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갤러리] 전형진 개인전 <사라진 아이들>
뒷바라지하느라 뼈가 빠지면서도, 내 아이가 금발 머리 친구에게 자신을 "디스 이즈 마이 대디"라고 소개하는 순간 모든 고단함이 녹아 내린다. 그래, 너희는 분명히 우리보다 빛날 것이니까.
불과 한 세기 전 산업혁명은 아이들의 노동을 하나의 바퀴로 삼아 진행됐다. 값싸고 부리기 쉬운 노동력으로써 아이들은 문명을 발전시키고 가족을 부양하는 데 동원되곤 했다.
상황이 엄혹할 때 가장 큰 위험에 처하는 쪽도 아이들이었고, 따라서 아이들에 대한 인식과 처우의 수준은 그 사회의 인권 수준을 드러내는 바로미터였다. 국제기구가 잇단 세계대전 이후 '아동 권리 조약'을 채택한 것은 인간적인 사회를 재건하고자 하는 의지이기도 했다.
한국의 공식적인 첫 어린이헌장은 1957년에 만들어졌다. 한국전쟁의 상처를 겨우 추스린 참이었다. "굶주린 어린이는 먹여야 한다", "어린이는 공부나 일이 몸과 마음에 짐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당시 조항 내용은 그만큼 아이들이 굶주림과 짐스러운 삶의 조건 하에 있었음을 반증한다. 아이들뿐이었을까.
그런데 계절이 지나고, 수차례 비와 바람이 지나가고, 부모들이 늙어가는데 놀이터만 여전히 새 얼굴인 건 좀 이상한 일이다. 불로초라도 먹은 듯 낡지도 바래지도 않는 놀이기구들은 그만큼 아이들의 손이 덜 탄 때문이다.
부모들이 이렇게나 애지중지한 때문에,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옷과 자신의 미래를 더럽힐 틈도 버려두지 않는 바람에 '들어가지 마시오'라는 놀이터 이용법은 암묵적인 관습이 되었다. 나날이 상상력과 창의력이 발휘되어 설계되는 알록달록하고 구조적인 놀이기구들은 이제 차라리, 어른들에게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공공미술작품에 가까워졌다.
그것이 어떤 뜻인지 더 말해 무엇할까. 아이들이 부재한 전형진 작가의 사진은 쓸쓸하다 못해 섬뜩하다. 사진 제목은 거기에 있었어야 할 아이들의 모습에 대한 기술이다. 그네에 앉아 강을 바라보는 아이, 소라껍질 속에 숨은 아이, 의자에 누워 있거나 타이어 위에서 뛰는 아이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그리고 한때 아이였던 우리들은, 한때 폐허였던 한국사회는, 이렇게 공허한 현재의 미래는 또 어디에 있을까.
전형진 개인전 <사라진 아이들: The Ghost Slide>는 서울 종로구 관훈동에 위치한 갤러리룩스에서 5월4일까지 열린다. 02-720-8488.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