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손' 로댕이 온다] 대표작 <지옥문> 비롯 조각·드로잉·사진 등 180여 점 전시

'입맞춤' 188.8X112.9X113.2cm, 석고, 연대미상 로댕이 '지옥문'을 위해 제작한 '입맞춤'은 단테의 '신곡'에서 금지된 사랑을 나누다 형벌을 받는 파올라와 프란체스카를 표현했다. 로댕과 까미유 클로델의 열정적인 사랑을 연상케 하는 이 작품은 로댕 조각의 상징이자 이번 전시의 백미다.
차가운 점토 속에 인간의 고뇌와 애증, 생의 호흡까지도 불어 넣었던 오귀스트 로댕. "난생처음 점토를 본 나는 천상에 오른 듯한 느낌을 받았다"며 자신의 운명을 감지했던 그는 '현대의 미켈란젤로', '신의 손', '조각의 거장'으로 추앙받고 있다.

처음부터 그의 예술길이 순탄했던 건 아니다. 인체에 대한 지극히 사실적인 묘사는 오히려 '모델의 몸에서 직접 주물을 뜬 작품'이라는 논란과 비난으로 번졌다. 세상을 떠날 때까지도 열띤 논쟁의 중심에 있으면서 동시에 신화적인 존재였던 로댕.

로댕의 삶과 예술을 총체적으로 조명하는 블록버스터 전시가 열린다. 해외에서 열리는 사상 최대 규모의 이번 전시는 파리 로댕미술관과 공동기획으로 선보이는 국내 최초의 회고전.

로댕의 대표작 <지옥문>을 비롯해 110여 점에 달하는 청동, 대리석, 석고 조각 작품과 40여 점의 드로잉, 20여 점의 사진작품 등 총 180여 점이 전시된다. 지금껏 파리 로댕미술관을 한 번도 떠난 적 없던, 로댕의 주요작품이 전시된다는 점 또한 주목할 만하다.

<지옥문>에서 <까미유 끌로델의 얼굴>까지

'신의 손' 94X82.5X54.9cm, 대리석, 1898-1902년 커다란 오른손은 대지의 일부를 들고 있으며, 그 안에 아담과 이브가 조각돼 있다. 신이 인간을 창조하는 순간을 묘사한 이 작품은 로댕의 대표작 중 하나로 이번전시의 핵심 작품이기도 하다. 이와 대응하는 '악마의 손'도 전시 된다.
전시는 파리 로댕미술관의 소장품 중 로댕의 대표작 중심으로 연대기적인 테마로 구성된다. 로댕을 세상에 알린 초기 걸작 <청동시대>부터 단테의 신곡에서 영감을 얻은 필생의 역작 <지옥문>의 인물들('생각하는 사람', '아담', '이브'), 구상과 추상을 절묘하게 조합해 근대조각의 혁명이라 불리는 <발자크>상, 대규모 공공 인물작품인 <깔레의 시민>과 <빅토르 위고> 등이 전시된다.

이번 전시를 위해 파리 로댕미술관에서 처음으로 반출된 세 작품도 있다. 로댕 대리석 조각의 진수로 꼽히는 <신의 손>, 로댕의 상징적인 작품이자 로댕이 직접 손으로 빚은 초대형 채색석고상인 <생각하는 사람>, 에로스 조각의 걸작 <입맞춤> 등이다. 특히 <신의 손>은 파리 로댕미술관에서 상설 전시되는 작품으로, 서울전시를 위해 파리 로댕미술관의 전시공간을 처음으로 비우게 됐다.

'로댕'하면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여인, 까미유 끌로델도 이번 전시에 동행한다. 로댕의 제자이자 어린 연인이자, 또한 뮤즈였던 까미유 끌로델과의 사랑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 공개되는 것. <입맞춤>은 물론, 석고와 드로잉 작품들 속에서 까미유 끌로델과의 열정적인, 그러나 비극적이었던 러브 스토리가 생생하게 피어오른다.

