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서 스타일을 만나다] 홍석우, 스타일 피쉬, 마이클 허트 인터뷰

홍석우
일반인들의 옷차림이 패션계의 유의미한 지표가 될 수 있을 거라는 개념이 나오기도 전에 거리를 향해 카메라를 들이댄 이들이 있다.

개인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아카이브 하나 제대로 없는 한국 패션계가 안타까워서, 그냥 모든 것이 너무 놀랍고 신기해서 등, 이유는 다양하다. 거리 패션을 찍어온 세 명의 인터뷰.

당신의 소년기 - www.yourboyhood.com

헬무트 랭과 빈티지 부츠, 아메리칸 어패럴 스커트와 샤넬 백. 스타일리스트이자 패션 저널리스트인 가 찍는 사람들은 한국의 창작자들이다. 음악가도 있고 독립잡지의 편집장도 있으며 그래픽 디자이너도 있다.

그들만 골라 찍는 것은 아니지만 찍고 나면 그런 사람들이다. 그들의 옷장에는 스타일은 있되 브랜드는 없다. 이제 막 데뷔한 뉴욕의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 완벽하게 한물 간 국내 브랜드, 몇 십 년 전 먼 나라의 누군가 입었던 빈티지들이 개인의 스타일이라는 명목 아래 하나로 모여 있다.

홍석우 거리패션
처음 스트리트 패션 사진을 찍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고3때 애플코디닷컴이라는 사이트에서 아르바이트 개념으로 시작했다. 당시 스트리트 패션계에서는 손꼽히는 사이트였는데 이곳에서 내 사진을 찍었고 그걸 인연으로 2001년도부터 시작해 2년 정도 하다가 그만 두었다. 그런데 졸업을 하고 일을 하다 보니 스트리트 패션 사진이라고 해서 찍힌 것들이 너무 안 예쁜 거다. 내 주변에는 훨씬 더 멋있는 사람이 많은데! 그들을 혼자 보기 아깝다는 생각에 기록하고 공유해야겠다는 결심으로 시작했다. 그러니까 내 사진은 '동시대의 내가 좋아하는 것들'의 기록이다.

2001년도부터 시작했다면 상당히 일찍 시작한 셈인데, 거의 10년이 지난 지금 그때와 달라진 점이 있나

당시엔 남자들이 정말 옷을 못 입었다. 그때엔 비하면 엄청난 발전을 했음은 물론이고 옷을 좋아하는 연령대가 현저히 낮아졌다는 걸 느낀다. 아무래도 인터넷 때문인 것 같다. 이전에는 해외 패션이 연예인 같은 트렌드 세터들을 통해 한번 걸러서 전해졌다면 요즘엔 다이렉트로 전해지니까 전반적으로 스타일이 좋아졌다. 하나의 트렌드에 우르르 몰리는 쏠림 현상도 여전하지만 공존하는 유행의 종류가 훨씬 다양해졌다.

스트리트 패션이라고 하지만 찍은 사진들을 보면 거리보다는 실내가 많은 것 같다

스타일 피쉬
보통 거리 패션을 찍는다고 하면 명동이나 홍대 같은 특정 스팟에서 헌팅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나는 내 동선을 따라 사진을 찍는 편이다. 그날 간 행사나 강의하는 장소에서 멋있는 사람을 보면 벽에 세워 놓고 전신과 상반신을 찍는다. 일부러 포맷을 통일시킨다. 사진뿐 아니라 이름과 나이, 직업, 브랜드, 홈페이지 등의 정보를 함께 기록하는데, 웹사이트를 방문한 외국인들에 의해 한국의 크리에이터들이 해외에 알려졌으면 하는 생각도 있다.

당신의 사진을 두고 한국의 전형적인 패션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말도 있다

당연하다. 나는 내가 보기에 쿨한 것, 멋진 것을 찍는다. 특정 장소의 유행 경향을 파악해 달라는 주문을 받아서도 아니고, 특정 시기의 보편적인 한국 패션을 정보화하려는 것도 아니다. 외국인 친구들로부터 '한국에 와보니 네가 찍은 것 같은 그런 멋진 사람은 한 명도 없더라'는 말도 듣는다. 나는 서울이라는 퍼즐의 조각을 맞추는 중이다. '다이나믹 서울'이니 '스파클링 서울'이니 하지만 내가 보기엔 전부 아니다. 서울을 정의할 키워드를 찾을 때까지 계속 찍을 예정이다. 700장 정도 찍은 지금 내린 서울의 이미지는 '짬뽕'이다.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좌충우돌 섞여 꿈틀꿈틀거리고 있다. 거리 패션을 찍는 사람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이유도 이것이다. Yourboyhood는 어디까지나 의 시각이니까. 좀더 많은 사람이 찍는다면 한국의 패션을 보여주는 창구는 더 다양해질 것이다.

