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의 스토리텔링] 춘향, 몽룡, 방자 등 주요 인물들 의상 통해 각각의 개성 드러내

한복의 문화 콘텐츠적 가치는 역사 드라마, 영화 열풍과 함께 더욱 주목받고 있다.

특히 역사 기록을 재현하는 것을 넘어 재해석하고, 현대적으로 변주하는 최근의 사극 경향 속에서 한복 역시 한정된 모습을 넘어서 다양한 자태로 상상되고 있다.

사극 속 한복은 그 고유한 멋과 영화, 드라마의 내러티브, 미장센의 접점에서 재창조된다. 속성을 간직하면서도 이야기를 돕고, 나아가 대사로 설명되지 않는 내용을 구성하는 또 하나의 캐릭터인 셈이다.

그렇다면 한복과 역사 드라마, 영화는 어떻게 만날까. 다음달 개봉하는 영화 <방자전>의 사례를 통해 사극이 한복을 캐스팅하는 뒷 이야기를 들여다 봤다.

<춘향전>을 뒤집고 로코코 스타일을 접목시키다

<방자전>은 제목 그대로 방자의 눈으로 <춘향전>을 다시 본 이야기다. 전제부터 뒤집기다. 방자가 춘향을 사랑해 몽룡과 삼각 관계가 되고, 정절의 화신이었던 춘향은 사랑과 신분 상승의 욕구를 모두 쫓기 위해 지략을 펼치는 여인이다.

몽룡 역시 출세를 위해 춘향을 둘러싼 스캔들을 이용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전래동화'가 애욕과 야망이 들끓는 복합적 구도의 성인 드라마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이는 그만큼 화면 안에 구현해내야 하는 것들이 많아졌다는 뜻이다. 인물들의 사회적 신분은 물론 속사정과 심정까지 은근히 드러내야 하는 한복 의상의 역할도 그만큼 중요해졌다.

<혈의 누>, <형사:Duelist>, <음란서생>, <신기전> 등의 사극에서 고증과 상상력을 결합해온 정경희 의상 감독. 이번 영화에서는 다른 어떤 사극에서보다 창조적인 작업을 보여준다. <춘향전>의 시대적 배경인 18세기의 한복과 동시대 서양의 로코코 스타일을 접목시킨 것이다.

그 결과 여성 인물들의 한복은 마리 앙투아네트 스타일로 디자인되었다. 허리가 잘록하고 전체적으로 '퍼프' 모양인 치마에 가슴이 보일 듯 짧은 기장의 저고리를 매치했다.

밝은 색감과 아기한 장식을 가미해 화사한 인상을 만들어낸 것도 특징이다. 예를 들어 기생들이 등장하는 장면을 수국꽃처럼 화사하게 표현하기 위해 가벼워 속이 비치는 원단을 이중으로 겹치고 하늘, 분홍, 노랑, 연보라, 연두색 등의 파스텔 톤의 색을 썼다.

노리개와 머리꽂이, 브로치 등의 액세서리로 자연스러우면서도 장식적인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한 것도 새로운 시도였다. 자수가 놓인 꽃신도 마리 앙투아네트의 신발에서 영감을 얻은 것.

춘향은 한복을 입어 성숙하고

주요 등장인물들의 의상은 전체적인 컨셉트 속에서 각각의 개성을 드러낸다. 춘향의 한복은 극이 진행되면서 색이 변한다. 10대 후반 여자아이에서 여성이 되어가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첫 장면에서는 노랑 저고리에 분홍 치마를 입지만 계절이 변하고 세월이 지나가고 애정 관계에 얽히면서 카키색, 와인색, 회색과 검정색 등 짙은 톤의 의상을 입는다.

방자는 신분상 의상에 크게 제약을 받지 않는 인물. 도포 대신 짧은 기장의 겉옷을 입는 등 자유롭게 표현되었다. 브라운과 블랙 계열의 색이 그의 고뇌를 드러낸다. 짚신까지 검은 실로 짜여졌다.

가문 좋은 양반 출신인 몽룡의 의상은 엄격한 집안 규율과 기방을 드나들 만큼 자유분방한 성정을 동시에 드러내야 했다. 광택이 있는 실크 소재와 연두색, 주황색, 청색 등의 화려한 색감이 선택되었다. 갓과 갓끈, 허리띠 등에도 장식이 들어갔다.

한복의 이야기와 사극이 만나다

사극의 구성 요소로서 한복의 전통은 제약이지만, 그 제약이 때로는 새로운 맥락에서 새로운 뜻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방자전>에서 한복의 끈이 그런 사례다.

"끈은 한복을 대변하는 요소"였기 때문에 정경희 의상감독에게도 그 점에 변화를 주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18~19세기에는 끈을 대체할 단추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통 사극보다 고증에서 자유로워진 최근 사극 속에서 끈은 자칫 거추장스러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방자전>에서의 끈은 단지 장식적 요소 이외에도 중요한 역할을 해낸다.

정사 장면에서 남녀 간의 밀고 당김, 긴장한 정서 등이 끈이 풀어지는 모습과 속도로 보여지는 것이다. 한복에 담긴 이야기가 인물, 영상과 절묘하게 만나는 이런 순간이야말로 사극 속에서 한복을 보는 즐거움이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