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문화 中心에 서다] '아이폰녀' 이어 피아노 대신 아이패드 연주… 지각 변동 관심

아이폰으로 연주하는 영상을 유튜브에 올려 화제가 된 아이폰녀
현재 클래식계의 가장 '핫한' 중국의 피아니스트 랑랑이 이번엔 유튜브를 아주 뜨겁게 달궜다.

4월 19일, 샌프란시스코의 데이비스 심포니홀에서 그가 앵콜곡을 피아노가 아닌 아이패드로 연주했기 때문이다. 관객이 촬영한 영상은 삽시간에 전 세계로 퍼졌다.

영상 속의 랑랑은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왕벌의 비행'을 연주하면서, 아이패드에 한 손을 얹고 연주하거나 피아노와 아이패드를 양손으로 동시에 연주하는 묘기를 선보였다.

랑랑보다 앞서서 아이폰으로 유튜브를 달궜던, '아이폰녀'는 아이폰 여러 대를 혼자서 조작하면서 노래하는 원맨밴드 형식의 영상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매니아들의 '놀이'로 인식되어 왔던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공식적인 클래식 콘서트 무대에 처음으로 등장하면서 이들을 통해 과연 음악적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날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확산되고 있다.

아이팟의 등장으로 아이튠즈라는 거대한 온라인 음반 쇼핑몰은 현실화되었다. 저렴한 가격으로 음반은 물론 곡당 구매가 가능해지면서 불법 다운로드는 자연스럽게 자취를 감췄고 양질의 음질은 MP3파일을 멀리하던 클래식 애호가들까지도 끌어들였다. 아이팟은 이처럼 음악감상 방식에 일대 혁명을 가져왔다. 그리고 등장한 아이폰과 아이패드, 이들 역시 창작과 공연의 방식, 공연 관람 방식의 변화까지도 이끌 수 있을까?

피아니스트 랑랑이 콘서트 홀에서 아이패드로 앵콜곡을 연주하고 있다
현악 사중주 콰르텟 엑스의 리더 조윤범 씨는 국내에 아이폰이 출시되자마자 구입했다. 여느 아티스트들과 마찬가지로 그에게 역시 아이폰은 편리함과 혁신의 도구가 되었다. 음악가들의 필수 애플리케이션인, 조율을 위한 튜너 '클리어튠'과 박자계인 '메트로놈'은 아이폰을 받자마자 사용하고 있다.

이전에는 작은 전자튜너를 따로 들고 다녀야 했지만 이젠 아이폰 하나면 된다. 그러나 그의 기대감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오래 전부터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기반으로 하는 혁신적인 애플리케이션을 준비하고 있다. 콰르텟 엑스에서 활용할 그 애플리케이션은 클래식 공연계를 깜짝 놀라게 할 만한 것이라고 귀띔했다.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이용한 음악적 혁신에 대한 기대감은 전반에 걸쳐 있다. 재즈 연주자들 사이에서 IT기기의 얼리 어답터로 통하는 서영도(베이시스트)씨는 이런 변화는 이미 예견되어 온 일이라고 말한다. 음악작업을 위해 맥을 사용해왔던 그는 맥에서 사용되는 소프트웨어가 모바일 환경으로 넘어오면 후폭풍이 거세질 거라 예상했던 것.

이미 많은 재즈 연주자들이 500페이지 분량의 재즈 모음곡 악보를 아이폰의 애플리케이션으로 대체했고 메트로놈이나 다양한 악기 애플리케이션은 제작이나 교육환경에서 활용도가 높아졌다. 소소한 부분에서도 변화는 분명 일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1세대 아이패드에 USB단자가 빠진 게 아쉬운데요. 다음 세대에 확장 포트들만 지원된다면 더이상 랩탑이 필요 없게 된다고 봅니다.

퀄리티 높은 프로용 오디오기기들을 마음껏 연결해서 스튜디오, 라이브 현장에서도 활용이 무궁무진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스크린이 확장된 아이패드는 피아니스트 랑랑이 했듯이 공연에서는 물론이고 각종 디제이용 프로그램부터 음악제작 소프트웨어, 샘플링 컨트롤러 등을 실을 수 있게 될 겁니다." 서영도 씨는 음악의 장르에 관계없이 음악 전 분야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몰고 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아이폰의 음악관련 애플리케이션
백경민 미디포럼코리아 대표 역시 음악계의 창작과 공연 방식의 변화에 힘을 실었다. "전문 음악인들도 아이패드로 음악작업이 가능해진다는 데 저 역시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전문 음악인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SYNTH 애플리케이션(신디사이저 기능)도 이미 나와 있고 스튜디오에서 레코딩과 믹싱을 하는 것도 가능해졌거든요."

그러나 음악 공연자들 모두가 이처럼 한결 같은 반응은 아니다. 테크놀로지 음악을 창작하고 공연하며 관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어온 태싯그룹의 장재호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테크놀로지과)는 음악계 패러다임의 변화에 대한 판단을 유보한다는 입장이다. 형식이 바뀌었다고 내용까지 혁신적으로 바뀐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새로워 보일 수 있지만 기존에 컴퓨터에서 활용하던 툴을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로 옮기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 자체로 어떤 독특한 특성이나 창조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현재의 현상은 가령 20세기에 피아노가 전자악기로 대체되는 맥락으로 읽힐 수 있다는 의미다.

공연에서 게임을 도입하면서 관객과의 소통을 중시했던 장재호 교수 역시 처음에는 관객들과 아이폰을 함께 연주하는 방식을 고민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것이 신기하고 새로운 체험이 될 수는 있을지 몰라도 내용에 있어서 그게 과연 새로운가라는 회의가 들어 현재로선, 유보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애플리케이션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고 있다. 핵심은 애플리케이션에 있다.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하드웨어적 진일보와 함께 이들 첨단 미디어만이 구현할 수 있는 독특하고 창조적인 소프트웨어의 혁신이 이루어진다면 음악계의 지각변동은 분명 일어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창작과 공연의 방식 변화와 함께 공연 관람의 방식 또한 변화를 예견해볼 수 있다. 현실세계에 가상의 물체를 겹쳐 보여주는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이 도입되면 굳이 공연장에 가지 않아도 어디서든 공연을 즐길 수 있게 된다.

현재 제일모직의 캐주얼 브랜드 빈폴 진에서는 아이돌 그룹 2NE1의 영상을 증강현실로 체험하는 이벤트를 벌이고 있다. 이같은 형식이 발전하다 보면 명동 길거리 한복판에서 베를린 필하모닉의 오케스트라의 독일 현지 공연을 관람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영화 속 장면만은 아닐 듯하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