거리 패션의 백과사전 - blog.naver.com/swingfish

는 이강주, 이수미, 김현진, 세 사람이 운영하는 스타일 블로그다. 국내뿐 아니라 런던, 밀라노, 파리의 스트리트 패션이 올라오며 재미있는 매장과 패션계 종사자들을 소개하기도 한다. 세 사람은 트렌드정보사 PFIN 소속으로, PFIN은 국내에 스트리트 패션이 전무하던 90년대 후반부터 한국의 거리 패션을 사진에 담아왔다.

스타일 피쉬 거리패션
스트리트 패션에 대한 국내의 관심이 비해 해외에 비해 늦은 이유는 왜일까?

스타일링의 개념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일 것이다. 인터넷의 발달과도 관련이 있다. 인터넷이 없을 때는 정보가 있어도 나누기가 쉽지 않으니까. 요즘에는 방문자 수도 부쩍 늘었고 그만큼 피드백도 활발하다.

처음 사진을 찍을 때는 어떤 목적으로 찍은 것인가

99년도에 촬영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지금처럼 사람들의 스타일링이 재미있지 않았다. 연예인을 그대로 따라 하거나 소위 이대생 스타일로 참하게 차려 입은 여자들뿐이었다. 장소도 갤러리아 백화점 앞에 한정돼 있었다. 패션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갈수록 높아지는데 그 궁금증을 해소할 곳이 없어 직접 거리로 나가 사진을 찍은 것이 시작이다. 시대별로 찍은 사진을 보고 있으면 스타일의 추이가 보이기 때문에 거의 백과사전을 만든다는 기분으로 작업을 하고 있다.

가 찍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마이클 허트
정말 독특해서 찍는 경우도 있지만 하이 패션으로 특이하게 차려 입은 사람보다는 베이식한 아이템들로만 코디했는데 자기만의 패션 철학이 돋보이는 사람들을 택한다. 너무 뻔한 스타일, 백화점 마네킹을 그대로 벗겨 온 것 같은 스타일은 촬영하지 않는다. 요즘 스트리트 패션은 컬렉션에 영향을 줄 정도로 힘이 막강한데 이들의 패션은 트렌드를 리드하는 게 아니라 추종하는 것이기 때문에 의미가 없다. 물론 우리가 찍고 싶다고 다 찍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열 명 중 세 명은 촬영을 마다하고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더 어렵다. 사진 중에서 대중적이고 포멀한 착장이 별로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촬영하면서 의외였다거나 놀라웠던 점이 있다면?

젊은 층으로 내려갈수록 좋아하는 브랜드가 없다는 점이 놀랍다. 20대 초반 정도로 내려가면 아예 브랜드 추종이란 걸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은 심지어 재래시장에서 옷을 사서 디자이너 브랜드 제품과 매치해 입는다.

패션 리더들이 자주 찾는 의외의 쇼핑 루트가 있으면 소개해 달라

빈티지 제품을 파는 명동 에이랜드와 광장시장이 인기고, 로드숍의 경우 가로수길과 홍대에 많이 간다. 그나마도 일치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그들은 잡지나 연예인 패션을 참고하기보다 해외 스트리트 패션 사진 속 일반인 또는 서로에게 영감을 받는 것 같다. 묵직한 유행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 스타일의 옷을 찾아내는 방법을 터득했다는 느낌이다.

마이클 허트 거리패션
사진과 함께 자세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어 도움이 된다는 평이 많다

사실 스트리트 패션 사진은 사진 기술만 가지고는 안 된다. 찍힌 이의 패션에 대한 감탄, 옷에 대한 애정이 사진에 다 드러나기 때문이다. 관심이 있다 보면 어디에서 샀는지, 어떤 일을 하기에 이런 옷을 입는지, 좋아하는 브랜드가 뭔지 자세하게 물어보게 된다. 다른 일도 마찬가지겠지만 진정성과 애정이 무엇보다 필요한 일이다.