로댕의 손길이 묻어난 석고와 드로잉

이번 전시에서는 다수의 석고작품이 눈길을 끈다. 작품의 보관과 운반이 까다로워 로댕 미술관에서 좀처럼 대여하지 않는 데다가 12점의 에디션까지 진품으로 인정되는 청동작품과 달리 단 하나의 작품으로 남아있다는 점이 이번 전시를 더욱 특별하게 한다.

'회복' 49X74.1X55.4cm, 대리석, 1892년 혹은 1906년 로댕이 1884년에 조가가한 '까미유 클로델의 얼굴'을 바탕으로 제작한 비슷한 모습의 대리석 작품. 로댕 생전에 거의 전시되지 않았다는 '회복'은 까미유 클로델이 그의 작품에 평생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석고작품은 조수나 장인들이 제작하기도 했던 청동작품 보다 로댕의 예술혼이 좀 더 가까이 느껴지는 건 물론이다. <웅크린 여인>, <생각하는 사람>, <입맞춤>, <까미유 클로델의 얼굴>, <영원한 우상>, <아이리스, 신들의 전령>, <로댕의 손>, <발자크> 등 30여 점이 이번 전시를 위해 운반됐다.

모델과 조각, 그 사이에 드로잉이 있었다. 로댕은 인체의 역동성을 포착하기 위해 만여 점에 이르는 드로잉을 그렸다. 목탄 또는 채색 드로잉, 그리고 수채화로 표현한 로댕의 드로잉은, 위대한 조각가 이전에 그가 얼마나 뛰어난 데생화가였는지를 보여준다. 작품 완성의 과정이 아닌 그 자체로 빼어난 작품으로 존재한다.

'근육의 움직임을 통해 인간 내면의 감정을 감지하려 했던'로댕. 그가 담아내려 애썼던 인간의 실체적 진실은, 이상화된 인간의 형상만을 쫓으며 '장식품'에 불과했던 조각을 순수 창작의 영역으로 이끌었다. 인간을 향한 로댕의 예리하고 위대한 통찰은 4월 30일부터 8월 22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다. T. 1577-8968


장 데르, '깔레의 시민'1 두 번째 축소물의 인물 68X19X25cm, 청동, 연대미상 굵게 주름 잡힌 묵직한 상의를 목에 두르고 있는 이 작품은 '깔레의 시민 기념상'전을 준비하는 과정에 로댕미술관 수장고에서 발견된 작품으로 나머지 인물들과도 잘 어울러져 있다.
까미유 클로델 '왈츠' 43.2X23X34.3cm, 청동, 1889~1905년 까미유 클로델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이며 가장 에로틱한 작품. 로댕과 행복했던 시절의 말기에 제작됐다.
'지옥문, 세 번째 축소물' 109.8X73.3X28.5cm, 청동, 1880년 단테의 '신곡'지옥편을 소재로 제작한 로댕 조각의 결정체. 1900년 미완성 상태로 첫 전시되었다가 로댕 사후 청동으로 제작됐다. 이번 전시에는 로댕이 제작한 축소물 중 최종 완성물에 가장 가까운 세 번째 작품이 출품된다.
'발자크, 옷을 두른 습작' 114X41X45.5cm, 석고, 1896-1897년 프랑스 문인협회로부터 문호 발자크의 조각상 제작을 의뢰 받은 로댕은 남자의 우월감과 초연함, 옷의 질감 등 심혈을 기울여 완성했으나 '비대한 괴물'이라는 혹평을 받았다. 그러나 '나의 필생의 역작으로 후세에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로댕의 말은 정확한 예언이 됐다.
'영원한 우상' 73.2X59.2X41.1cm, 석고, 1893년 이 작품의 두 인물은 본래 '지옥문'을 위해 각각 제작되었다가 로댕이 1890년경 새로운 작품을 만들면서 합치게 됐다. 시인 릴케는 이 작품에 대해 수천가지의 의미를 지닌 아름다움의 극치라고 평했다.
'청동시대' 181X66.5X63cm, 청동, 1877년 벨기에 군인 오귀스트 네이를 모델로 한 작품. 1877년 '청동시대'라는 제목으로 전시되었을 때 '모델에서 직접 주물을 뜬 작품'이라는 스캔들에 휘말렸으나 의혹이 해소되면서 로댕은 뛰어난 조각가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