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의 스토리텔링] 박술녀 한복연구가26년 외길 걸으며 많은 사극 의상 담당… 전통, 현대에 맞게 변주

박술녀 한복연구가는 대중문화 속 한복의 대모 중 한 명이다.

26년간 한복을 지으며 숱한 사극 의상을 담당했고, 연예인을 비롯한 많은 유명인사들이 그녀의 한복을 입고 카메라 앞에 섰다.

최근에는 드라마 <추노> 이다해의 한복을 맡았다. 김희선, 이승연 등의 여배우들의 결혼식 한복도 박술녀 한복연구가의 손을 거쳤다.

'박술녀 한복'의 특징은 그야말로 한복답다는 것. 대중문화의 빠른 흐름 속에서 그 고유한 선과 색과 질감은 은근하게 빛난다. 아무리 '퓨전'의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고 해도 사극의 아름다움은 전통에 빚지고 있음을 알려준다.

그것은 박술녀 한복연구가가 디자이너가 아닌 연구가의 이름을 고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창의성보다 뿌리를 정확하게 들여다보는 정성을 먼저 갖추겠다는 의지다. "한복의 디자인은 이미 과학적이고 역사적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문화 콘텐츠로서의 한복의 가치 역시 그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모양과 소재 등 구성 요소 하나 하나에 나름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그 내력를 차근차근 살려내는 것이 한복 문화의 바탕일 것이다.

지난 17일 박술녀 한복연구가를 만나 한복에 대한 철학을 물었다. 그것은 문화 콘텐츠로서 한복을 주목할 때 잊지 않아야 할 기본 원칙이기도 했다.

제1세대 한복 디자이너인 이리자 선생님께 사사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 배우신 것이 무엇입니까.

늘 단정한 선생님의 태도였어요. 스스로 정리정돈 하시는 모습이었죠. 또 멋쟁이셨어요.

한복을 배우러 많이 찾아올 것 같은데, 제자로 받아들이시는 기준이 있나요.

인성을 봐요. 묵묵히 적어도 7년 쯤은 배울 수 있는 사람이어야죠. 한복을 만들려면 쉽게 움직이면 안 되거든요.

한복일을 열심히 하다보니 가정을 돌보기가 쉽지 않으셨단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습니다.

한복으로 유명한 박술녀보다 가정을 지킨 두 아이의 엄마라는 점에 더 자부심을 느껴요. 원래는 일이 좋아서 결혼도 하지 않으려 했어요. 그런데 한복을 제대로 만들려면 가정도 꾸려봐야 겠더라고요. 한복은 혼례처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에 입는 옷이잖아요.

스스로 디자이너 대신 한복연구가로 부르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한복만 생각하니까요.(웃음) 한복의 디자인은 조상들이 이미 과학적 형태로 해 놓았지요. 제가 하는 일은 어떤 소재를 택할 것인가, 그것이 살갗에 닿을 때 어떤 감촉일까 같은 것을 연구하는 거예요. 제 한복의 특징인 긴 저고리 길이와 짧은 고름 같은 요소도 창작은 아니에요. 전통을 현대에 맞추어 변주한 것이지요.

요즘 퓨전 사극들이 많아지면서 덩달아 한복의 모습도 다양해지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복도 문화니까 시대에 따라 바뀌는 게 당연해요. 하지만 묘하게, 장난스럽게 바뀌는 것에는 반대합니다. 한복은 남성을 멋스럽고 단아하게, 여성을 사랑스럽게 만드는 옷이에요. 이런 기본이 없으면 안돼죠. 깊이 없이 화려한 옷들도 좋아하지 않아요. 한복을 입는 법은 지켜져야 하고 옷의 선이 망가지면 안 됩니다.

사극 의상도 많이 제작하셨는데, 연출자의 요구 때문에 곤란하셨던 적은 없나요.

한복의 기본을 망가뜨리는 요구에는 응하지 않아요. 시대의 흐름은 따라가더라도 확신이 서지 않는 것을 시도하면 안돼죠.

교수 제의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있었지만 거절했어요. 한복에 대한 학술적 연구와 교육도 필요하지만, 사람들에게 한복을 입히고 문화를 만드는 일 또한 그만큼 소중하니까요. 감투는 중요하지 않아요.

한복 이외에 영감을 얻으시는 것들이 있으세요.

우리 것들이요. 기와며 처마 밑 풍경, 우리 음식 같은 것들이요. 약삭빠른 것은 싫어하고 그렇게 변함 없는 것들을 좋아해요.

패션쇼를 통해 한글 문양이 들어간 한복 등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셨는데요. 요즘 하고 계신 작업이 있습니까.

명품 양장 대신 결혼식에 입고 갈 수 있는 비단 한복을 선보이려고요. 한복만 입자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양장을 입는 만큼 한복도 어떻게 입을 수 있을지 고민했으면 좋겠어요.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