진짜 서울이 궁금해? - www.feetmanseoul.com

버클리대 인류학 박사 과정을 위해 한국에 와 있는 가 찍는 것은 패션이 아닌 생소함이다. 이방인에게만 허용된 '초기화' 된 감각으로 해외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한국만의 패션 씬을 포착한다. 우리가 낯선 나라의 희한한 풍경을 촬영하는 기분으로 그는 이대 앞 여자들의 '샬랄라 패션'에 경악하며 셔터를 누른다. 허트의 사진은 한국의 가장 표준화된 거리 패션으로, 그 중에는 당연히 우리가 부정하고 싶은 것들도 있다.

94년에 이어 2002년에 두 번째로 한국에 온 것으로 알고 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스트리트 패션 사진을 찍은 것인가

그렇다. 처음에는 거리의 흥미로운 모습들을 포착하다가 2005년도부터 패션에 집중하게 됐다. 당시만 해도 스트리트 패션을 찍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명동, 신촌, 홍대, 용산역, 독립문 등 가리지 않고 매일 나가서 3~4시간씩 찍다 보니 시즌 유행을 다 꿰고 다녔다.

다른 나라와는 다른 한국 스트리트 패션만의 특징이 있나

어떤 사진들을 보면 너무 멋쟁이들만 찍었던데 그건 진짜 한국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는 것 같다. 인사동에 가면 리본이 다섯 개씩 달린 원피스를 입은 여자들이 있는데 이런 게 바로 한국만의 스타일이다. 원피스에 예쁜 가방, 귀고리, 하이힐까지 완벽하게 성장하고 있는 모습은 한국 밖에서는 보기 힘든 것들이다. 미국이나 유럽이 빈티지와 믹스해서 위트 있게 입는 반면 한국인들은 옷 입는 법에 있어서 진지한 것 같다. 미국의 50년대 패션과 아주 비슷한데 최근에는 대만이나 필리핀, 중국 등지에서 한국의 이런 우아한 스타일을 따라 하는 경향이 보인다.

그런 '한국만의 스타일'이 탄생한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나

한국 패션은 소비와 관련이 깊다. 소비를 통해 사회적 계급을 과시하려는 면이 있다. 예를 들어 지미추가 유행하면 잘 모르더라도 일단 우르르 몰려가 사고 본다. 돈도 능력이라고 생각하며 소비를 통해 더 높은 계급으로 올라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바깥에서 사람들과 만날 때 어떤 브랜드를 입었느냐가 중요해지는 것이다. 특히 젊은 여자들은 옷으로 경쟁하려는 심리가 있는데 여대 앞에 서 있으면 정말이지 패션쇼가 따로 없다. 해외 런웨이에서 입는 옷을 한국에서는 길거리에서 입는다.

한국의 패션은 문화가 아닌 소비에 가깝다는 이야기인가

아직은 그런 것 같다. 소비자들은 경쟁적이고 실험적으로 그때그때 발생하는 모든 트렌드를 흡수한다. 고정된 스타일이 있기보다는 오늘은 펑크, 내일은 로맨틱, 이런 식으로 계속 스타일을 바꿔서 시도한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패션을 통해 그 사람을 파악하는 것이 어렵다.

지역별로도 패션에 차이점이 보이던가

명동이 가장 한국적인 느낌이 강하다. 압구정은 '미국 냄새'가 많이 나고, 신촌은 학생들 위주의 캐주얼이 많다. 제일 다양한 것은 홍대다. 전형적인 한국식 정장부터 일본 롤리타 룩까지, 모든 패션이 믹스돼 있다. 소셜 클라스가 낮은 지역일수록 옷차림이 야해지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외국인이 사진을 찍겠다고 하면 사람들의 반응은 어떤가

내가 사진 찍는 장소로 강북을 선호하는 이유는 첫째 좀 더 한국 냄새가 강하기 때문이고, 둘째 강남은 성공률이 낮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강남 여자들은 거절을 잘 한다. (웃음) 5명 중에 1명 정도만 응하고 대부분 말을 끝까지 다 듣지도 않는다. 사회적 신뢰도가 낮은 것 같다. 미국에서의 거절은 찍기 싫어서 그런 것인데 한국에서의 거절은 믿지 못해서인 경우가 많다.



주간한국