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시대의 생존전략] 스마트폰, 손안의 컴퓨터 역할, 현대인들 중심잡기 필요

30대 회사원 유 모씨는 약정 기간이 1년이나 남은 새 휴대폰을 사용 중이었지만 아이폰 발매와 함께 해지를 하고 말았다.

신기술에 대한 호기심과 친구들의 아이폰 자랑은 기존 휴대폰에 남아있던 수십만 원의 할부금을 지불하는 데 잠깐의 망설임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가 친구들의 소개로 가장 먼저 다운로드받은 애플리케이션은 실시간 채팅 프로그램이다. 유 씨의 전화번호를 등록한 이들이 자동으로 '친구 추천'으로 리스트업됐다. 기억나지 않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을 등록할 것인가 말 것인가, 결단을 유보하는 동안 때때로 '희미한 기억' 속의 그들이 말을 걸어올 때면 미안하고 당황스러울 뿐이다.

난감함은 며칠 후 '공포'로 바뀌기도 했다. 아이폰 마이크를 통해 입으로 바람을 불어 연주하는 오카리나 소프트웨어를 몇 시간 연습하자 핸드폰 기능이 순간 멈춘 것. 그때 유 씨가 내뱉은 말은 '핸드폰 어떡해'가 아니라 '나 어떡해'였다. 핸드폰 기능의 정지는 곧 유 씨의 삶의 정지를 의미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에서 구매하거나 제공받을 수 있는 수십 만 가지의 애플리케이션은 생활의 상당부분을 작은 기기에 기대게 만든다. 아침 기상을 위한 알람, 자산과 돈의 수입과 지출을 관리를 위한 가계부, 은행 업무 처리, 음악감상, 독서, 메모, 동영상 보기, 증강현실을 통해 목적지 찾기, 심지어 구매하고자 하는 물품의 가격 정보까지 바코드로 찍어서 계산 전에 확인해볼 수 있다.

'또 다른 세상을 만나실 땐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라는 광고 카피는 낡아도 너무 낡은 것이 되어버렸다. 현실에서 경험하지 못한 세상이 그 안에서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하나의 디지털 혁명이라 불리는 아이폰과 같은 스마트폰의 등장은 편리함과 더불어 현대인들의 '디지털 의존증'을 심화시키고 있다.

미국의 투자은행인 '모건 스탠리'의 애널리스트 메리 미커는 일반 핸드폰과 아이폰에 대한 흥미로운 조사를 한 적이 있다. 일반 핸드폰 이용자들은 하루 평균 40분을 사용하고 전체 사용시간 중 약 30%만이 통화 이외의 용도였다. 반면, 아이폰은 하루 평균 사용량이 60분이고 사용 시간의 절반이 넘는 55%를 통화 이외에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하는 데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스마트폰은 핸드폰의 기능을 넘어서서, 손 안의 작은 컴퓨터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의미다.

기술 발전의 속도는 '반도체 칩의 집적 밀도가 2년마다 2배가 된다'는 무어의 법칙의 예상을 뛰어넘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싸이월드 미니홈피의 독주는 블로그, 트위터, 미투데이 등으로 이어졌고, 다양한 스마트폰이 연달아 시장에 쏟아지고 있다.

디지털 기기의 혁명은 연간 20억 달러에 이르는 새로운 시장도 만들어냈고(애플의 애플리케이션 시장규모), 세계의 기업과 프로그래머, 그리고 마케터들은 각자의 블루오션을 찾아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이미 10여 년 전에 죽음을 선도받았던 국내의 전자책 시장은, 미국발(發) 아마존 킨들의 영향으로 국내에 전자책 단말기가 경쟁적으로 출시되면서 조금씩 활기를 띠고 있다.

인간의 편리와 생활수준의 향상을 위한 과학기술의 진일보는 그러나 지나치게 빨라진 속도로 수많은 부작용을 야기하고 있다. 기계와 익숙하지 않은 중장년층은 새로운 기계를 익히는 데 상당한 스트레스를 겪고 있으며, 젊은 층은 사례에 등장한 유 씨처럼 지나친 의존증에 시달린다.

단축번호 혹은 클릭 한 번으로 통화를 하거나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덕에 간단한 전화번호 외우기도 어려워지는 '디지털 치매'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새롭게 등장하는 기기로 교체를 하면서 쌓여가는 e-폐기물(핸드폰, 아날로그 TV, DVD, 컴퓨터 등)은 전 세계에서 매년 10억대에 이른다.

여기에 이런 대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이들은 상대적 박탈감과 괴리감을 느끼기도 한다. 여러 대의 값비싼 아이폰으로 음악을 연주하는 '아이폰녀'의 유튜브 등장은 곧 기존의 핸드폰으로 노래하며 '아이폰녀'를 패러디한 '똥폰남'을 등장시켰다.

최근에 아이폰을 필두로 한 스마트폰과 트위터를 필두로 한 마이크로 블로그의 등장은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까. 그로 인해 디지털 시대의 그늘이 더 깊어지는 것은 아닐까. 사실상 현대의 도시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선 디지털 매체의 흐름에 어느 정도 순응하지 않고서 살 수는 없다.

전문가들은 그 흐름에 몸을 싣되 급류에 휩쓸리지 않는 중심잡기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디지털 시대를 잘 사는 전략의 핵심은, 결국 삶의 균형을 어떻게 잡아가느냐에 있다는 것이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