에서 하급관리의 아들로 태어난 로댕은 어려서부터 미술에 재능을 보였다.

14세 때 국립공예실기학교에 입학, 조각가로서의 기초를 닦았으나 국립미술학교에 연이어 세 번이나 낙방하고 가세가 기울면서 생활비를 벌기 위해 각종 기념상이나 장식물을 만드는 일에 참여하는 등 오랜기간 무명 조각가로 살았다.

그가 조각가로 세상의 주목을 받은 것은 1877년 파리 살롱전에 <청동시대>를 출품하면서다. 인체 표현이 너무나 생생했던 탓에 살아 있는 모델에서 직접 석고형을 뜬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논란을 부른 것.

이 작품은 1880년 재인식되면서 국가에 매입됐고 그해 프랑스 정부로부터 <지옥문> 제작 의뢰를 받으면서 로댕의 이름도 알려진다.

이후 로댕은 천부적 재능과 열정으로 주위의 인정을 받으며 <생각하는 사람>(1882), <입맞춤>(1886), <칼레의 시민>(1895)과 같은 숱한 명작들을 쏟아냈다.

'의 얼굴' 석고, 1844년경
1900년 파리 알마광장 전시관에서 대규모 개인전이 개최되었고, 로댕은 1916년 전 작품을 프랑스 정부에 기증했다. 19세기 서양미술에서 조각은 건축물의 부속품 정도로 여겨져 조각 고유의 예술적 가치를 찾기 어려웠다.

이런 상황 속에 로댕은 조각에 생명과 감정을 불어넣어 예술의 자율성을 부여해 회화의 인상파와 더불어 근대 예술로서의 조각의 문을 열었다. 그 이후의 조각계는 직간접으로 모두 로댕을 출발점으로 시작되었다.

한편 로댕의 조각 예술에서 제자이자 연인인 카미유 클로델은 특별한 존재다. 로댕은 1883년 뛰어난 미모와 재능을 갖춘 19세의 조각가 지망생 클로델과 만나면서 사랑에 빠지고 그의 작품 세계에도 변화를 가져온다.

<입맞춤>, <영원한 우상>(1893) 등 격정적이고 섬세한 사랑을 표현한 조각들은 클로델의 도움이 컸다. 클로델은 로댕과 작업하면서 <사쿤달라>, <왈츠>, <성숙>, <기도하는 여인> 등 명작을 남기지만 로댕이 자신의 성공을 방해한다는 피해망상에 시달리다 정신병원에서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신의 손 - 로댕>전은 '카미유 클로델' 섹션을 별도로 마련, 두 사람의 예술세계를 또다른 측면에서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두 사람의 사랑이 로댕의 조각에 남긴 강렬한 흔적을.

까미유 클로델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